웃음 폭탄 던지려다 뻥 터졌다
▲ 연예인들이 출연해 ‘토크 배틀’ 형식으로 진행되는 SBS <강심장>. | ||
막말방송이 횡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편집에서 살아남기 위한 연예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에서 시작된다. 점점 독해지고 있는 예능의 추세에 따라 시청자들은 좀 더 자극적이고 센 이야기들을 원하고, 이런 요구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러다 보니 물불 가리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으로서 치부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연애사는 기본, 자신의 민망한 굴욕담까지 숨김없이 털어 놓아야 한다.
문제는 자극적인 소재 찾기에 혈안이 된 연예인들 사이에서 거짓방송이 아무렇지 않게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나 신인들의 경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거짓 스캔들을 사용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는데 방법은 간단하다. 나에게 대시했던 연예인 A 혹은 나와 교제했던 연예인 B 등으로 이니셜을 사용해 방송에서 허구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 그러다 보니 과거 연예인에게 대시 한두 번 안 받아본 연예인이 거의 없고 실제로 연애했던 경험을 가진 이들도 많다. 여기에 더해 요즘에는 ‘과거 사귄 이성이 톱스타가 됐다’는 얘길 하는 게 새로운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더 많은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선 감쪽같은 상황 설정이 절실한데 이를 위해 매니저가 여기저기 자문을 구해 리얼한 스토리를 구성한 뒤 이를 해당 연예인에게 철저히 인지시킨다. 그런 뒤 방송에 앞서 치열하게 사전 연습을 하게 한다. 차량 이동 중에 이런 사전 연습을 하는 모습이 이제는 방송가의 신풍속도라 얘기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동료 연예인과의 열애 경험담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폭로성 발언은 방송 이후 검색어 순위 급등을 통한 인지도 상승 효과는 있으나 그들의 양심은 추락하는, 참으로 씁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빼어난 몸매로 화제가 되고 있는 신인 방송인 J,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신인 탤런트 L 등이 최근 밝힌 연예인 대시담은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는 민족 감정을 건드리기도 한다. 홍석천의 경우 <강심장>에 출연해 지난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 전을 앞두고 벌어진 경험담을 공개해 박수갈채를 받은 바 있다. 당장에는 홍석천의 논개 정신이 화제가 됐지만 포르투갈 국민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는 반박과 함께 비난이 일기도 했다. 다행히 포르투갈에서 이에 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장나라의 발언은 중국 활동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는 오해를 사 중국 언론이 그를 강하게 비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줘야하는 개그맨들 사이에서는 토크 프로그램 출연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점잖은 이미지의 중견 배우들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큰 웃음을 주려고 독한 멘트를 하는 상황이라 본래 웃음을 주는 개그맨들은 더욱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 공개 코미디가 아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거짓이냐 사실이냐를 떠나 같은 얘기라도 누가 더 잘 살려서 재밌게 얘기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때문에 그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앞두고 자극적인 웃음을 주기 위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수집하는 준비과정을 거친다. 그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라디오를 통해 소개된 사연이나 각종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일반인들이 올린 이야기 등을 인용하는 것이다. 얼마 전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학창시절의 에피소드로 큰 웃음을 줬던 개그맨 P의 이야기라든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연애담을 털어놓았던 개그우먼 P 등의 스토리는 일부 눈치 빠른 시청자들을 통해 인터넷과 라디오 등을 통해 소개된 사연임이 발각되기도 했다.
문제는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주가를 높이고 있는 또 다른 개그맨 P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예능 속) 이야기가 사실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거짓 방송 논란에 휩싸이면 섭외가 끊길 수밖에 없다”며 “시청자들과 제작진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는 그 나름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자극적인 폭로성 발언을 위해 이른바 동료를 파는 일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연예인 친구와 무덤까지 가기로 했다는 비밀 이야기를 방송에서 실명으로 털어놔 네티즌들로부터 빈축을 산 바 있는 탤런트 S. 그의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화제를 모았을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친구이자 동료 탤런트 K는 크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S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나갈 때쯤 새롭게 드라마를 시작한 K는 알게 모르게 이미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주변에서 그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져 한동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예능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는 MC들이 게스트들에게 요구하는 것 또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요즘의 MC들은 게스트들에게 자신을 마음껏 가지고 놀라고 사전에 요구하곤 한다는데 이는 출연자들이 서로 공격하며 헐뜯어야지만 큰 웃음이 나오는 최근의 예능 추세와도 같다. 다수의 출연자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는 방송인 K는 긴장하고 있는 신인들에게 자신을 공격하거나 흉을 보면 편집을 피할 수 있다는 이색조언을 들려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 방송이 익숙지 않은 신인들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K에게 막말까지 퍼붓는 불상사(?)가 일어나곤 했다.
주영민 연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