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황은 사실대로 인물설정은 입맛대로
<추노>는 <대장금>의 수라간처럼 역사 속에 존재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추노꾼을 소재로 하여 노비로 대변되는 민초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왕조 중심의 사학에서 주목받지 못한 민초들의 삶이 주내용이다. 과연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적 기록과 사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이 드라마 <추노>와 어느 정도의 싱크로율(어떤 요소와 요소가 합쳐지면서 발생하는 완성도 또는 정확도)을 보일까.
2010년 벽두 최고의 흥행 키워드가 된 ‘추노’와 ‘추노꾼’ 모두 기존에는 잘 접하지 못하던 단어들이다. <두산백과사전>에 실린 사전적 의미의 추노는 ‘주인집에 거주하면서 사역(使役)하는 가내노비와 달리 주인의 거주지를 벗어나 독립생활을 하는 노비는 사역을 하지 않는 대신 몸값으로 일정한 포(布)를 바쳐야 할 의무가 있어 이 공포(貢布)를 징수하던 일’을 뜻한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드라마에서와 같은 의미인 ‘도망간 노비를 수색하여 연행해 오는 것’이 첨가돼 있다. 결국 사전적 의미에서 ‘추노’는 도망간 노비를 쫓는 행위보다 공포 징수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도망간 노비를 쫓는 드라마 속 ‘추노’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뜻일까. 역사적인 기록을 보면 그렇지는 않다.
블로거 thespis는 <조선왕조실록>에 ‘추노’에 대한 이야기가 몇 차례 등장한다고 설명한다. 우선 세종 14년(1432년) 기록을 살펴보면 형조 참판이 “아직까지 추노(推奴)하지 아니한 자가 1백여 인이오니, 청컨대, 급사(急使)를 보내서 각도에 공문을 발송하여 잡아오게 하소서”라며 왕에게 추노를 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왕과 신하가 추노 관련 사안을 논의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당시 추노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추노는 점차 좋지 못한 의미로 변해간다. 현종 2년(1661) 기록에는 ‘헌부가 개성 경력(開城經歷) 조사기(趙嗣基)가 국가의 금법을 무시하고 추노(推奴)하는 일로 인하여 여인을 9개월이나 가두어서 끝내는 목매어 자살하게 만든 일을 논하고 파직하고 서용하지 말기를 청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왕에게 추노를 청하던 세종 당시와 달리 현종 시대에는 추노가 국가의 금법이 됐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그 이후에도 추노와 관련된 기록이 종종 나오는데 흉년이나 재난 등이 발생하면 국법으로 추노를 금지하곤 했음을 보여준다.
결국 드라마 <추노>의 배경인 인조 시대는 아직 추노가 국법으로 금지되기 이전일 가능성이 높다(아쉽게도 <조선왕조실록>엔 인조 시대에 추노 관련 기록이 없다). 인조 시대에는 병자호란 등 외침이 잇달아 일어나면서 민초들의 삶이 극도로 힘겨웠다. 그러다 보니 노비의 수가 급증했고 도망가는 노비의 수도 늘어 추노도 극성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 <추노>의 제작 의도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후인 1609년에 노비의 수가 한반도 전체 인구의 47%, 한양 전체 인구 53%에 육박했다고 한다. 또한 양인의 수가 급감하고 양반의 수가 급증하는 조선 후기 신분제의 붕괴가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노비였던 ‘언년이’(이다해 분)가 양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역사적인 기록과 정황들로 볼 때 ‘추노’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 속 현실과 역사적 사실의 싱크로율은 90%를 넘긴다고 분석할 수 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 숙종 27년(1701) 기록에는 “황해 도사(黃海都事) 이정상(李鼎相)이 검전(檢田)할 때에 추노(推奴)와 징채(徵債)하는 사람을 많이 데리고 가서”라는 기록이 나오는 데 여기서 ‘추노하는 사람’이 곧 드라마 속 ‘추노꾼’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추노>는 단순히 도망간 노비와 이를 쫓는 추노꾼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조의 후계 다툼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데 드라마에선 인조의 장남 소현세자의 삼남 이석견이 중심이다. 훈련원 교관에서 노비로 전락한 ‘송태하’(오지호 분)는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함께 부국강병한 조선을 세우자는 꿈을 키운 소현세자가 죽자 그의 아들 ‘이석견’(김진우 분)을 유일한 희망이라 여긴다. 반면 실세인 좌의정 ‘이경식’(김응수 분)은 이석견을 암살하려 한다. 결국 이석견을 지키려는 송태하와 암살하려는 이경식의 대결이 드라마 <추노>의 커다란 이야기 줄기 가운데 하나인 셈.
이런 드라마 속 대결 구도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우선 송태하라는 인물부터 미심쩍다. 그는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을 해 병자호란이 끝난 뒤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청나라 대장군 용골대와 수장승부를 겨루지만 승부를 내지 못하고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로 간 것으로 설정된 인물이다. 전쟁이 끝난 상황에서 수만의 청나라 군대에 홀로 맞서 적의 수장 용골대와 수장승부를 겨뤘다는 설정은 다소 지나친 미화로 보인다. 인물의 현실성 싱크로율이 크게 떨어지는 대신 송태하가 반청 의식을 가진 인물임은 분명히 보여준다.
소현세자는 청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뒤 학질로 사망한다. 그렇지만 인조가 암살했다고 보는 게 사학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소현세자를 치료한 의관 이형익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인조는 종법까지 어겨가며 소현세자의 아들인 원손 석철이 아닌 자신의 둘째 아들 봉림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이후 석철 등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두 아들이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막내 이석견만 남는다. 이런 상황은 역사와 드라마가 거의 일치하며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그런데 왜 인조가 소현세자 대신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선택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 돌아온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인조를 만나 전혀 다른 청에 대한 입장을 보인다. 봉림대군은 청에 강한 반감을 보인 데 반해 소현세자는 청 세조가 도량이 넓다며 청에 호감을 보인 것. 사학자들은 삼전도의 굴욕 이후 청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인조가 두 아들의 청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접한 뒤 봉림대군을 후계자로 결정해 소현세자 일가를 몰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이런 역사적인 해석은 드라마 <추노>와 비슷하나 송태하라는 인물은 싱크로율이 크게 떨어진다. 송태하는 반청 기치를 든 봉림대군(효종이 된 뒤 북벌 정책까지 편)을 지지해야 하나 친청 입장을 펴다 죽은 소현세자를 지지하고 있다. 결국 역사적 상황을 놓고 보면 이석견을 이용해 나라를 바로 세우려 하는 송태하와 그의 스승 ‘임영호’(이대로 분) 등이 친청 세력이고, 좌의정 이경식과 철웅(이종혁 분) 등을 반청 세력으로 봐야 한다. 물론 드라마가 진행되며 송태하가 청나라에서 소현세자와 함께 청의 문물에 눈을 떠 청에 호감을 갖게 된 친청 세력임이 밝혀질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드라마는 송태하를 반청 인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인조의 의지가 아닌 권력가인 이경식 주도로 봉림대군을 옹립하려는 모양세 역시 역사와의 싱크로율이 크게 떨어진다.
드라마 <추노>에서 눈길을 끄는 제3의 인물은 공형진이다. 어쩌면 이 드라마에서 진정한 노비를 그려내고 있는 배우는 여전히 자신을 양반이라 여기는 송태하가 아닌 ‘업복’(공형진 분)이다. 업복은 관동 포수였지만 선대에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노비가 된 뒤 도망치려다 ‘대길’(장혁 분)에게 붙잡혀 얼굴에 낙인이 찍힌 신세다. 그런데 양반을 죽이고 상놈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당(노비당)의 중추적 인물 ‘개놈이’(이두섭 분)를 만나면서 노비당에 입당하게 된다. 양반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가진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 세력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인조실록> 등의 역사 기록에 인조 시대의 커다란 민란이나 노비의 난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역시 이들의 개혁은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우선 도망 노비 출신인 ‘원기윤’(윤기원 분)이 노비당의 재산을 불리는 역할을 맡지만 본래가 사기꾼인 그가 노비당을 위기로 몰아넣을 예정이다. 또한 아직 드라마에선 노비당에 지령을 내리는 ‘그분’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차후 ‘그분’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노비당은 상놈이 주인되는 세상이 아닌 무서운 음모의 일부였음이 밝혀질 예정이다. 결국 노비당이 그들이 꿈꾸는 개혁이 이루지 못한다는 부분은 역사적 현실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추노>는 기획의도에서 당시 저잣거리의 절반 이상이던 노비를 오늘날의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 비유하며 요즘에도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인조 시대의 민초 업복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민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드라마 속 업복이 꿈꾸는 세상 역시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중이 꿈꾸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업복과 노비당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와 오늘날 민중들의 현실이 보여줄 싱크로율은 앞으로 드라마 <추노>를 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배역의 싱크로율
'언년이'는 쫓기면서도 꽃단장
우선 윤기원 조희봉 성동일 이한위 윤문식 안석환 김응수 등 한두 명만 있어도 극의 활력을 살릴 실력파 조연 배우가 10여 명이나 출연한다. 이들은 대부분 기존 연기 색깔을 유지하면서 드라마 <추노>에 녹아들어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다.
주연 배우들을 살펴보면 오지호의 변신이 눈에 띈다. 오지호는 본래 남성미가 뛰어난 배우지만 지금까지는 오히려 남성성을 죽이는 연기를 주로 선보여 왔다. 그의 히트작인 <내조의 여왕> <환상의 커플> <두번째 프러포즈> 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한 남성상이다. <내조의 여왕> 사우나 신 등에서 탄력 있는 몸매를 드러내는 등 잠깐씩 내재된 남성성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에서 제대로 된 남성성을 선보이고 있는 것. 기존 연기 톤과는 싱크로율이 다소 떨어지지만 배우 오지호의 진정한 매력과는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보이는 배역이라는 평이 더 지배적이다.
장혁의 경우 본연의 남성적인 연기에 코믹 색채를 다해 ‘대길’ 캐릭터를 완성했다. <고맙습니다> <타짜> 등에서 보여준 연기 색깔에 <화산고> <명랑소녀 성공기> 등에서 선보인 코믹 연기를 더했다. 그만큼 싱크로율이 높다. 또한 상반신 노출 장면이 많은 것이 탄탄한 몸매를 드러낼 기회로 연결돼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 이다해에 대해선 평이 엇갈린다. 기존 연기 톤과의 극중 배역 ‘언년이’의 싱크로율은 높은 편이지만 드라마 <추노>와 ‘언년이’의 싱크로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 도망 다니는 신세지만 늘 고운 자태를 드러내며 남장을 해도 남자처럼 보이지 않는 등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싱크로율이 떨어진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회상 신에 등장한 과거 노비 시절의 분장까지 개그 프로그램 출연진처럼 웃기게 보일 뿐 현실적이지 않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제작방식의 싱크로율
새로운 시도 눈에 띄네
촬영 기법 역시 기존 방식과는 싱크로율이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새롭다. <추노>는 영화 <국가대표>에서 활용한 영화용 레드원 카메라를 국내 드라마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액션장면 촬영 때 고속과 저속 촬영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됐고 HD 화면보다 4배 뛰어난 해상도에 화면 배경이 어두워도 피사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이는 등의 장점까지 갖췄다.
반면 요즘 영화계와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과는 싱크로율이 높다. 드라마 <추노>의 작가는 영화 <7급 공무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등을 제작한 영화사 하리마오픽쳐스의 천성일 대표다. 그동안 영화 <7급 공무원>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원스 어폰어 타임> 등의 각본을 쓴 그가 이번엔 드라마 <추노>의 대본을 맡았다. 배우들의 이동이 잦아졌고 감독들의 이동이 종종 있었지만 영화사 대표가 드라마 작가로 변신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