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기자 안 만나요…죄송합니다”
손학규 전 고문은 강진까지 찾아온 기자에게 “이제 차 대접도 안 될 것 같다”고 말하곤 토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원 안은 점심 공양에 참여하기 위해 백련사에 들른 손 전 고문.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약속을 하면 오히려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지난 11월 11일 <일요신문>이 손학규 전 고문을 만나러 강진 백련사로 내려가기 전, 측근에게 만나는 방법을 묻자 나온 답변이다. 이 측근은 “손 전 고문은 정치인과 언론인은 만나려 하지 않는다. 약속을 잡으려고 시간을 말하면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자리를 비우고 몸을 피해 있을 것이다”라며 “특히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마음이 많이 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재팀은 손 전 고문이 머물고 있는 강진 백련사로 향했다. 8명의 국사, 8명의 대사를 배출한 백련사는 앞으로는 탁 트인 바다, 뒤로는 만덕산을 끼고 있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측근에 따르면 손 전 고문이 머물고 있는 토굴은 지난 1973년 한 불자가 수행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수련하던 불자도 떠나고 방치돼 있던 토굴을 손 전 고문이 거처로 삼은 것이다. 처음부터 열악하던 토굴은 방치까지 되면서 사람이 살기 힘든 지경이 됐고, 손 전 고문이 머물면서 조금씩 수리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이 토굴을 만든 불자가 입적하기 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백련사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일요신문>은 지난해 10월 이 토굴을 찾았다(1172호 보도). 당시 손 전 고문은 “지금 묵언수행 중입니다. 취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 함께 취재진에게 뽕잎차를 대접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바 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토굴은 여전히 사람이 살기에 열악해 보였다. 산 속 깊이 자리한 탓에 지난해에는 토굴을 찾기까지 몇 시간을 소비했지만 이번에는 능숙하게 찾아 낼 수 있었다.
토굴 앞마당에는 작은 채소밭을 만들어 고추와 토마토를 기르고 툇마루에는 도토리를 널어 말리고 있었다. 창문가와 문지방에 귤과 바나나가 놓여 있었다. 손 전 고문의 다른 측근은 “지지자들이 때때로 과일이나 먹을거리를 놓고 간다”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점은 키보다 높게 쌓인 장작이 토굴 주변을 빼곡히 두르고 있다는 것. 장작은 모두 손 전 고문이 손수 팼다고 한다. 새벽까지 폭탄주를 마셔도 조찬에 먼저 도착해 있어 정계에 소문난 손 전 고문의 체력이 강진에서도 여전해 보였다.
토굴을 한 바퀴 돌며 손 전 고문의 이름을 부르자 문이 열렸다. 손 전 고문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최근 보도로 인해 앞으로 기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차라도 한 잔 주십사 부탁하자 손 전 고문은 “이제 차 대접도 안 될 것 같다”며 “죄송합니다”라면서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손학규 전 고문이 직접 팬 장작이 벽에 쌓여 있다. 아래는 토굴 근처의 새 집터.
손 전 고문이 기거하고 있는 백련사 관계자는 “손 전 고문의 지지자들이 버스를 대절해 찾아오고 삼삼오오로 짝을 지어 오는 통에 정신이 없다”며 “손 전 고문을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사찰로서도 힘든 점이 있다”고 말했다.
백련사 인근 다산초당에서 다산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윤동환 전 강진군수는 “지난해 이곳으로 내려왔을 때는 오래도록 머무르면서 다산 정신을 따르고 전파해주셨으면 했다. 하지만 최근에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나라가 국운이 있어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 큰일을 하게 됐으면 좋겠다”며 “아직 말 해본 적은 없지만 꼭 정계 복귀가 아니더라도 손 전 고문이 1년 이상 열심히 다산을 공부한 만큼 내년부터는 대학 강연 등으로 다산 정신을 전파하시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산기념관 근처에는 지난해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손 전 고문 토굴 근처에 새로운 거처가 마련된다’며 공개한 터파기 공사 현장이 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별다른 진행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터를 파낸 공터 주변으로 향나무 수십 그루를 심어 놓은 것 이외에 조금의 변화도 없어 보였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그 공사는 손 전 고문과 무관하게 지지자들이 추진했던 것으로 안다”며 “공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의 한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사는 “토굴에서 언제까지 지낼 수는 없다. 강진에서 장기적으로 기거하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고 그 집을 지을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곧 공사가 진행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은 하루를 더 기다려 12일 백련사 점심 공양에 참여했다. 손 전 고문은 보통 점심 공양 한 끼를 먹고 나머지 끼니는 생식만 하고 있다. 이날 점심 공양에 참여하기 위해 방 안으로 들어온 손 전 고문은 1년 넘게 부대낀 백련사 식구들에게 ‘맛있게 많이 드세요’, ‘얼굴이 좋아 보인다’ 등 반가운 인사말을 전했지만 취재진은 회피했다. 손 전 대표의 식사 모습을 보고 백련사를 나오니 저 멀리 바다를 끼고 있는 강진만이 보였다. 강진만 넘어 서울로 가는 길은 현정국처럼 안개가 자욱했다.
전남 강진=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