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연정 불씨 충청서 되살린다
|
||
| ▲ 노무현 대통령 | ||
노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여권 수뇌부와의 회동에서 “한나라당, 민주당 등 야당과의 연정도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언급하면서 정가에 떠오른 ‘연정론’은 지난 여름 정국을 뜨겁게 달군 화두였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대(大)연정’까지 제안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고, 이후 연정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노 대통령 스스로 지난 9월 초 외국 순방 기간 중 “당분간 연정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여권 내부에서도 10월 초 “연정은 물 건너갔다”며 연정론 폐기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연정에 대한 ‘미련’을 아직 버리지 못한 채 최근 심대평 충남지사가 주도하는 중부권 신당인 ‘국민중심당’(가칭 국민당)과의 ‘소(小)연정’을 모색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10월19일 공식적으로 창당을 선언한 국민당의 심대평 충남지사는 사흘 뒤인 지난 22일 대전 시내 한 식당에서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과 두 시간여 동안 오찬 회동을 가졌다. 대전고 선후배 관계인 심 지사와 김 의원은 그동안 “서로 만나도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해왔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거리를 뒀던 사이. 심지어 한때 김 의원은 중부권 신당에 대해 ‘충청지역당 아니냐’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심-김 회동이 이루어지자 정가에선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이날 두 사람은 회동을 마친 다음 “국민당의 창당 취지와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정책에 비슷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 제도개선 등을 통해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과연 이뿐이었을까. 돌파구가 필요한 노 대통령의 측근 정객과 디딤돌이 절실한 신당 산파의 만남. 자연 두 사람의 전격적인 회동 배경과 대화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난 10월27일 국회 윤리특위위원장실에서 김 의원을 만났다.
김 의원은 22일 회동 배경에 대해 “서울시 의회가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행정도시 특별법 위헌 제소와 관련해 함께 상의하고 대책도 강구하자는 취지에서 만났던 것이다. 행정도시 문제는 충청권에선 초미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 지사와 행정도시 합헌 판결을 촉구하자는 데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관심을 끄는 것은 이날 ‘심-김’ 두 사람이 행정도시 문제만을 논의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김 의원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내가 심 지사에게 ‘신당(국민당)도 자민련과 비슷한 지역주의 정당이 아니냐’고 묻자 심 지사가 펄쩍 뛰었다. ‘절대 지역주의 정당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고 하더라. 심 지사도 자민련과 같은 지역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이나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책에 대해 동의한다’고 했다.”
심 지사도 참여정부가 항상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는 게 절실하다’는 데 공감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심 지사는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선거법 개정과 같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는 것.
김 의원이 전한 심 지사의 이 같은 발언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선거법이라도 개정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안과 일맥상통하는 견해여서 주목된다. ‘노심’(盧心)과 ‘심심’(沈心)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심 지사는 또한 “내가 관료 생활을 오래하다보니까 정치적으로도 뒷받침이 돼야 지역발전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는 게 김 의원의 전언. 그러면서 심 지사가 한 발 더 나가 “지방균형발전법이나 행정도시 건설 등으로 지방분권시대를 열려는 참여정부의 정책과 신당의 정책이 맥을 같이하는 것 같다”고 ‘속내’를 드러냈다는 것. 열린우리당과 국민당의 ‘소연정’ 실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날 ‘심-김’은 “평소에도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면서 “신뢰의 채널을 갖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여기서 언급한 ‘신뢰의 채널’이 ‘소연정’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김 의원은 “거기(소연정)까지 가기는 아직 이르지만 신당이 열린우리당과 향후 연대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만 말했다.
|
||
이 인사는 여권 핵심부가 김 의원을 ‘신당 접촉 채널’로 채택한 것에 대해 “청와대에선 김 의원이 심 지사와 동향이고 동문인 데다 여당 의원 가운데 충청권의 최다선(3선) 의원이라는 점을 고려했다”며 “심 지사 입장에서도 김 의원이 고향 후배인 데다 대통령과 가깝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신당 소연정설’에 대해 김 의원에게 지난 10월28일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얘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며 상당히 말을 아꼈다. ‘심 지사와의 회동 이전에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심 지사측 인사는 “(심) 지사님과 김 의원이 만나기 전에 김 의원과 청와대가 사전에 협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처럼 청와대와 국민당 사이에는 소연정을 고리로 한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의 충청지역 출신 한 의원은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난 이후 사석에서 “97년 DJP연합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충청 민심을 끌어안지 않고서 대통령에 오른 사람이 있느냐. 여당이 이대로 가면 내년 지방선거는 고사하고 차기 대선에서도 충청 표를 받기 힘들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의 인사문제에서 충청 출신들은 하마평에만 오를 뿐 실제로 내각에 임명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충청 주민들은 ‘대통령을 만들어주고서도 들러리만 서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번 10·26 재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여당 일각에서도 “지난 98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연합공천을 했듯이 내년 지방선거에선 각 정당과 소연정을 통해 지역별 연합공천을 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대선에서도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재선거의 패배로 여당이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신당과의 소연정을 구상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향후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