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미·야성미 오가는 ‘두 얼굴의 미녀’
10년 단위로 끊어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할리우드 섹시 여배우의 계보는 1950년대는 마릴린 먼로였고 1960년대는 라쿠엘 웰치였으며 1970년대는 보 데릭이었다. 먼로의 백치미, 웰치의 자연미, 데릭의 야생성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수많은 남성 관객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는 단연 킴 베이싱어의 시대다. 그녀는 선배들의 미덕을 모두 겸비하며 여기에 ‘플러스알파’를 한다. 묘한 긴장감을 지닌 베이싱어의 마스크엔 쉽게 규정될 수 없는 관능미가 있었으며 그녀는 본드걸부터 여피족까지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다. 독일과 스웨덴과 아일랜드와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섞인 그녀의 눈빛이 그토록 신비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베이싱어의 섹슈얼리티엔 능동성과 수동성이 공존했다. 이것은 그녀의 성장 배경 탓이기도 한데 그녀의 부모는 얌전하고 소극적인 딸의 성격 개조를 위해 발레를 시켰고 그것을 계기로 엔터테인먼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베이싱어는 모델을 거쳐 배우가 됐다. 이처럼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처음부터 후끈 달아오르는 스타일이 아니라 서서히 뜨거워져 급기야 터져 버리는 폭탄 같은 이미지였다. “내 안에는 두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자연인 킴 베이싱어와 직관과 본능에 의한 킴 베이싱어. 이 사실을 부정할 때 그들은 나를 괴롭히지만 그대로 따르면 매우 편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중성은 그녀가 지닌 최고의 무기다.
틴에이저 시절 미인대회를 통해 조금씩 영화계에 접근하던 그녀는 스무 살에 이미 톱 모델이 되었고 1970년대엔 각종 광고와 잡지 화보를 누비며 TV 시리즈를 통해 연기력을 쌓는다. 이때 <킹콩>(1976) 오디션에 도전했지만 아깝게 2등을 차지하며 영화계 진출이 좌절된 그녀는 1981년 <하드 컨트리>로 영화배우가 된다(이때 현장에서 만난 14세 연상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론 스나이더와 결혼해 8년 동안 함께 살았다).
서른 살에 출연한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1983)의 본드걸 역할로 섹시 스타의 반열에 오른 베이싱어는 <내츄럴>(1984)의 팜므 파탈 역할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결정타는 <나인 하프 위크>(1986). 미키 루크와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미스터리한 남자에게 서서히 빠져들며 본능을 발견하고 SM 콘셉트의 섹스를 즐기게 되는 여피족 엘리자베스 역할을 맡았다. 남자의 전화 목소리에 아찔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비가 쏟아지는 계단에서 격정적인 정사를 나누며, 연인 앞에서 스트립 댄스를 선보이는 킴 베이싱어의 모습은 이전 세대의 섹시함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냉장고 앞에서 온갖 음식을 이용해 섹슈얼한 느낌을 연출하는 부분은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된 명장면이다.
베이싱어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섹시남들과 공연했다. 숀 코너리와 로버트 레드포드로 시작되는 그 리스트는 미키 루크와 리처드 기어와 브루스 윌리스를 거쳐 <결혼하는 남자>(1991)에서 알렉 볼드윈에 도착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에 빠진 그들은 결혼했고(이후 9년 동안 함께 살았다) <겟어웨이>(1993)에서 공연했을 땐 섹스 신에서 실제로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잠시 침체기를 겪던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불어넣어준 영화는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