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는 정말 쪽팔린다. 졸지에 동성애자가 되는 순간이기 때문. 하여간에 지방 원정 가서도 같은 방을 쓰는 선수가 룸메이트다. 대체적으로 투수는 투수하고 야수는 야수하고 같은 방을 쓰는데 한 팀에 몇 년간 있다보면 룸메이트는 거의 고정돼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돼 옮겨간 팀에서는 지정해 준 선수와 싫든 좋든 ‘합방’을 해야된다. 새로운 팀에서의 시작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트레이트돼 본 선수만이 안다. 그런데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하고 분위기 적응이 안된 선수한테 그 팀에서도 룸메이트 기피 인물 베스트 3위 안에 든 선수를 붙여 주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 팀 동료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하루에 한 번 웃을까말까하는, 룸메이트로 결코 달갑지 않은 그런 선수를 배정해주면 트레이드된 선수는 점점 폐쇄적으로 변할 수 있다. 가정이 편치 않은 남자가 사회 생활도 못하는 거와 똑같은 거다.
그렇다고 무슨 ‘기쁨조’를 투입시켜서 즐겁게 해주라는 게 아니다. 그 선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교성도 있고 나이라도 엇비슷한 선수와 짝을 지어주면 팀 적응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잘 나가던(?) 현역 시절, 동료 L선수가 하루는 필자를 찾아와서 자기는 원정이 무섭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를 묻자 한숨을 팍팍 쉬면서 자기가 야구선수인지 마사지사인지 원정 갈 때마다 헷갈린다는 것이다.
그 당시 L선수는 팀 내에서 5~6번을 칠 정도로 야구도 잘하고 그만큼 휴식시간도 필요한 선수였다. 그런데 룸메이트인 K선수가 매일 밤마다 자기가 잠들 때까지 마사지를 시킨다는 거다. 경기 끝나고 몸은 천근만근인데 선배 몸을 마사지할 때마다 죽을 맛이라며 울상을 짓는데 무지하게 불쌍해 보였다. 더군다나 그 K선수는 주전선수도 아니었다.
필자가 방을 바꿔달라고 요청해보라고 했더니 “형 누구 호박(?)날라가는 꼴 보려고 그래요?”하면서 “지금 마사지하러 방으로 가봐야 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마치 강제 징용에 끌려가는 꼴이었다.
또 다른 K선수는 밤마다 잠 잘 방을 구하러 다닌 적도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 룸메이트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따로 자는 줄 알았다. 그런데 K선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K의 룸메이트는 H선수였는데 그 인간은 고스톱 국가대표선수였다.
매일 새벽까지 고스톱을 때리다보니 방안에 담배연기가 자욱해 K로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기 몸 망가지는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치더라도 K는 무슨 죄로 방을 구걸하러 다닌단 말인가. 물론 오래 전 이야기지만 요즘도 룸메이트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개인행동을 하는 선수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선수여러분 경기 망치고 숙소에 오면 가장 의지가 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룸메이트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SBS해설위원 김남용 스포츠 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