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아시안게임을 목표로 한창 훈련 중인 대표팀은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나 내부적으론 박항서 감독과 축구협회의 알력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중. 월드컵 히딩크 사단에선 감독과 선수와의 메신저 역할을 맡아 히딩크 감독의 총애를 받았던 박 감독이지만 막상 대표팀 운영을 떠맡게된 이후부터 벌어진 상황은 결코 ‘빛나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특히 남북통일축구대회 직후 축구협회의 남광우 총장이 박 감독의 임기를 아시안게임 때까지라고 못박는 등 박 감독의 입지를 어지럽히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박 감독과 협회는 은연중 ‘적’이 되고 말았다.
박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23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후 가장 먼저 코칭스태프를 인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우선 대표팀 감독 자리를 놓고 막판까지 이름이 오르내린 정해성 전 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수석코치를 맡아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노’. 박 감독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반응이기 때문에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 다음이 김현태 골키퍼 코치였다. 그러나 김 코치도 강경한 태도로 뜻이 없음을 밝혔다. 정 전 코치가 한때 감독 물망에 올랐다가 탈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대표팀 코치로 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
▲ 지난 7일 열린 12년 만의 남북통일축구대회서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맨왼쪽)과 코칭스태프. 이종현 기자 | ||
수석코치로 내정되기까지의 과정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물난에 허덕이던 박 감독이 ‘짧고 깊은’ 생각 끝에 지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 코치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결국 최 코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박 감독의 입장을 고려해서 고민 끝에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 코치 또한 아시안게임 때까지만이라고 못박았고 박 감독도 협회와 상의 후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이렇게 될 경우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박 감독의 유임 여부에 상관 없이 두 코치는 대표팀에서 떠난다는 시나리오가 작성된다.
그렇다면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박 감독의 계약 기간은 언제까지인가. 박 감독이 처음 감독직을 고사했다가 번복했던 이유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까지라는 협회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아시안게임 때까지만이라고 언급하는 협회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축구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대표팀의 한 관계자는 “처음 23세 이하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며 협회에서 내건 조건이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그러나 감독 연봉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박 감독과 협회의 입장이 크게 차이가 나 계약을 하지 못했다”면서 “박 감독은 연봉 협상 당시 조중연 전무를 만나지도 못했고 남광우 총장이 마치 시장에서 가격 흥정하는 태도를 취해 박 감독이 무척 불쾌해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이 어느 정도의 연봉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대표팀 코칭스태프들은 협회에 선수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월드컵때처럼 좋은 성적을 낼 경우 포상금을 지급해주자는 내용을 건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후문.
협회의 반응은 한 마디로 어떻게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 “협회는 마치 농사를 다 지은 듯한 분위기다. 구색 갖춰줬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인데 도대체 지금 협회의 주관심사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게 한 코칭스태프의 한탄이다.
현재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는 3명의 코치가 있다. 그러나 누구 하나 협회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은 사람이 없다. A코치는 “전임 코치라고는 하는데 계약서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아직 월급을 받지 못해 협회에서 코치 월급을 어떻게 책정했는지 모르겠다”며 얼렁뚱땅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협회 행정에 대해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
히딩크 감독한테는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다는 태도를 보이다가 국내 감독한테는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둘러대며 관심과 지원을 미루고 있는 협회의 태도에 대해 과연 박 감독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