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한 선수의 무책임한 말 한마디로 인해 야구판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있었다. 삼성 진갑용 선수가 약물을 복용하고서는 도핑 테스트 결과가 두려운 나머지 후배선수를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뽑히게 하기 위해 자신의 소변 샘플에 일부러 남성호르몬을 몇 방울 탔다고 말한 것.
그래서 자신은 고의로 탈락하고 후배선수를 대표선수로 밀어주겠다는 뜻인데 이게 무슨 ‘고스톱 판에서 친한 놈 밀어주기’란 말인가. 결국 파문이 일자 진갑용은 농담이었다고 말을 바꿨지만 경솔한 발언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필자는 야구선수가 성적도 중요하지만 인터뷰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에 연습을 해둬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그날의 수훈선수가 됐을 때 기자들이 질문하면 경기할 때보다 더 긴장하는 선수들이 있다. 기자들은 편안하게 질문하는데 그 수훈선수는 마치 심문 당하는 자세로 굳어있다. 그리고 기껏 하는 말이 뻔하다. “저를 믿어 주신 감독님께 감사 드린다. 개인 성적에는 욕심 없고 오직 팀을 위해 뛰겠다.” 솔직히 말하면 감독이 포기하고 다음 이닝을 구상하고 있을 때 그 선수가 생각하지도 않은 안타를 쳐서 팀이 이길 수도 있다.
그런데 감독이 믿어주다니. 또 오로지 팀을 위해 뛴다는 선수. 그럼 누군 옆집 아저씨를 위해 뛰나. 좀더 솔직해지자. 그러면 세련된 멘트가 분명히 나온다. 예전에 필자가 뛰던 팀에 있던 K라는 선수가 모처럼 1군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날 경기가 11회 연장까지 가는 바람에 마침내 K한테 기회가 돌아왔다. 감독은 “야수가 K밖에 없느냐”며 짜증을 내더니 할 수 없이 대타로 내보냈다. 그런데 K가 ‘바가지’ 안타를 쳐서 우리가 극적으로 이겼다.
K는 그 경기에서 수훈선수로 뽑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다음날 신문에 딱 두 줄 나왔다. ‘끝까지 저를 믿어주신 감독님께 감사 드린다.’ 사실 감독이 K를 끝까지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 때 말 한마디 잘못해서 집중적인 견제를 받을 수도 있다. 가령 신인선수가 잘한다고 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프로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노려볼 만하다.’ 뭐 이런 식으로 말했다가는 그 시즌 끝까지 뛰기 힘들어진다. 이것도 요령이 없는 거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92년도 아니면 93년도인데 당시 선동열 선수는 3년 가까이 패전이 없었고 40이닝정도 실점이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결승타를 치면서 선동열 선수가 실점을 해 패전투수가 된 적이 있었다. 그날 한 마디로 난리가 났다. 당연히 필자는 기자들한테 둘러싸여 인터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동열 선수는 국보급 투수고 필자의 고려대 6년 선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터뷰 때 마냥 잘난 체 할 수 없었다. 만약 어떤 구질을 노려서 쳤다, 타석에서 자신감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면 선동열 선수를 자극했을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한테 화장실 갔다온다며 시간을 번 후에 이렇게 말했다. “어디 제 정신이라면 선동열 선수 공을 칠 수 있겠어요. 내가 정상이 아닌가보죠.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네요. 근데 아까 무슨 일 있었어요?” 다음날 신문에 이런 제목이 실렸다. ‘무등산 폭격기를 그라운드 개그맨이 격추시키다’라고. SBS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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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사 ( 2024.10.27 16: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