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풀어논 정해성 전 코치.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하고 싶은 말, 억울한 심정, 가슴에 차마 담아두고만 있을 수 없는 사연들이 많았지만 ‘하룻밤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에 대해선 기사화하지 말 것을 거듭 부탁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찜찜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드컵 직후부터 언론에선 이미 박항서 신임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뒤를 잇게 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정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협회의 연락을 받았다. 상황이 힘든 줄 알면서 고민 끝에 결정했다. 다음날 기술위원회에서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나름대로 대표팀 구상도 해보고 선발 선수들에 대한 묘안도 짜내며 바쁘게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에 완전히 다른 결정이 나온 것이다.”
그는 박 감독 체제로 갈 경우라면 수석코치 자리는 맡아선 안된다고 생각했단다. 감독이 되지 못해서가 아니라 축구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빠지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믿었다는 설명이다. ‘하룻밤’동안 그는 정말 여러 가지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선수 선발에 대한 방법에서부터 와일드 카드의 활용 방안, 코칭스태프의 전문적인 역할 분담까지 구체적인 카드들을 만들기 위해 밤을 꼬박 새웠던 얘기를 우스갯소리 삼아 털어놓았다.
▲ 연습장면 | ||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해서 들은 내용을 이렇듯 ‘요점 정리’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아침엔 감독이었다가 저녁에 다시 코치로 전락한 진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들이 분분했던 터라 당사자의 입을 통해 나온 얘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감독 해프닝’에 관한 뒷 얘기는 일단락하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며 맥주를 주고받았다. 월드컵 얘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외국인 감독과 각기 다른 역할이 주어진 3명의 코치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는지를 물었다. ‘방송용 멘트’가 아닌 진실을 알고 싶다는 토를 달았다.
“처음엔 코치직을 고사할 생각도 했었다. 내 성격상 외국인 감독 밑에서 제대로 배겨 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고민 끝에 오로지 배우겠다는 자세로 남아 있었다. 처음엔 선수들 워밍업을 주업무로 배정받아 당황했었다. 그래도 프로팀에서 수석코치까지 했는데 워밍업 전담 코치라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히딩크 감독의 의중을 알게 됐고 1년 6개월간 감독과 제일 많이 싸우며 버텼고 참 많이 배웠다.”
‘행운아’라고까지 표현했다. 다른 건 몰라도 축구에 관한 한 히딩크 감독의 철학과 승부근성, 선수 다루는 방법 등이 탁월했고 그런 걸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아쉬운 부분 중에는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관련된 일을 꼽는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아내도 아닌 여자친구가 외국 전지훈련지의 선수단 숙소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과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엘리자베스가 나타나면 안색이 변한 것을 상대방도 눈치챘을 정도였다고.
그는 대표팀에서 가장 엄한 시어머니였다. 소위 ‘튀는’선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천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의 야단과 호통엔 꼼짝 못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다른 입장이었다. 애써 분위기 좋게 선수들을 다독거려 놓으면 꼭 그가 나서서 썰렁한 분위기로 바꿔 놓는다면서 통역인 전한진 축구협회 과장에게 ‘정 코치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란 소릴 자주 했다. 그러다 한국 선수들의 특성을 파악한 뒤에야 그의 방법이 중요 경기를 앞두고 큰 효과를 나타낸다는 걸 인정했다고 한다.
▲ 6월18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때의 모습. 왼쪽부터 김현태 박항서 정해성 코치. | ||
월드컵을 앞두고 차두리와 부딪혀서 갈비뼈가 부러졌던 일을 떠올렸다. 다치고 나서 차두리가 원망스럽지 않았는지 슬쩍 떠봤더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차두리가 어머니인 오은미씨에게 ‘자진 신고’를 하는 바람에 오씨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됐는데 그때 오씨가 위로 삼아 한 말이 재밌다. “어쩌다 두리랑 그랬어? 우리 두리랑 부딪히면 안된다니까.”
그는 수석 코치였던 핌 베어백 코치를 통해 수석 코치의 전형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감독이 잘못할 경우엔 언쟁이 벌어지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나서지 않았다. 철저히 감독 뒤에 있었고 절대 오버하지 않았다. 단 훈련 프로그램에 관한 한 감독도 터치하지 못하게끔 고유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그는 예정대로라면 28일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다. 히딩크 감독과 핌 베어백 코치(아인트호벤 2군 감독)가 있는 아인트호벤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유학을 결정한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어떤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네 나이에 젊은 감독 밑에서 코치 생활할 수 있겠느냐, 기회가 왔을 때 후회하지 말고 미리 준비하라’는 부탁이었다. 절절히 와 닿았다. 내 색깔을 만들고 싶었다. 히딩크 감독도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터라 큰 힘이 된다.” 6개월간의 짧은 일정이지만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유럽을 돌아다니며 많이 보고 많이 느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마지막으로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출국 전에 꼭 만나고 가야 할 한 사람을 꼽는다면?” 그는 질문 의도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박 감독을 만나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싶다. 어차피 히딩크 감독과 함께 있기 때문에 박 감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챙겨줄 수 있을 것 같다. 대의를 위해서는 사심을 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맥주를 음료수처럼 마시고 일어섰다. 유학 갔다 돌아와서 거나하게 한 잔 하자는 약속을 끝으로 돌아서는데 또 한 번 ‘공지사항’을 전한다. “이 기자, 처음에 한 얘기는 기사로 쓰는 거 아니죠?”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