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의 오심으로 피해를 입은 대전시티즌은 두 번이나 연 맹에 제소장을 써야했다 [대한매일] | ||
심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는 전제를 깔더라도, 하나의 판정에 대해 바라보는 구단, 연맹, 심판들의 견해는 마치 서로 다른 일을 갖고 평가하는 것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뿌리깊게 박힌 판정 불신 사태를 긴급 점검해 본다.
지난 7월17일 안양전에서 명백한 오심으로 김은중의 헤딩골을 득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대전은 프로축구연맹 제소를 통해 당시 골라인아웃을 선언한 김광중 부심에게 ‘잔여경기 출장금지’라는 중징계를 내리게 했지만 ‘도둑 맞은 첫 승’을 보상받지는 못했다.
7월28일 성남전에서는 수원 김호 감독이 경기 후 주심에게 격렬히 항의하다 ‘2경기 출장금지와 벌금 80만원’의 징계를 받았고 같은 날 안양의 이영진 코치도 울산과의 경기에서 같은 수위의 징계를 받았다. 또한 지난달 31일과 8월4일, 부산 김호곤 감독과 대전 이태호 감독은 심판의 매끄럽지 못한 경기운영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고 급기야 이 장면이 여과 없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매년 프로축구에서 판정 시비는 있어 왔지만 올해는 유달리 심판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표면적으로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에 심판들의 역량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구단과 연맹, 그리고 심판간의 불신의 골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특정 학교 출신의 심판들이 그라운드에서 장난을 친다거나 커넥션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은 이제 프로축구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각 구단 코칭 스태프는 자신들에게 유독 불리한 판정을 내리는 ‘혐오 심판 리스트’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확인이 안된 상황을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맹과 심판에 대한 각 구단의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10개 구단 모두 ‘심판이 오심도 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정서를 갖고 있다. 다만 명백한 오심이거나 고의성이 느껴진다고 할 정도의 편파판정에 대해서는 구단은 연맹에 재발방지를 촉구한다는 측면에서 제소 절차를 밟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연맹은 미봉책으로 그쳤고 이것이 결국 심판 불신을 가져왔다는 것이 구단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하지만 연맹의 입장은 정반대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심판 판정에 불신을 갖고 있는 코칭 스태프 밑에서 선수들이 배우는 게 뭐가 있겠냐”고 반문하면서 “월드컵에서도 한 경기에 15∼20번의 실수는 있는데 프로 경기에서 그때마다 항의를 다 받아주면 경기를 진행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이런 연맹의 반응에 대해 대전 구단의 유운호 과장은 “축구에 대한 소명의식이 없기 때문에 연맹 스스로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보다시피 1승 올리기가 너무나도 힘든데 경기력 이외의 영향으로 결과가 뒤집혀지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운동하려고 하겠느냐”며 연맹의 입장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최길수 심판위원장은 판정시비에 대해 심판들의 실수를 시인하면서도 심판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심판들의 집중력, 관찰력 등이 떨어지며 경기운영 미숙과 소신 없는 판정으로 이어졌다”면서도 “심판 판정에 대해서 감독과 선수들이 지나칠 정도로 언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최 위원장은 26명의 심판(올해에는 30명으로 시작)이 휴식 없이 계속 경기에 투입되어 실수할 가능성이 큰 ‘전임제’의 문제점을 인정하지만 외국처럼 ‘전담제’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내년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며 입장표명을 유보했다.
정규리그가 시작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대전 구단은 벌써 두 번째 제소장을 써야만 했다. 대전 구단은 이 제소장에서 ‘징계 수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과 팬들을 생각해 공정하게만 봐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연맹측은 오히려 구단의 피해의식과 서포터들의 과격함이 먼저 해결돼야 할 과제라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심판 배정에 감독과 선수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자기네들이 심판이 되겠다는 것과 같은 이치”라면서 “심판에 따라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라는 최 위원장의 발언이 구단, 연맹, 심판간의 불신의 벽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편, 심판위원회와 관련이 있는 한 인사는 “심판 배정에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데 현재 부족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면서 “외국심판 도입에 소극적인 연맹의 입장도 이해할 수 없지만 연맹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신 있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심판판정에도 다른 입김이 작용할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겼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