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50일 만에 그라운 드에 복귀한 김남일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 순간 소녀팬들의 귀가 시간까지 잊게 만든 주인공, 김남일(25·전남)은 숙소 밖으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2층 복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젠 그런 생활에 이력이 난 듯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팬들을 피해 다닐 수만은 없었다.
기자가 밖의 상황을 가리키면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가 피식 웃으며 “좀 꿀꿀하죠”라고 대답한다. 마침 그날은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그라운드에 나설 계획이었다가 폭우 때문에 경기가 취소된 터라 46일 만의 재기를 꿈꿨던 그로선 실망감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연예인을 취재하는 것 같다’는 탄식이 나올 만큼 인터뷰하기 어렵다고 소문이 났지만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달리 김남일은 월드컵 전이나 후나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기자에게 “자주 뵙던 분 같이 낯이 익다”고 익살을 떨길래 “설마 나이트는 아니겠죠?”라고 응수했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짓는다.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요.
▲전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아요. 죄송할 따름이죠. 기자분들을 자주 뵙고 소식도 전하고 예전처럼 생활하고 싶지만 지금은 참 힘들어요. 수요는 많고 공급에는 한계가 있는 거죠. 제 스타일이 원래 이렇지 않다는 거 아시잖아요. 재미없어요.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이 뭐예요.
▲하고 싶은 걸 못한다는 거죠. 당구를 2백 정도 치는데 당구장은 물론 PC방, 노래방도 갈 수가 없어요. 어딜 가도 숨어 있어야 하고 식당을 가도 오픈된 곳보다는 룸을 찾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연예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지내야 하는지…. 언제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해요.
―오늘 복귀전이 무산됐는데 어떤 각오로 그라운드에 나갈 생각이었어요.
▲얼마나 뛰고 싶었겠어요. 몸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죠. 다른 선수들보다 뒤늦게 뛰어든 터라 여러 가지로 불리하지만 도전해 보려고요. 도움왕이 목표예요. 제 위치가 골을 넣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다른 선수가 골을 성공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려고 해요.
―히딩크 감독이 보고 싶지 않나요.
▲정말 제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분 중 한 분이시죠. 그분을 만나고 제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거든요. 뭐가 달라졌냐구요? 음, 자신감이요. 히딩크 감독님 오시기 전까지는 제가 뭘 갖고 있는지도 몰랐고, 뭘 표현해야 하는지도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묵묵히 감독님 지시대로 뛰는 것이 욕먹지 않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히딩크 감독님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게끔 이끌어 주셨어요. 주위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지켜봐 주셨죠. 그 이후론 고정관념이란 게 없어졌어요. 뭐든지 생각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바꿔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팀으로 오라고 부탁해 온다면 갈 수도 있겠네요.
▲못가서 아쉬울 따름이죠. 시즌중이라고 해도 좋은 기회만 있다면 가고 싶어요.
―그동안 해외진출과 관련해서 숱한 설들이 무성했는데 지금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 거예요. 독일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마쿠스 한씨의 이야기로는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곳까지 전화해 보셨어요? 마쿠스 한씨에게는 분명히 얘기했어요. 확실히 결정되기 전까지 연락하지 말라고요. 물론 국내 언론에서 보도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건 맞아요. 그런데 제 입으로 말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기자분들이 알아서 쓰신 거지.
앞으로 해외 이적 문제에 대해서는 구단이나 언론에서 부풀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수의 갈 길을 막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해외 진출 문제뿐만 아니라 저에 대한 모든 기사가 그래요. 너무 띄워서 보도하면 정작 선수가 상처받아요. 만약 보도한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죠? 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거거든요.
―너무 인기가 높다보니 오히려 친구들이 거리감을 둘 것 같은데.
▲가끔 친구들이 놀려요. “야, 네가 언제부터 인기스타 김남일이냐”라면서.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친한 친구들은 절 알아요. 제가 어떤 놈인지. 대학 때 축구부에서 같이 활동했던 김기훈, 김대현이란 친구가 있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이죠. 요즘도 힘들 때는 가끔 만나 술 한잔하면서 속 깊은 얘길 나눠요. 그 애들 이름 꼭 좀 써주세요. 이럴 때 생색 좀 내게. 하하.
―어떤 김남일로 남고 싶어요.
▲축구 잘하는 김남일이요. 전 연예인이 아니에요. 종종 제 자신을 채찍질할 때가 있어요. 축구를 오래 하기 위해서죠.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김남일의 인기가 언제까지 가겠느냐’는 소리요. 전 정말 인기에 관심 없어요. 축구만 잘할 수 있다면. 제 겉모습이 아니라 축구를 통해서 진정한 평가를 받고 싶어요. (한참 있다가) 곧 그런 날이 오겠죠?
김남일은 최근의 광고 계약은 주위의 성화를 견디다 못해 결정한 사항이었지만 막상 거액(5억원)을 받고 보니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한다.
김남일과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방이 민망할 정도로 그를 쳐다봤다. 도대체 이 선수의 어떤 점이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걖겴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가식이 없다는 사실. 솔직하고 ‘아직은’ 순수하고 생각이 바른 썩 괜찮은 청년이라는 정도? 숙소를 나오는데 무리를 지어있는 팬들 중 한 여학생이 외친다. “언니, 남일 오빠 봤어요? 지금 안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