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 ||
그러나 7회까지 LG가 5-4로 한 점 앞서는 상황에서 이상훈이 마무리투수로 등판하고 첫 타자를 볼넷 허용, 주자는 만루가 됐다. 이때 기아에서 뜻밖의 선수를 기용했다. 올시즌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한 이대진이 대타로 나온 것. 이때까지 이대진은 시즌 9타수 무안타였고 타자로서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더구나 상대투수가 누군가! 이상훈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을 꺼다. 이게 웬 ‘호구(?)’하고.
그런데 그 ‘호구’가 역전 싹쓸이 3루타를 때려냈다. 결국 기아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경기 직후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이상훈이 어디론가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필자는 ‘이상훈이 라커룸에 가서 다 때려부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훈은 자기를 ‘아작’낸 이대진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청하고 등까지 두드려주며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정말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당황스러워하던 이대진의 얼굴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날 이상훈의 표정에서 필자는 분명히 느꼈다. 다음에 만나면 공3개 던져서 삼진 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낚시꾼들이 어린 고기를 잡으면 다시 놔주면서 그런 말을 한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분명 이상훈은 괜찮은 ‘낚시꾼’이다.
▲ 김응용 | ||
삼성 김응용 감독이 요즘 분명히 변했다. 일단 김 감독은 덩치에서 선수들을 주눅들게 한다. 그런데다 한번도 선수들 앞에서 웃는 적이 없다. 재밌는 건 기쁜 상황에서는 절대 웃질 않지만 기분 나쁘면 꼭 표현한다는 것이다.
덕아웃 의자를 집어던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고 선수들 방망이까지 부러뜨릴 때도 있다. 그리고 김 감독한테 잘했다는 말 한마디라도 들어본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가입시켜줘도 된다. 하지만 해태 재임 막판쯤에는 어린 선수 몇 명을 자신의 아파트에서 데리고 살면서 친할아버지처럼 보살펴줬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선수 사랑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는데 표현을 안 하는 거다.
김 감독은 41년생이다. 이젠 예전처럼 의자를 집어던지지 않는다. 그러기엔 기력도 달릴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김 감독이 경기 중에 농담도 자주 한다고 한다. 또 어느 선수가 실수를 하면 그걸 흉내까지 낸다고 들었다. 정말 획기적인 일이다.
선수들이 김 감독 때문에 웃을 수 있다는 걸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삼성이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6경기에서 5승1패를 했다.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선장이 부드러워지면서 겉만 번지르르하던 삼성호가 순탄한 항해를 하기 시작했다.
SBS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