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국 | ||
월드컵 열기에 탄력 받은 2002 K리그를 더욱 풍성한 볼거리로 만들고 있는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모두 2000시드니올림픽 대표팀 출신이라는 것.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모두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각각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다른 동료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봐야만 했던 아픔의 시간도 있었다.
▲ 전남 신병호 선수. [대한매일] | ||
아직 살아있다!(재기파)
신병호(전남)는 최근 네 경기 연속골로 마치 그동안의 방황을 깨끗하게 보상받으려는 듯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는 99년 10월 서울에서 열렸던 중국과의 올림픽 최종예선 1차전에서 천금같은 헤딩 결승골로 당시 한일전 2연패로 침몰 직전이었던 허정무호를 되살린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후 해외 진출설만 무성하다 결국 일본과 브라질 등 2부 리그를 전전했고 올해 울산 유니폼을 입으며 국내로 U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아디다스컵에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결국 전남으로 이적하는 아픔을 맛봤다. 다행히 정규리그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신병호는 이제 국내 프로무대에 완전 적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병호는 “고향 제주에서 혼자 훈련할 때 눈물을 머금고 백사장을 뛰었던 기억이 새롭다”면서 “주변의 칭찬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실망시켰던 부분을 좋은 플레이로 보답하겠다는 각오엔 변함이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진섭(울산) 역시 허정무 감독이 발굴한 가능성 높은 신인이었다. ‘좌영표 우진섭’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오른쪽 사이드 어태커로 명성을 날렸다가 드래프트제도를 반대하며 상무로 들어가면서 무게중심을 잃고 말았다. 제대 후 바로 해외진출이라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프로에 비해 기량이 떨어지는 아마추어의 한계만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박진섭은 “후회는 없다”는 소신을 내세우며 “오히려 앞으로 더 자유롭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즐겁다”고 밝혔다.
까치 머리로 변신하며 한 발 더 뛰는 성실함을 보이고 있는 이동국(포항)이 가장 눈길을 끈다. 자기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지겨울 정도로 받아온 이동국은 월드컵 대표팀의 외면이 오히려 보약이 된 경우다.
고종수(수원)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는 매번 고질적인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쳐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마치 월드컵 대표팀 탈락의 아쉬움을 분풀이하듯 최근 정규리그에서 팀내 공수 전반에 걸쳐 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부상에서 회복하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낄 선수는 또 있다. 대전 이태호 감독이 그렇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이관우다. 200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차 2순위로 대전에 입단한 이관우는 당시 10개 구단 모두 눈독을 들일 정도로 후한 점수를 받았지만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뒤처지게 됐다.
부산의 김용대와 심재원 또한 월드컵 본선무대를 눈앞에 두고 탈락한 응어리를 잊고 새롭게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언제나 한결 같이!(순항파)
올해 프로 3년차가 되는 이영표(안양)는 대표팀 발탁으로 프로무대에서 많은 활약을 못했지만 어떤 올림픽 대표선수보다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물론 운과 같은 요행보다는 성실한 플레이가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이었던 김도균(울산) 역시 굴곡 없는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는 선수. 또한 든든한 수비로 허정무 감독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던 박동혁(전북)도 안양과의 개막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전북 돌풍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 부상으로 인한 부진을 딛고 일어선 대전 의 이 관우 선수.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
월드컵의 전설! (급상승파)
올림픽 대표 출신으로 상종가를 친 선수로는 김남일(전남), 송종국(부산), 이천수(울산)를 꼽을 수 있다.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당찬 플레이로 발군의 기량을 선보인 이천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선수는 시드니올림픽 때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엄청난 신분 차이를 나타낸다.
허정무 감독에게 발탁된 김남일과 송종국 중 김남일은 중앙 수비를 든든하게 책임졌던 김도균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송종국은 예비멤버로 이름을 올려놓긴 했지만 결국 부상으로 중도 하차해야 했다.
지금 이 세 선수가 누리는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까지 가장 성공한 올림픽 대표선수라는 칭찬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지만 월드컵이란 엄청난 ‘보너스’가 선수들의 명암을 갈라놓기에 충분해 보인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설기현(벨기에 안더레흐트), 박지성, 안효연(이상 일본 교토 퍼플상가)을 제외한다면 올림픽대표팀의 주전들을 K리그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비록 이들이 걸어온 길에서 간발의 차이가 날지는 몰라도 정상을 향한 바람에는 조금의 차이도 없다. 4년 후 독일월드컵에서는 과연 이들의 운명이 또 어떻게 재편성될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