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빅리그에 대한 꿈을 접고 그 아래 단계에서부터 새로운 축구인생을 시작하는 이을용의 터키 진출 과정은 짧은 시간 동안 긴박하면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이을용의 터키 이적을 전담한 에이전트 최호규씨(하나스포츠 대표)를 통해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본다.
▲ 지난 7월29일 터키 트라브존과 계약한 뒤 귀국 기자회견을 갖는 이을용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을용은 터키로 출국하기 전까지도 자신의 해외 진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특히 터키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가 미리 알고 있으면 들뜰지도 모른다는 구단의 우려 때문에 알릴 수 없었다.”
에이전트 최씨에 의하면 이을용이 자신의 터키행을 처음 알게 된 시기는 지난 7월23일이었다고 한다. 부천 SK 구단 고위 관계자로부터 터키행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연봉이 50만달러 정도 된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이을용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생각 끝에 구단에 OK사인을 보냈고 구단에선 24일 울산전이 끝난 다음날 25일 출국한다는 통보를 해왔다. 해외진출을 소원하는 선수들 대부분이 구단과 밀고 당기는 지리한 싸움을 벌이는 것과 달리 이을용은 선수도, 언론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상태에서 비밀리에 진행됐던 것.
그러나 이을용의 터키행은 구단의 오락가락한 행정으로 무산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에이전트 최씨가 구단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은 날짜는 월드컵이 한창 진행중인 6월14일, 즉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직후였다. 강성길 단장이 월드컵 이후 한국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한 전망을 밝게 보고 미리 준비를 한 선견지명이 작용했다.
그런데 하루는 SK 사장단 회의에서 축구선수들의 해외진출 문제가 화제로 떠올랐다. 이을용을 외국으로 내보내기 위해 작업중이라는 강 단장의 설명을 들은 사장단 중 한 사람이 “그래도 우리 그룹의 간판 선수인데 함부로 외국에 보낼 수 있겠느냐”면서 재고할 것을 주문했다. 선수의 해외진출에 대한 고위층의 부정적인 여론을 확인한 강 단장은 즉시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위임장을 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최씨는 위임장을 돌려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강 단장에게 이적을 추진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킨 대신 위임장은 돌려주지 않았다.
“위임장이 없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을용의 해외진출을 알아봤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이 8강을 거쳐 4강까지 오르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때 강 단장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이을용의 해외진출을 다시 추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제서야 실토를 했다. 그동안 계속해서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터키 진출 전까지 가장 가능성이 높았던 팀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이었다. 이미 감독과 구단은 이을용을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고 구단주 사인만 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TV방송 두 곳이 부도나는 바람에 축구 중계가 차질을 빚게 됐고 중계권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구단으로선 경제적인 타격을 염려해 용병 선발을 꺼리게 된 것이다.
볼턴에선 계속해서 계약서에 사인하는 날짜를 연기했지만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터키로 방향을 급선회했고 터키와의 3·4위전 때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첫 골을 성공시킨 이을용에 대한 평가가 워낙 좋아 이적 협상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