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보가 ‘차기 캠프’로 샜다”
▲ 최근 “청와대 민정실 정보가 총리실을 거쳐 유력 대선주자 캠프로 새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왼쪽)과 국무총리실 모습. | ||
정보 흐름에 밝은 여권의 한 핵심 인사가 제기한 충격적인 주장이다. 이 인사가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최근 청와대 민정실은 국무총리실의 민정실 직원들이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대선 예비캠프’로 내부 정보를 유출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민정실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한 내사 결과를 최근 총리실에도 통보했으며, 이에 총리실은 민정실의 해당 직원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은 아직 2년여나 남아 있는 상황. 이 인사의 전언대로라면 일부 기관 직원들이 벌써부터 차기 대선 주자를 향해 줄서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다. 또한 “참여정부의 공직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과 함께 “조기 레임덕(권력누수현상)이 온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력 대선주자의 ‘사조직’ 관계자가 청와대와 총리실 내부의 정보를 비밀리에 전달 받았다면 그 쓰임새가 무엇인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청와대 민정실이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한 시점은 지난 10월 말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여권 핵심 인사는 “청와대 민정실이 국무총리실 민정실에 제공했던 정보들 가운데 일부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며 “그후 청와대 민정실이 총리실 민정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내사에 돌입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이와 함께 “청와대 내사 결과 총리실 민정실 몇몇 직원들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나라비전연구소’(공식명 ‘21세기나라비전연구소’) 관계자와 최근까지 비공식 정보 교류 모임을 가져왔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민정실은 국정 전반에 관한 민심과 여론동향을 파악하며, 사회 현안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또한 비위공직자에 대한 조사와 고위공직자의 복무 동향 등도 점검하고 있다. 그런데 민정실에서 수집한 정보들 가운데 총리실과 관련된 정보는 총리실로 따로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총리실로 전달된 정보 가운데 일부 내용이 외부로 유출됐다는 게 이 인사의 전언. 보다 구체적으로는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정동영 장관측 예비캠프인 나라비전연구소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 민정실은 총리실 민정실 직원들 가운데 누가 정보를 유출했는지 색출작업을 벌였고, 최근 총리실 민정실에 근무하는 직원 두 명을 적발했다는 것.
이 인사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실이 지목한 정보유출자는 경찰청에서 파견된 A씨와 다른 행정부처에서 파견 근무중인 직원 B씨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두 사람이 그동안 나라비전연구소 관계자와 만나 청와대에서 총리실로 전달된 내부 정보를 유출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
이 인사는 “A씨 등이 나라비전연구소 관계자에게 문서를 통해 정보를 전달했다기보다는 구두상으로 내부 정보를 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청와대 민정실은 최근 내사한 결과와 해당자 두 명의 명단을 총리실에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인사는 “일부 사정기관 직원들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 주자들에게 줄서기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를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청와대가 내사 작업을 벌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선캠프로 알려진 ‘나라비전연구소’ 입구. | ||
청와대 민정실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 “직접 조사한 적은 없다”고만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그것에 대해 말할 게 없다”며 “그런 사안이라면 총리실에 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만 답했다.
총리실측도 청와대측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총리실 민정실의 한 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그런 사안에 대해 청와대 민정실과 (내사에 대한) 공식적인 행정절차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청와대나 총리실은 ‘정보의 대선캠프 유출’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이 소식을 접한 정가에서는 청와대 정보의 ‘도착 지점’이 정동영 장관의 ‘예비 대선 캠프’로 알려진 나라비전연구소라는 점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3년 9월4일 공식 출범한 이 연구소는 정 장관이 국회의원이었던 지난해 4·15 총선 전까지는 후원회 겸 연구소로 병용되기도 했다. 당시 정 장관은 이 연구소의 이사로 있었다. 그러다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지난해 7월 이사직을 사임한 상태다.
학계와 문화계 인사 50여명이 연구소의 주축 멤버이며, 이들은 매달 자체 세미나를 갖고 있다. 현재는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정 장관이 대선 레이스에 본격 나설 경우 그의 정책과 공약의 산실 역할을 할 것으로 정치권에선 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연구소는 현재도 정 장관의 지인들에 대한 경조사와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관리하고 있다. 현재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과 박명광 열린우리당 의원이 공동 이사장으로 있으며, 경희대 국제학부 권만학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일요신문>제704호 12면 참조).
정가에서는 청와대와 총리실의 내부 정보가 나라비전연구소 관계자에게 흘러들어간 것이 과연 사실인지, 만약 그렇다면 이 같은 정보가 어떤 용도로 활용됐는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나라비전연구소 관계자는 ‘연구소 관계자 가운데 누가 총리실 민정실 직원들과 정보교류를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예전에 정 장관을 도와준 사람들 중의 한 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연구소 멤버도 아니고 상근자도 아니다.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우리 연구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청와대와 총리실은 내사 사실을 부인했고, 연구소측은 “(청와대 정보를 전해들은 사람이) 지금은 관련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 소식이 여권 일각에 알려지면서 청와대측이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들에 대한 ‘힘쏠림’ 현상이 일어나면서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보는 곧 권력인데 벌써부터 청와대나 총리실 내부 정보가 차기 주자 진영으로 샌다면 해가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데 새로운 해돋이를 맞으러 가는 꼴”이라면서도 “차는가 하면 어느새 기우는 권력의 속성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