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프리에이전트를 거쳐 텍사스에 정착한 올해는 시즌이 채 두 달도 안남은 가운데 4승5패에 그치고 있다. 10승까지 가려면 6승, 남은 경기는 11게임 정도. 확률적으로 보면 올 시즌 10승 달성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박찬호는 올해 16게임에 등판해 4게임 승, 5게임 패, 그리고 7게임은 승패와 무관했다. 정확히 계산하면 남은 시즌 2.8승, 3.4패, 4.8 노디시전(승패 없음)이 나온다. 반올림을 해도 3승3패에 5경기는 승패 없음이다. 그러나 야구가 숫자 놀음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통계는 큰 의미가 없다.
▲ 지난 99년처럼 후반에 승리를 몰아친다면 10승 달성이 꿈만은 아니다. | ||
박찬호의 컨디션, 레인저스팀의 현재 전력, 그리고 남은 상대팀의 전력 등 큰 변수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우선 박찬호의 상태는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 좋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계속 구위도 좋아지고, 심리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떤 약팀을 만나도 불안해하던 초반과 달리 이젠 강팀을 만나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제리 내론 감독이 ‘박찬호는 가능하면 5일마다 등판 원칙’을 결정함에 따라 대진운도 상당히 좋아졌다.당장 앞으로 상대할 3개 팀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으로 강팀과는 거리가 있는 전력의 약체들이다.
올 시즌 두 번 격돌해 1승에 방어율 4.77을 기록하고 있는 타이거스는 박찬호가 아메리칸리그 유니폼을 입고 첫 승을 거둔 팀이다. 5일 현재 41승69패로 아메리칸리그(AL) 중부조 최하위다. ESPN 파워 랭킹도 MLB 30개팀 중에 27위에 떨어져 있다.
바톨로 콜론, 척 핀리, 엘리스 버크스 등 간판 선수들을 모두 팔아치운 인디언스는 최근 4연패를 당하는 등 46승62패지만 파워 랭킹이 30위로 급전직하이다. 박찬호로서는 첫 대결이 되는데 일반적으로 첫 대결에서는 타자들보다 투수들이 유리하다.
그 다음 상대인 블루제이스는 47승61패로 고만고만한 성적으로 AL 동부조 4위에 처져있다.5일 등판 원칙에 따라 그 다음 상대는 보스턴 레드삭스나 뉴욕 양키스 중에 한 팀이 된다. 당초 5인 선발을 고수했으면 레드삭스와 양키스를 상대로 연속 원정 경기를 펼치는 무서운 대진이다. 물론 강팀들을 상대로 멋진 승부를 펼쳐주는 것도 좋지만, 당장은 두 팀 중 하나를 피하게 된 것이 다행이다.
만약 박찬호가 23일 보스턴전에 등판하게 된다면 다음 세 번의 상대는 볼티모어-템파베이-템파베이로 이어지게 된다. 시즌 내내 거의 랭킹 30위를 독점하다시피한 템파베이와 2연전이 걸린다면 10승 목표에 바짝 다가설 가능성이 높다.
9월은 초반 템파베이전을 제외하면 첩첩산중이다. 시애틀 매리너스, 오클랜드 에이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등과 같은 서부조의 막강한 상대들과 20연전이 잡혀있다. 그전에 중·동부조의 만만한 상대들과의 7번 대결에서 4승 이상을 올려줘야 10승 도전이 가능하게 된다.
이제 4승을 거둔 마당에 10승 달성은 분명히 힘든 목표다. 그러나 안풀리면 끝이 없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몇 연승을 거두는 것이 야구다. 지난 99년에도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던 박찬호가 막판 7연승 가도를 달리며 13승을 거뒀었다. 만약 박찬호가 올 시즌 10승을 거둔다면, 부상과 부진과 불운으로 점철된 악몽 같은 시즌에서 화려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대 ‘드라마’를 연출하게 될지도 모른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