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설 끓는 통합파 대통령 충격처방에 집단항명?
열린우리당 내에서 요즘 이 같은 주문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는 ‘노무현 직계’가 걸림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 등 ‘노빠’ 출신들을 당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민주당과의 통합이 정국 타개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는 호남 출신 의원들, 그리고 호남 출신 지역구민의 비중이 높은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이 같은 요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요즘 열린우리당 내부는 이처럼 흉흉하다. 이러다간 민주당 분당에 이은 ‘제2의 분당’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1차적인 요인은 여당 지지도와 참여정부 국정지지도의 동반추락에 기인한다. ‘통합론’을 제기하는 의원들 사이에서는 ‘대통령도 필요 없고, 여당도 싫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남 지역의 한 초선 의원은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하자던 여당이 민주당은 안 된다고 하는 게 앞뒤가 맞느냐”고 ‘통합반대론자’들을 비판했고, 전남 출신의 또 다른 초선 의원도 “영남과 합치면 지역주의 극복이고 호남 얘기만 나오면 지역주의냐”고 반문했다. 지역구가 서울인 한 재선 의원은 “지금 이대로는 한 자릿수 지지율로 떨어질 것이며 정당으로서의 존립을 의심해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면 하나 ‘노빠’ 출신이자 노 대통령 ‘킹 메이커’였던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은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공식석상에 나서지도 않고 아예 꼭꼭 숨었다. 염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통합론자다. 이달 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을 위해 당내에 소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의하면서 “합당을 위해 여차하면 제3지대로 나갈 수도 있다”고 탈당 불사 의지까지 역설했던 그였다.
그 뒤 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향해 “여러분이 나의 정치적 계승자”라고 밝혔다. DJ의 고도로 계산된 덕담 한마디에 정국이 요동쳤다. 열린우리당 내 통합파들은 “이제야 때가 왔다”며 좋아했다. 통합론이 세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서부연합론’을 내놓으며 통합의 총대를 멨던 염 의원은 조용해졌다.
왜일까. 염 의원측의 한 인사는 “민주당과의 통합 문제 때문에 염 의원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렇다. 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막상 DJ의 정치적 후계 발언이 나오면서 정치적 부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자칫하면 지역주의의 화신처럼 몰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자신이 만드는 데 기여한 노 대통령이 ‘창당 초심’을 강조하면서 통합론에 쐐기를 박은 것도 그의 침묵에 일조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장면 둘 ‘세 번 구속, 세 번 무죄’의 주인공 박주선 전 의원이 22일 민주당에 입당한다. 민주당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은 이날 입당해 당 부대표를 맡게 된다. 박 전 의원은 최근 한화갑 민주당 대표를 만나 최종결심을 내렸다고 한다. 박 전 의원은 내년 5월 지방선거 때 경선을 거쳐 전남지사에도 출마할 계획이다. 그는 16일부터 일본 게이오대학이 주최하는 남북문제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뒤 19일 귀국해 입당 하루 전인 21일 DJ를 예방해 본격적인 정치 재개를 대외에 알렸다.
박 전 의원에게 여러 차례 입당을 권유했던 열린우리당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민주당과의 호남 인사 영입 경쟁에서 또 다시 패한 셈이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무소속의 최인기 의원과 자기 당 소속이었던 신중식 의원을 민주당에 뺏긴 것을 포함해 세 번째다. 이에 따라 여당에서 호남표 이탈에 따른 위기의식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통합론자들은 갈수록 악화하는 호남 민심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다.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장면 셋 “노 대통령이 대통령감으로 부족하다는 실망감이 지배적이었다.” “열린우리당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감이다.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당을 대표하는 핵심인물을 통해 ‘노무현 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이 얼마 전 분석한 ‘열린우리당 지지 이탈 원인 진단 및 대안 마련을 위한 집단심층면접(FGI) 조사보고서’에서 나온 ‘평균 여론’이다. 이 조사는 당초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때 여권을 지지했지만 지금은 지지를 철회한 수도권 지역의 25~45세의 남녀를 상대로 한 것이다. 조사대상자 중 절반 가까이가 지지 정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그 이유가 의외다. “무모한 정책을 내걸지 않기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실망감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노 대통령의 ‘감정적’ 이미지와 말실수,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변명, 신중치 못한 처신, 국민통합 실패 등 언행에 관한 실망감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충격적인 결론 중 하나는 ‘대통령감으로 부족하다는 실망감이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위기 탈출의 해법으로는 ‘노무현 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뒤집어 보면 이것은 당내 탈당론과 흐름을 같이하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흉흉한 열린우리당 내부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많다. 지난 14일 ‘창당 초심’을 강조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회동 결과가 알려지면서 잠시 무력감에 빠졌던 여당 내부는 다시 통합론을 놓고 끓어오르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 원칙은 정치문화의 변화에 따라 세워지고 지켜온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청 관계도 차츰 식어가고 있다. 좀처럼 ‘해빙’의 전기를 찾을 길이 보이질 않는다. 노 대통령의 ‘충격 처방’을 맞은 통합파 의원들의 집단적인 ‘항명’이 머잖아 가시화할지 모른다는 ‘어두운’ 관측들도 나오는 상황이다. ‘분당 시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걸까.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