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선수 | ||
그만큼 금메달 스트레스가 상당했다는 증거다.아시안게임 첫날 첫 금메달리스트로 지목됐던 펜싱의 김영호(32·대전도시개발공사)는 금메달 획득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회 직후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터라 표정이 어두울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전과 다름없는 태도였고 정작 대회 결과보다도 신생팀 창단 문제로 더욱 경황이 없는 듯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금메달은 본전이고 못따면 죽는 거였죠. 언론에서 더 난리였어요. 마음이 흔들릴까봐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했는데 대회 전날엔 긴장이 돼서 잠이 안오더라구요. 올림픽에서도 금을 땄는데 아시안게임에서 못따면 망신살이 뻗치는 거잖아요. 결과야 어떻든 막상 경기가 끝나니까 허탈하고 시원하고, 이젠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도 들고….”대회 전부터 결심했던 은퇴가 더욱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아테네올림픽이 눈에 밟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다. 어느 정도 부와 명예도 챙겼고 후원자를 물색하는 일도 크게 어렵지 않을 만큼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은퇴를 결심하고 나니까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일이 창단 팀 감독. 현재 소속팀과의 문제가 있어 정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지만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테네올림픽에 직접 출전하는 일도 좋겠지만 내가 공들여 키운 제자가 금메달을 딴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김영호는 이미 새로운 인생을 준비중이었다.
▲ 김준란선수 | ||
‘제2의 강초현’이란 타이틀만으로도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된 여자공기소총의 서선화(21·군산시청)는 금메달은 고사하고 본선 진출자 8명 가운데서도 뜻밖의 꼴찌를 차지하며 사격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올해 1월 태극마크를 처음 단 서선화는 최근 열린 시드니월드컵에서 세계 신기록인 400점 만점의 대기록을 세우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도 스타 강초현을 밀어내고 태극마크를 다는 등 최대의 뉴스메이커로 자리잡았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정작 선수한테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된 모양이다. “금메달이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토로하는 모습에서 심적 고충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된다.
“(강)초현이와 비교당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더 잘하고 싶었고 잘할 자신도 있었고. 그런데 긴장을 많이 했었나봐요. 외모가 아니라 꼭 금메달 따서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었거든요.”서선화는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각국 선수들 중 손가락에 꼽힐 만한 미모를 소유하고 있다. ‘제2의 강초현’이라고 불린 데에는 이런 외적인 요소도 작용됐다. “얼굴 잘생긴 게 운동과 무슨 관계가 있어요. 실력이 좋아야 인정받는 거 아닌가요?”라며 외모로 인해 실력이 가려지는 걸 끔찍이 싫어했다.
장비 구입할 형편이 안돼 중3 때 사격을 중단했다가 고1 때 다시 시작했다는 서선화는 무거운 총을 들고 훈련하다보니 허리디스크를 달고 살아야한다는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부동의 공기소총 1인자로 꼽힐 때까지 총쏘기를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아름다운 외모에다 강한 오기와 근성을 자랑하는 여자 저격수한테는 이미 동갑내기 남자친구가 존재한다. 같은 사격선수로 사귄 지 2년째 됐다고.
주부 역사이면서 재중동포 출신으로 이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중 유일한 귀화 선수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단 김춘란(25·부산시청)은 아쉽게도 4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대회 전부터 출전을 포기할 만큼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고생한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어렵게 발탁된 국가대표였던 만큼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어설픈 한국말로 “신경 엄청 많이 썼다”고 대회 소감을 전하는 얼굴에 여전히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잔뜩 남아 있는 듯하다.
귀화 후 1년 동안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면서도 같은 역도 출신인 남편 정인수씨(33)의 용기와 격려에 힘입어 결국 아시안게임까지 출전할 수 있게 됐다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의 성적에 실망하지 않고 아테네올림픽에서 반드시 귀화에 대한 보답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김춘란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후에나 아기를 가질 생각이라고. 역도 선수치고 25세면 많은 나이가 아니냐고 묻자 “30세 이후에나 은퇴할 예정”이라며 말문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