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예비 후보자 화장품상자에 3000만원 돈뭉치 일부 원로에 전달 정황 포착돼 파문 예고
-협회 원로, ‘현직 회장 선거 개입과 지지 속’ 예비 후보자 사전선거운동·금품 제공 의혹 제기
-예비 후보자 “그런 사실 없다” 발뺌, 전달자 “원로회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 담은 작은 성의”
-해당 사건에 대한 협회 측 수수방관 속 유력 정치인 배후설까지 나돌아 진흙탕 선거 불가피
한 조직의 대표를 뽑는 선거판에서는 늘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여성 경제인을 대표하는 협회인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차기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 경찰 고소에 이어 청와대 진정서까지 제출돼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현직 회장이 선거를 앞두고 특정 예비 후보자를 지원하기 위해 사전에 개입했고, 해당 예비 후보자는 사전 선거운동을 하며 부정한 금품을 제공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여권 유력 정치인이 연관됐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선거 전부터 진흙탕 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선거를 둘러싼 잡음을 들여다봤다.
사진=A 씨가 청와대에 제출한 진정서.
한국여성경제인협회는 여성의 기업활동 촉진을 통한 여성 경제인의 공동이익 증진과 건전한 발전 도모를 수행하기 위해 ‘여성기업지원에관한법률’ 제13조 규정에 따라 지난 1999년 7월 설립된 특별법인이다. 현재 서울 본회를 비롯해 전국 15개 지회, 2500여 개 회원사를 둔 대표적 여성경제단체다.
협회 회장의 임기는 3년 단임으로, 오는 12월 차기 협회 회장을 뽑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협회가 최근 차기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예비 후보자가 사전선거운동을 하고 금품을 제공하는 등 의혹이 제기돼 경찰 고소 및 청와대에 진정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고소인 및 진정인 측은 해당 예비 후보자가 이러한 불법을 행할 수 있었던 데는 현직 회장의 개입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경찰 고소 및 청와대에 진정을 제출한 이는 과거 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원로회에 속해 있는 A 씨다. A 씨가 경찰에 접수한 고소장 및 청와대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B 씨는 오는 12월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의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지난 7월부터 후보로 출마하겠다며 전국 각종 협회 행사를 다니며 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문제는 B 씨가 협회 본회는 물론 자신이 속한 대구경북지회 등에서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은, 일반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A 씨는 지난 8월 B 씨가 회장 출마를 위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오자 그에게 “협회에서 회장이나 임원 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출마는 적절하지 않다. 대구경북지회장 경험을 쌓은 뒤 본 협회 회장에 출마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협회 회장은 전국 16개 지회를 총괄해 회원간 이해 조정 등 많은 사안을 판단하는 일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지회장을 역임한 경험자가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온 것이 협회의 불문율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A 씨는 B 씨가 회장 출마를 단념한 줄 알았다. 그런데 몇 주 지나지 않은 9월초 대구경북지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C 씨로부터 “의논드릴 일이 있으니 만나고 싶습니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평소 연락이 없던 C 씨인지라 A 씨도 무슨 일인지 싶어 다음날 시간을 내 C 씨를 만나기로 했다.
약속장소인 서울 시내 한 호텔의 카페에서 만난 C 씨는 A 씨를 구석 조용한 자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이윽고 C 씨는 꽃다발과 함께 “회장님을 위해 화장품 선물을 준비했다”며 작은 상자를 건넸다. A 씨가 상자를 살짝 열어보니 화장솜과 클렌징크림이 들어있어 그런 줄로 알았다고 전했다.
30여 분간 일상 이야기를 하던 C 씨는 갑자기 “회장님을 만나기 전 B 씨가 서울 사무실 겸 숙소로 쓰는 호텔방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회장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더니 자신도 꼭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B 씨를 오라고 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A 씨는 “오라고 해라”라고 답했고, B 씨는 10여 분만에 약속장소로 나왔다. 그러더니 B 씨와 C 씨는 다시금 회장 선거를 언급하며 “제가 회장이 되면 모든 사람을 아우르며 잘 해나갈 수 있으니 당선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마음을 한 번만 바꿔 주세요”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A 씨는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같은 말을 하려면 그만 두자”는 말을 반복한 뒤 2시간여 만에 자리를 떠났다.
이후 집에 도착한 A 씨는 더욱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C 씨에게 받은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화장품 아래 작은 주머니 속에 5만 원권 묶음으로 총 3000만 원이 들어 있었던 것. A 씨는 B 씨가 C 씨를 통해 돈을 건넸을 것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B 씨에게 “집에 와서 보니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어있어 돌려주려고 하는데, 언제 만날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A 씨가 C 씨에게 건네받은 3000만 원 돈다발.
그러자 다음날 아침 B 씨는 “급히 가느라 선물도 마련하지 못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발뺌했고, C 씨는 “회장님께 선의로 드렸는데 서운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A 씨는 B 씨와 C 씨의 사전 선거운동 및 금품 제공 혐의에 대해 협회 이사회에 알리고, 진상조사위원회 윤리위원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했다.
그렇다면 B 씨가 이렇듯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회장 선거 출마를 강행하는 이유 및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A 씨는 협회 현 회장인 이민재 회장의 선거 개입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이 회장은 공정한 차기 회장 선거를 위해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서 지난 6월 쯤 대구경북지회 일반회원에 불과한 B 씨에게 적극 지원해줄 테니 협회 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8월에는 이 회장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직원에게 B 씨의 소개 프로필을 협회 임원 이사들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 씨는 “전례가 없는 현직 회장의 차기 회장 선거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다. 회장이 특정 예비 후보에 대해 대놓고 지지를 보내고 있고, 이에 예비 후보자는 출마 자격요건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현직 회장만 믿고 불법적으로 사전 선거운동을 하며 금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이메일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라면서도 “한 지회에서 협회 측에 전화가 와서 ‘B 씨가 선거에 나온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B 씨가 누군지 전혀 알 수가 없다. 프로필을 한 번 봤으면 좋겠다. 보내 달라’는 요구가 들어와서 회사 직원을 시켜 보낸 것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다른 출마를 원하는 후보들이 자신의 프로필을 임원 이사들에게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면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이 회장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인지, 본협회나 대구경북지회는 A 씨의 문제제기에도 그가 기대하는 만큼의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사회는 A 씨가 진상조사를 요청한지 20여 일이 지난 뒤에야 열렸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을 비롯한 다수의 이사들은 “A 씨가 위 돈을 받으려고 유도한 것 아니냐. 별것 아닌 것 가지고 왜 난리냐”며 오히려 그를 다그쳤다고 한다.
C 씨는 이사회에 앞서 제출한 경위서를 통해 “원로회에 사용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원로회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작은 성의를 올렸던 것이다. 청탁을 하기 위해서 선물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 씨는 “그동안 원로회에서는 단 한 푼도 협회 회원에게 돈을 달라고 한 적도, 받은 적도 없었다. 내게 처음 연락한 C 씨가 갑자기 3000만 원을 전달하고는 선의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그 돈은 B 씨의 회장 당선을 도와달라는 청탁 뇌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본회의 진상조사위원회는 사실관계 파악이 먼저라며 구성되지 않았고, 대구경북지회 역시 윤리위원회를 통한 진상조사도 진행하지 않는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협회 내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A 씨는 결국 지난 10월 7일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고, 청와대에 진정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진=A 씨가 경찰에 제출한 고소장.
해당 고소건을 조사 중인 강남경찰서는 A 씨에 대한 조사는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피고소인 B 씨와 C 씨는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 씨는 “이 회장과 그의 지지를 업은 B 씨의 독단적 행동에 회원들 간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며 “나만 돈을 받았겠느냐. 전국의 원로, 지회장, 대의원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내게 보인 행동을 같이 하지 않았겠냐”며 또 다른 금품 제공 의혹을 제기했다.
27일 오전 기자와 만난 이 회장은 이러한 A 씨의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당일 세 사람이 함께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C 씨가 A 씨에게 3000만 원을 건넨 것도 맞다”면서도 “하지만 그 돈은 C 씨가 원로회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에 준 것으로 알고 있다. B 씨와 회장 선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돈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회장은 “협회에서는 개인 간에 돈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은 협회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협회는 회원의 사생활적인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협회 이사회에서는 A 씨의 문제제기를 부결시켰다”고 사건의 경과를 밝혔다. 또한 “아직 경찰 고소와 청와대 진정서 제출 등에 대한 사실을 듣지 못했다”며 “경찰에 고소가 들어가 수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이제 법의 판단에 맡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기자와 통화한 B 씨 역시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사전선거운동 의혹에 대해서는 “회원들끼리 모임에 나가 말이 오갔을 뿐 사전선거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며 “회장 선거 출마에 대해서 ‘준비 중’이라고만 말했지, ‘출마할 테니 지지를 보내 달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왜 회원들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일반회원인 B 씨를 차기 회장으로 지지하고 있는지, B 씨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출마를 하지 말라는 원로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차기 회장 선거에 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B 씨가 소속된 대구경북지회를 지역구로 하는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 연관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관련 정부기관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협회에 문의를 해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