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가 후보포수 해슬맨과 호흡을 맞춘 경기에서 대화 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 ||
우선 앞으로 해슬맨이 박찬호의 전담 포수로 기용될 것인지에 대해 내론 감독은 단연코 ‘No’를 선언했다. 28일 오클랜드 에이스전 이후 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내론 감독은 “찬호의 지난 2게임에서 해슬맨이 포수 마스크를 쓴 것은 순전히 우연”이라며 “퍼지(이반 로드리게스)에게 휴식이 필요해 라인업에서 제외했을 뿐”임을 강조했다. 물론 여전히 박찬호의 등판 경기에 해슬맨이 마스크를 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전담 포수는 없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과연 해슬맨은 퍼지와 비교할 때 박찬호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수인지를 따져보자. 올시즌 15게임에 등판한 박찬호의 경기에 10년 연속 올스타 포수였던 30살의 퍼지가 마스크를 쓴 것이 8번이고, 해슬맨이 5번, 그리고 현재 마이너리그에 가 있는 오티스와 그린이 각각 포수를 맡았었다.그러나 투수를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해슬맨이 마스크를 쓴 게임과 도루 저지율과 공격력이 뛰어난 퍼지가 출전한 경기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박찬호는 퍼지가 마스크를 쓴 8게임에서 44와2/3이닝을 던져 게임당 5.52이닝을 기록했다. 반면 해슬맨이 포수로 나온 5게임에서는 27과2/3이닝으로 게임당 이닝이 5.44로 오히려 적다. 실점에서는 퍼지가 나온 게임에서 38자책점을 기록, 방어율이 7.66인 반면, 해슬맨의 경기에서는 20실점으로 방어율이 6.50으로 1점 이상 차이가 난다.
양 선수의 수비력은 올시즌 퍼지가 부상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한수 위로 나타난다. 퍼지의 수비율은 .993으로 해슬맨의 .990보다는 약간 나은 편이다. 통산 도루 저지율에서 50%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퍼지는 올시즌 13번의 도루를 허용하고, 6번을 잡아내 31.5%의 도루 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해슬맨은 33개의 도루를 허용한 반면 10명의 주자를 잡아내 저지율은 23.2%에 그친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퍼지가 여전히 해슬맨보다는 좋은 도루 저지율을 보이고 있다.
▲ I.로드리게스 | ||
그러나 라인업에 퍼지가 나오는 경우와 해슬맨이 나오는 경우는 상대팀의 작전이나 위축도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봐야한다. 위기에 해슬맨 대신 퍼지가 타석에 나오길 바라는 상대 감독은 없기 때문이다.
올시즌 퍼지는 목 디스크로 고생하면서도 55게임에서 2할6푼8리에 8홈런 30타점을 기록했다. 퍼지의 부상으로 54게임에 기용된 해슬맨은 2할3푼7리에 3홈런, 17타점을 올렸다. 통산 2백4개의 홈런과 7백99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퍼지와 47홈런 2백9타점의 해슬맨은 공격력에서는 비교가 안 된다.
두 포수가 물론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기록이 하나 있다. 박찬호는 퍼지와 호흡을 맞춘 8게임에서 1승도 기록하지 못했고, 4패만 당했다. 반면 올시즌 3승 중에 2승을 해슬맨과 일궈냈고, 패전은 1번만 기록했다. 그러나 이 역시 박찬호가 부진하던 당시에 퍼지와 많은 호흡을 맞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퍼지와의 8게임 중에 박찬호는 3실점 3번, 4실점 1번, 5실점 2번 등을 기록해, 타선의 도움만 있었다면 승리할 수 있는 경기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면 기록으로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면과, 투수 리드에 대해서 살펴보자. 포수로서 해슬맨과 퍼지의 가장 큰 차이라면 누가 주체이냐는 점이다. 즉 평생 후보 포수인 해슬맨의 경우 당연히 투수를 위주로, 투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투구 사인도 마운드의 투수를 생각하고,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감안해 보낸다.
반면 올스타인 퍼지는 본인 위주의 투수 리드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도루 저지를 위해서는 빠른 공을 자주 원하고, 투수들과 원활한 대화나 사전 준비 등에 심혈을 기울이는 포수라는 평은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급 투수라면 그런 점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실제로 박찬호의 과거를 살펴보면 유독 호흡이 잘 맞던 채드 크루터를 제외하면 수비적으로 형편없던 포수들과도 좋은 성적들을 거뒀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이크 피아자다. 현재 뉴욕 메츠에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피아자는 도루 저지율이나, 투수 리드 능력이 메이저리그(MLB)에서 거의 바닥권을 헤맨다. 그런 피아자와 박찬호는 97년에 14승, 98년에는 15승을 거뒀다.
결국 공격적으로, 수비적으로 발군인 혹은 엉망인 포수들과 모두 호흡을 맞춰보는 행운을 가진 투수가 박찬호다. 그리고 포수 선호도와는 큰 상관없이 성적을 올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전담 포수 운운은 그저 말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어거지로 들춰내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결국 포수 마스크를 누가 쓰든 늘 믿을만한 경기를 보여주는 투수, 그것이 에이스로 가는 큰 덕목 중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