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식 인터뷰 전날인 지난 24일 <일요신문>과 단 독으로 인터뷰하고 있는 안정환 | ||
25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공식 인터뷰를 갖기 전날 미사리 국가대표팀 전용축구장에서 만난 안정환은 예상대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날 아침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한 소송 문제가 신문 방송에서 크게 보도된 터라 더욱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미사리에서의 훈련도 최측근에게조차 훈련 장소를 공개하지 않을 만큼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피했다.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혼자 훈련하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으나 예정된 스케줄대로 묵묵히 하루 훈련을 소화해 내고 있었다. 훈련을 마치고 다음날 공식 인터뷰 때 입장을 밝히겠다는 고집을 꺾고 최근 심경을 들어봤다.
첫 마디가 “정말 미치겠어요”였다. 왜 자신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소송 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노코멘트’라고 밝혔지만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보도된 부분이 있다며 말을 흘렸다.
사실 안정환은 소송 문제를 언론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었다. SK텔레콤 광고 모델로 1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CF 촬영까지 마친 상태에서 경쟁사인 KTF가 홍명보 장학회 기금 조성을 위해 월드컵에서 안정환의 골 세리머니 장면을 내보낸 것은 부당하기 때문에 이해와 설득을 통해 합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매스컴에서 냄새를 맡았고 대서특필되는 상황에까지 치닫고 말았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본다면 안정환은 홍명보장학회가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한 기금 모금에 동참한다는 내용으로 초상권에 대한 위임장을 써줬다. 그러나 기업 광고를 위한 모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약서도 아닌 단순한 위임장을 가지고 마치 선수의 초상권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 것처럼 확대 해석한 KTF에도 문제가 있다는 게 축구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계속 끌고 가봤자 서로에게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 25일 원만한 합의를 통해 해결을 보겠다는 안정환측의 발표가 있었다.
▲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5일 파주에서 다시 만난 안정환은 전날보다 더 지쳐 보였다. 폭염 탓도 있겠지만 그날 오전 축구협회로부터 전해 들은 어처구니 없는 내용 때문이었다. FIFA(국제축구연맹)에 의뢰한 신분조회를 통해 페루자로부터 이적동의서를 받아낸 후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하려는 꿈이 FIFA의 충격적인 권고안에 의해 무산되었던 것.
즉 FIFA는 안정환에게 이적분쟁을 해결하려면 장기간의 시일이 필요하니 안정환이 이탈리아축구협회를 상대로 계약파기를 신청한 후 페루자 구단과의 고용 계약을 조속히 해지하는 절차를 밟으라는 내용을 축구협회에 전달했다. 즉 이 말은 FIFA에서 안정환과 페루자와의 5년 계약(2년 임대, 3년 이적)을 인정했다는 뜻하기 때문에 안정환으로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수밖에 없는 기분이다.
안정환은 이날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에라도 페루자엔 절대 가고 싶지 않다”면서 “해마다 겪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시간이 걸려도 내 신분에 관해 확실한 매듭을 짓고 싶다”며 백기를 들고 페루자에 투항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페루자 대신 국내 K리그를 선택하겠다는 뜻인가. 그것도 아니다. K리그로의 복귀 의사가 없다는 것도 이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안정환은 어디로 가야하나. 정답이 없다. 안정환 말대로 유럽의 선수등록기한인 8월 말 전까지는 확실하게 해결을 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동안엔 개인훈련에 충실하겠다고 한다.
계속 원점을 맴돌고 있는 안정환의 이적문제는 여전히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만약 안정환이 페루자로 가겠다고만 한다면 일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페루자에서 원소속팀 부산 아이콘스에 약속된 1백60만달러의 이적료만 지급하면 끝난다.
안정환의 매니지먼트사의 (주)이플레이어 안종복 대표도 “페루자측에서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고 지금 받는 연봉(40만 달러)에서 상향 조정된 내용으로 계약을 맺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페루자도 싫고, 부산도 싫다. 오로지 영국행만을 외치던 안정환이 지난 29일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일단 페루자 복귀 후 잉글랜드로 완전 이적하겠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것. 난마처럼 얽힌 안정환 문제가 마침내 페루자행이란 피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