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상대와 밀회하듯 ‘색다른 하룻밤’
독일 뮌헨의 ‘러브 이스케이프’ 에이전트가 위기의 부부를 위한 이른바 ‘에로틱 여행 서비스’를 제공해 인기를 끌고 있다. 작은 사진은 ‘러브 이스케이프’를 설립한 캐롤린 슈테판(앞)과 안드레아스 보이엘. 사진출처=포쿠스
뮌헨의 한 부부에게 어느 날 이메일 한 통이 전달됐다. “예약하신 서비스 내용입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클릭하자 ‘에이전트 006’이라는 이름의 여행 패키지에 대한 내용이 나타났다. 여기에는 이틀 후에 묵게 될 호텔 이름과 함께 호텔 예약 내용(예: 더블룸)도 적혀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여느 여행 상품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다음 날 도착한 또 한 통의 이메일을 보면 이 상품이 여느 여행 상품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션 완수를 위한 마지막 안내문’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는 보다 구체적인 내용, 이를테면 추천 의상 등이 친절하게 안내돼 있었다. 가령 “남자 분은 양복을 입고, 여자 분은 야한 검정색 속옷을 입고 약속 장소에 가십시오”라는 내용이었다. 마치 ‘첩보원’에게 지령을 전달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이메일에는 “미션 당일이 되면 호텔에 도착한 후 호텔방으로 올라가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그 다음의 구체적인 미션 내용은 호텔방에 준비되어 있는 ‘깜짝 상자’ 안에 있는 ‘안내서’에 적혀 있으니 그대로 따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마치 첩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역할을 맡게 된 남녀는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호텔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더욱이 ‘에이전트 006’ 서비스에는 나름의 배경을 설정해 놓았는데 이런 식이다. ‘남자는 오래 전에 첩보원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다시 과거의 임무를 부여받고 기밀 서류를 전달하기 위해서 접선 장소인 호텔로 가야 한다.’
이 서비스는 다름 아닌 뮌헨의 ‘러브 이스케이프’ 에이전트가 제공하는 ‘부부를 위한 에로틱 모험 서비스’다. 침실에서 권태기를 느끼는 부부를 위해 고안된 이 서비스는 마치 서로가 불륜 상대가 된 듯 몰래 호텔방에서 만나도록 제안하고 있으며, 보다 색다른 하룻밤을 위해 다양한 소품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러브 이스케이프’를 설립한 뮌헨의 인터넷 사업가인 안드레아스 보이엘은 이런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데 대해 “점점 더 많은 부부들 혹은 커플들이 회사일, 자녀 양육, 일상 속의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런 경우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인 부부 관계나 은밀한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진다”라고 말했다. 일상에 지친 부부들에게 일종의 자극을 안기고자 기획된 서비스라는 것이다.
보이엘은 또한 “아마도 많은 부부들이 일상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 익숙함을 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심지어 둘 모두 성적 판타지가 있지만 오래 알고 지낸 까닭에 판타지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모두 잠자리 문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방법을 모르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우선 시나리오에 충실히 따르되 내 자신을 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돼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러브 이스케이프’ 서비스가 제공하는 상품으로는 첩보원 역할을 하는 패키지 외에도 다양한 역할 게임들이 있다. ‘러브 이스케이프’의 공동 창업자인 캐롤린 슈테판은 “특히 인기가 있는 서비스로는 ‘하녀 패키지’ ‘일꾼 패키지’ ‘에이전트 006 패키지’ 등이 있다. 여기에는 항상 지배하거나 복종하는 역할이 있다. 다시 말해 강한 쪽과 약한 쪽이 있다. 확실하게 나눠서 역할을 맡고, 서로 바꿔 가면서 역할을 맡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역할 게임을 더욱 현실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역할에 맞는 소품들도 선택할 수 있다. 가령 ‘일꾼 패키지’를 선택했을 경우에는 진짜 일꾼이 이용하는 스패너 따위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룻밤 혹은 주말을 보낸다고 해서 효과가 있긴 한 걸까. 이에 대해 <성적 욕망의 심리학>의 저자인 데이비드 슈나치는 “지금껏 시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을 함께 만들어 보면 처음 만나고 한 달 동안 느꼈던 흥분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이델베르크의 심리학자 겸 부부상담 치료사인 울리히 클레멘트 역시 “이런 역할 게임은 서로를 속이지 않는 불륜 게임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단순히 음란한 경험을 하는 것을 넘어 치료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느냐는 질문에 보이엘은 “사실 몇 년 전부터 생각은 했었다. 욕망을 억누른 채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 일상에서 잠시나마 도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호텔을 하나 설립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부부를 위한 ‘시간제 호텔’인 셈인 것이다.
물론 집에도 근사한 침실이 있긴 하지만 보이엘은 “집에 부엌이나 다이닝룸이 있지만 가끔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익숙한 침실을 벗어나서 일부러 호텔에 묵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에로틱한 환상이 깨어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러브 이스케이프’가 제공하는 서비스 패키지의 가격은 370유로(약 45만 원)며, 여기에는 호텔 1박 숙박비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