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방송, 광고 출연 제의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지킨 스타플레이어가 있다면 운동장보다 패션쇼 무대, 카메라 앞, 팬 사인회 등에 뛰어다니느라 정작 ‘본업’인 축구를 등한시했던 선수들도 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수순을 밟겠지만 인기에 취해 갈지자 걸음을 걷다가 ‘잠들어 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돌 만큼 과외 활동에 대한 찬반 양론이 분분했었다.
'메뚜기'도 한철‥더 띄워라
한동안 ‘잠수’를 탔다가 지난 24일 소속팀에 복귀한 김남일(26·전남)은 월드컵 직후 모든 방송과 CF엔 절대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컨셉트만 맞으면 CF에 응할 생각이 있다고 태도를 바꿨다. 선수야 운동에만 전념하고 싶겠지만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선 CF 출연이야말로 목돈을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특히 수비수인 김남일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의 여부도 알 수 없는 터라 지금이야말로 광고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인 셈. 매니지먼트사가 어떤 광고를 물어오느냐에 따라 축구선수 김남일은 또 한 번의 외도를 감행할 수도 있다.
이천수(21·울산)는 월드컵에서 터키와의 3·4위전이 끝난 다음 날부터 방송 활동을 했을 만큼 그동안 감춰진 끼와 장기를 TV 무대에서 맘껏 발산했다. 없는 시간을 쪼개 팬들과 만남의 시간도 갖고 음악전문케이블방송에서 주최하는 토크쇼에도 참가하는 등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소속팀 경기 출전과 방송 활동의 주무대인 서울을 바쁘게 오가느라 심신이 지쳤지만 월드컵 체험기를 토대로 한 책과 편집 음반 재킷 모델로 나설 준비를 하는 등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미지수.
▲ 월드컵 이후 경기 외에도 가장 바쁘게 ‘활약’하고 있는 이천수(울산).[pitch photos] | ||
익명을 요구하는 한 스포츠 매니지먼트는 “선수들의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광고계에서 머뭇거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의가 있는 대로 찍어야 한다. 특히 김남일 같은 경우엔 수비수라 부상에서 완전 회복하지 않는다면 그 인기는 금세 사그라들 수 있다”며 프로 선수라면 상업적인 이익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프로‥실리 챙겨라
월드컵 이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선수라면 안정환(26·페루자)이다.공식적으로는 SK텔레콤과의 1년 광고 계약 체결에 10억원의 거액을 받은 것이 압권이다. 안정환은 방송 출연만큼은 최대한 자제했다. 간혹 연예정보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는 응했지만, 토크쇼나 오락프로그램 등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지만 광고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나름대로의 이미지 전략이 포함돼 있다.
이천수, 김남일 등이 10대 여학생들을 위주로 한 팬 군단을 형성한다면 안정환은 전방위다. 즉 10대서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팬층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최고의 모델료를 챙길 수 있었던 것.
SK텔레콤과 1년 계약에 5회의 촬영을 약속했는데 한 번 찍을 때마다 수천만원대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정환의 프로다운 마케팅 전략이 돋보인다. 인센티브를 포함한다면 총 모델료가 11억원을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고 당분간 광고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을 전망이다. 여러 구설수에 오르며 심신이 지친 상태지만 인기를 등에 업은 광고 모델료만큼은 확실히 챙긴 상태.
오로지 '본업'에만 충실한다
홍명보(33·포항)와 황선홍(35·가시와 레이솔)이 대표적이다. 한국 축구계의 상징적인 인물로 대변되는 두 사람은 월드컵 특수를 누릴 수혜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운동장만을 고집했다. 일본 J리그에서 활동하는 황선홍보다는 대표팀 주장이었던 홍명보에게 다방면에서 ‘러브콜’을 보냈다.그러나 모두 거절당했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승부하는 것만이 운동선수답다는 신념과 자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