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컵 때라고 기억된다. 그때 사실은 히딩크 감독님에 대한 불만으로 선수들의 반 이상이 ‘짐을 싼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히딩크 감독님은 그때 한창 선수들을 평가하고 최종 엔트리를 위한 검증을 할 시기였겠지만 선수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당황스럽고 난감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감독님이 하는 일들을 도무지 예측하거나 종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선수가 있다고 치자. A는 스스로가 팀 내에서 분위기나 자신의 위치를 보아하니 이 정도만 하면 쭉 베스트에 들고 최종 엔트리에도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느닷없이 시합에 못나가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다시 감독의 지시에 의해 출전했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또 경기를 안뛰게 되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자 우리는 ‘사람 가지고 장난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신경질이 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당시 우리들은 히딩크 감독님의 의도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의사소통도 어려웠을 뿐더러, 감독님이 커다랗게 짜놓은 계획의 일부만을 보고 있었기에 지금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 했으니까….
선수들은 화가 났고 반 이상이 ‘에이, 안하고 만다’라는 생각을 했다.또 당시는 우리가 16강에 진출하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분위기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배선수들의 만류와 ‘한 번 했으니까 끝까지 가보자’라는 분위기도 생겨서 불미스러운 일은 생기지 않았다.
만약 그때 많은 선수들이 진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다면 이번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선수들은 어떤 성적을 올렸을까?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한국 축구의 운명이 갈릴 뻔한 일이기도 했다.
▲ 이천수는 지난 이탈리아전 때 상대선수의 머리를 “반은 의도적으로 걷어찼다”고 고백했다.이종현 기자 | ||
사실 이탈리아 선수들은 너무나 거칠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다. 그 당시 국민들도 상당히 분노했다고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그때의 경기를 떠올리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리라 믿는다. 텔레비전으로 보신 분들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라운드에서 직접 맞닥뜨려 경기를 하는 우리 선수들은 오죽했겠는가.
때로는 비열해 보이고 꼭 저렇게까지 하면서 월드컵 경기를 하고 싶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탈리아의 빗장수비가 유명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그렇게 비신사적으로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다고 우리까지 막무가내로 거칠게 플레이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내심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불만이 쌓여있었던 터였다. 내가 상대 선수의 머리를 차는 그 순간에도 나는 심판이 나를 볼 수 있는 각도까지 감안을 했다. 혹시라도 심판에게 정면으로 걸리게 되면 자칫 파울이나 퇴장까지 당할 수도 있는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나는 통쾌하게 이탈리아 선수 머리를 깠고, 다행히 심판이 보지는 못했고, 상황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솔직히 무척 통쾌했다. 자기네들은 신나게 우리들을 때려놓고 자기들은 안맞을 줄 알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형들도 경기가 끝난 후 나에게 “천수야, 너 아까 그거 잘했어”라고 웃음을 지어 보여주었다. 태극전사를 우습게 보는 외국선수들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아니 지금 무슨 장난치는 건가? 운동장에서 뛴 선수만 태극전사고 벤치에 앉아서 우리를 응원한 선수들은 무슨 연습생인가. 우리를 ‘23인의 태극전사’라고 부르지 어느 누가 ‘11인의 태극전사’라고 부르냔 말이다. 그들도 똑같이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지난 5백 일 동안 우리와 함께 고생을 해왔고 우리 팀을 위해서 헌신해왔는데, 포상금을 차등지급 한다고?
우리는 내부적으로 포상금이 차등지급 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돈을 전부 모아서 똑같이 나눌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선수와 선수들간의 예의고, 아니 예의를 넘어서 기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태극전사 23인이 모두 동시에 한 것이다. 누가 먼저 하자 말자 할 것도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선수들이 감싸줘야 하고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특히 명보형이 ‘차등지급은 절대 안된다’라는 말을 꺼냈을 때 모든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연한 것 아니냐’며 화를 낼 정도였다. 축구협회에서 그런 우리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해 주었다. 물의를 빚지 않고 우리가 원하던 대로 되어서 참 다행이다.
<다음호에 두번째 이야기 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