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김치녀? 그럼 너넨 한남충이다”
메갈리아 회원들의 청원운동으로 전량 폐기 처리된 <맥심코리아> 표지. 아래는 남성 혐오 색채가 짙은 메갈리아 게시글들 캡처.
메갈리아 게시판에서 이 정도는 ‘약과’다. 9월 10일 다른 메갈리아 회원은 “한국에 와서 섹스 중독이 치료됐다”며 “갓양인들과 밤새 섹스하다가 지쳐 잠들었는데…”라며 “한국 남자들은 진짜 심각할 정도로 너무 못났고 X지가 비정상적으로 작아서 중독 증상이 사라졌다”고 고백했다. 여기서 ‘갓양’은 한국의 남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월한 서양인을 뜻한다. 서양 남성과 한국 남성의 성기를 비교하는 글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시판에는 “한남충(한국남자벌레)과 섹스하고 진심으로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학벌 좋은 씹치남의 이중X대” 등 이른바 ‘남혐’ 색채가 가득한 글들이 매일같이 올라온다.
도대체 메갈리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메갈리아는 ‘메르스’와 ‘이갈리아’의 합성어다. 이갈리아는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배경으로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가상의 세계다. 메르스 공포가 한반도를 덮쳤던 지난 5월, “한국인 격리 대상자 가운데 여성 2명이 격리 요구를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당시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 게시판은 “김치년들 완전 무개념 어이없다” “김치년들 추방하라” 등 온갖 여성 비하 글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 소식이 오보로 밝혀지자 많은 여성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여성 혐오의 주제를 바꿔 ‘미러링’ 방식으로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한 것. 미러링은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전략이다. ‘여혐’을 똑같이 ‘남혐’으로 되갚아 주는 것. 이때부터 여성을 폄하하는 단어 ‘김치녀’가 ‘김치남’으로, ‘된장녀’가 ‘강된장남’으로 바뀐 글이 메르스 갤러리 게시판을 뒤덮었다. 성기 작은 남자를 조롱하는 글이 본격적으로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이들이 마치 ‘이갈리아의 딸들 같다’며 ‘메갈리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메르스 갤러리에서 독립한 메갈리안들이 메갈리아를 만들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방식은 웃음을 유발한다. 메갈리안은 ‘남혐’이 담긴 비하 표현을 그대로 바꿔 한국 남성을 조롱하기 때문이다. ‘갓치’는 최고를 뜻하는 ‘God’과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김치녀’를 더해 뒤집은 말이다. ‘탈김치’는 남성의 잣대로 볼 때 각성한 여성이다. 메갈리아는 이런 여성을 거부한다. ‘씹치남’은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의미인 ‘씹’에 김치를 더해 만든 단어다. “여성은 삼일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뜻인 ‘삼일한’의 반대 의미로 ‘숨쉴한’을 만들었다. ‘남성은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혐에 동조하는 것은 ‘코르셋’으로 불린다. 코르셋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으로, 메갈리아의 목적은 ‘탈’코르셋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혐오를 혐오로 되갚아주는 방식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생산적인 싸움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의 대결구도로 놓으면 새로운 대안이 나올 수 없다”며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시선은 나쁘지 않지만 혐오 표현은 너무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여자 일베’라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이에 대해 메갈리아의 대외 홍보를 담당하는 메갈리아4의 운영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를 ‘남혐’으로 보는 사람은 자신이 여성혐오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라며 “메갈리아가 나온 원인은 외면하면서 강자의 폭력보다 약자의 대항폭력을 비난하는 것은 전형적인 기득권 논리다”라고 반박했다.
메갈리아의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메갈리아 회원들은 ‘여혐’에 대항해 여론을 결집시키는 역할도 한다. 성인잡지 <맥심코리아> 9월호 표지에서 배우 김병옥은 한 손에 담배를 들고 검은 차 옆에 서 있었다. 사진의 오른편에는 테이프로 발목이 묶인 여성의 맨 다리가 차 트렁크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메갈리아는 “여성의 현실적인 공포를 성적 판타지로 미화하지 말라”며 <맥심코리아>를 상대로 청원 운동을 벌였다. 결국 <맥심코리아>는 해당 잡지 전량을 폐기하며 고개를 숙였다. 메갈리아는 최근 몰카 사진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소라넷’ 폐지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메갈리아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연세대학교 황상민 교수(심리학)의 분석을 들어보자.
“건강한 표현 방식은 아니지만 일베보다는 건전해 보인다. 메갈리아 글을 보고 우리 남자들이 분노할 필요는 없다. 마치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 안에서 그런 식으로 노는 거다.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지금껏 한국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공격적인 모습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익숙했다. 하지만 여자가 남자한테 공격적으로 보이는 건 익숙하지 않는 장면이다. 그래서 메갈리아를 보고 많은 한국남자들이 황당하게 생각하는 거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