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예상치 못한 ‘축구 신드롬’에 적잖이 당황하면서 연일 대책을 숙의하느라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다행히 지난 1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스물첫해째 올스타전이 만원사례(3만7백 명)를 기록해 잠시 한숨을 돌렸지만 그럼에도 특단의 조치가 없는 이상 후반기에 펼쳐질 프로야구의 운명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
과연 위기에 빠진 한국 프로야구를 살릴 수 있는 특효처방은 없을까. 최근 프로야구 안팎에서는 이참에 행정력 등 모든 면에서 한수 아래로 봤던 프로축구를 벤치마킹해서라도 프로야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중론이 거세다.
선수들을 ‘장기판의 졸’로 아는 감독야구,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한없이 시간이 늘어지는 경기, 심판을 믿지 못해 툭하면 재연되는 판정시비. 한국 프로야구의 문제점들이다. 그날로 손님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손님들을 오기도 전에 내쫓는 처사다.
더구나 이런 야구가 팬들로부터 가장 인기있는 구단에서도 빈번히 벌어진다면 국내 프로야구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월드컵에서 전후반을 쉴 새 없이 거칠게 밀어붙이는 한국팀의 화끈한 공격축구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지더라도 화끈하게 보여주는 맛이 없다면 발길 돌린 팬들의 마음을 결코 사로잡을 수 없다.
▲ 지난 17일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 원 안 사진은 월드컵 때의 여성 축구팬들. 이종현 기자 | ||
프로야구도 한때 팬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플레이어가 있었다. ‘한 외모’하는 데다 기량도 남부럽지 않아 전국 각지에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김재현 서용빈 등 몇몇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생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기량연마에 소홀한 데다 끊임없이 팬들과 교감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각 구단이 정책적으로 여심을 흡인할 스타플레이어를 육성해야 한다.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은 그림같은 경기장에서 수준 높은 고급축구를 즐겼다. 그런 팬들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방 야구장에서 5천원에서 8천원을 내고 3∼4시간 동안 지루한 경기를 보라고 한다면? 한마디로 난센스다. 한번 높아진 수준은 여간해서는 다시 내려가기 힘들다.
이제부터라도 환경이 열악한 지방 구장들은 구장신축을 포함한 하드웨어 개선방안을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프로야구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서도 올들어 몇곱절 관중이 증가하고 있는 인천 문학구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프로야구는 경기 외적으로 뚜렷한 이슈가 없다. 물론 시즌중이라 모든 신경이 경기에 집중돼 있긴 하지만 최근에는 오프시즌에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조용한 것도 좋지만 가끔씩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킬 만한 화제나 빅 이벤트가 필요하다. 그것은 곧장 프로야구의 인기가 상승하는데 든든한 밑거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프로야구 출범 20주년 기념으로 기획돼 올스타전 직전에 열렸던 ‘올드 스타전’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원년 팬들의 향수를 한껏 자극한 훌륭한 이벤트였다.
프로축구는 지금 혁명중이다. 한번 팬들의 사랑을 얻자 이를 잃지 않기 위해 선수, 관계자가 똘똘 뭉쳤다. 경기 중 선수들은 눈빛부터 달라졌고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있다. 비록 월드컵을 통해 조성된 열기긴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 열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매일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반면 프로야구는 선수, 관계자 할 것 없이 과거의 인기에만 푹 파묻혀 시대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일부 스타플레이어를 자처하는 선수들은 거만을 떨며 더없이 가까워져야 할 팬들과 멀어지고 있고, 생각없는 구단은 팬들이 외면하는 책임을 전적으로 팀의 성적이 부진한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머리를 낮추고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