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에서 활약으로 이천수는 프리미어리그행 이 점쳐졌지만 여러 조건들이 맞지 않아 결국 올해는 유럽진출이 힘들 전망이다. | ||
스포츠신문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유럽팀 이름만 나와도 마치 본격적인 협상이 이루어지는 양 선수들의 진출설을 대서특필했다. 거론되는 선수들 스스로가 덩달아 환상에 젖어 한껏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바람빠진 풍선처럼 실망을 곱씹고 있다.
월드컵 이후 달아오른 팬들의 열기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구단들은 어떻게 해서든 스타플레이어를 붙잡아두고 싶은 속사정이 있고, 선수들은 지금이야말로 넓은 물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이런 가운데 여러 에이전트들이 구체적인 계약서도 없이 확인되지 않는 선수들의 몸값을 발표하기에 바쁘다.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영국과 스페인 꿈을 꾸던 선수들 가운데 현재까지 유럽팀 계약서에 사인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설만 무성한 태극전사들의 해외진출 명암을 알아본다.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태극전사들 중 가장 마음 고생이 심한 사람은 이천수(21·울산)와 안정환이다. 특히 이천수는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진로가 바뀌는 등 격심한 부침을 겪었다. 어젠 영국 프리미어리그행이 결정됐다는 보도를 보고 웃었다가 오늘은 구단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소식에 기운을 잃고 내일은 유럽행이 좌절되면 울산에서 뛸 것이라는(당연한 얘기가 새로운 소식처럼 기사화되고 있다) 식의 앞서가는 기사 때문이다.
이천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스햄튼의 영입 제의를 받았다. 이적료 1백만 달러(약 12억원), 연봉 52만달러(약 6억 3천만원)의 정식 제안에다 22일부터 시작된 스웨덴 전지훈련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담긴 내용이었다. 그러나 울산측에선 이천수를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울산의 조준제 단장은 이천수의 에이전트인 조현준씨(ISE 대표)가 구체적인 계약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제출했음에도 반대하는 이유를 “4년간 이적료가 1백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 것이 맘에 들지 않고 공문이 사우스햄튼의 구단주 명의로 온 것이 아니라 사무국장 명의로 왔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밑바탕엔 조씨에 대한 울산측의 불신도 한몫하고 있다.
울산의 오규선 부단장은 에이전트 조씨가 구단을 배제한 채 직접 사우스햄튼과 영입 절차를 밟은 데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 부단장은 “조현준씨는 이천수가 고려대 시절 미국 에이전트 퀸타나라는 사람과 계약할 때 중간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퀸타나와의 계약 관계가 내년 3월까지로 돼 있는 걸 뻔히 알면서 자신이 이천수의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는 데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며 강경 입장을 재확인했다. 즉 조씨야말로 이천수의 해외 이적을 추진할 만한 법적 자격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씨는 지난 18일 타워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울산측이 이천수의 유럽행을 반대하기 위해 애꿎은 핑계를 대고 있다”며 자신의 법적 문제에 하자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편 이천수의 고려대 재학 시절 해외 진출을 추진했던 조민국 감독은 “조씨는 이천수의 이적을 행사할 만한 어떤 권리나 권한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조현준은 퀸타나와 이천수와의 에이전트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시켰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조현준을 통해 이천수가 사우스햄튼으로 가게 된다면 퀸타나는 바로 조현준을 고소하겠다고 전해왔다. 울산쪽에는 퀸타나와 해결을 봤다고 얘기했지만 퀸타나는 조현준으로부터 어떤 제의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조현준에 의해서라면 천수는 절대로 영국에 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송종국 | ||
월드컵 직후 유럽행에 강한 기대를 나타냈던 송종국(26·부산)도 여전히 ‘안개 정국’이다. 그동안 거론된 팀만 해도 스페인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폐예노르트, 그리고 잉글랜드의 3개 클럽 등 면면이 화려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 어떤 팀에서도 정확한 몸값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구애를 해오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국내 스포츠신문들은 연일 송종국의 추정 몸값을 올렸고 최근에는 부산구단 관계자의 말이라며 ‘1천만 달러 아니면 팔지 않겠다고 했다’는 등의 기사까지 내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부산측의 입장은 확실하다. 구체적인 제의가 들어왔을 때나 송종국의 해외 이적문제를 검토하겠다는 것. 구단 관계자는 “송종국의 해외 진출이 성사될지 안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확실한 제의가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신문에 보도된 내용만 믿고 선수를 보내느니 마느니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만약 에이전트가 유럽팀으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된 공문을 받아온다면 제대로 검토한 뒤 그 금액이 합당한지 아닌지를 알아보겠다”며 여유를 보였다.
부산측에선 단 한번도 송종국의 몸값을 거론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신문에 나온 3백만달러니 4백만달러니 하는 내용은 기자들이 만들어낸 허위 보도라는 것. 스페인 바르셀로나 진출설도 그쪽 구단에서 ‘좋은 선수’라고만 얘기한 것이 부풀려진 결과라며 언론의 경쟁적인 앞지르기 기사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부산은 송종국 말고도 안정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더욱이 안정환이 지난 18일 “국제축구연맹(FIFA)의 결정에 따라 페루자로 가겠다”고 말한 데 대해 심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구단 관계자는 “처음에 안정환이 페루자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해서 우린 국제변호사까지 선임해 페루자와 FIFA에 공식 입장을 전하는 등 부산을 떨었는데 다시 페루자로 가겠다고 말하는 건 무슨 뜻인가”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안정환이 부산 복귀를 거부한다면 법적인 절차를 통해 강경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른 구단의 한 홍보 관계자는 모처럼 일고 있는 프로축구의 열기가 스타플레이어의 해외 진출로 인해 가라앉게 될 것을 우려했다. “만약 김남일이란 선수가 경기를 뛴다면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팬들만 1만명이 넘는다. 그런 선수를 모두 내보낼 경우 국내 프로축구는 재생의 기회를 잃고 만다. 물론 선수 입장에선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구단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