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고향’서 열 번째 도끼 벼리는 중
당선 횟수로만 볼 때 우리나라의 최고 기록은 9선이다. 그런데 9선 기록의 보유자는 한 명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준규 전 국회의장, 그리고 JP가 그 기록의 공동보유자들이다. 그런데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10선 고지 점령에 실패한 JP가 다시 뛴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80세. 다소 엽기적으로 들리지만 이 같은 분위기가 도처에서 감지된다.
사실 알고 보면 JP가 정치를 완전히 관두겠다고 말한 바가 없다. 지난해 총선에서 10선 고지 점령에 실패했던 JP는 2004년 4월17일 대변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총선 전 약속을 지키겠다. 총재직을 내놓고 2선으로 물러난다.” 그러나 JP는 “정계은퇴는 아니다”고 했다. 1961년 5월16일 군사쿠데타로 집권했을 때부터 45년간 한국 정치사를 현란하게 장식했던 그가 다시 일어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최근 행보는 완벽한 정치 재개 행보다.
#현재=충청도는 무슨 당?
JP는 11월22일 대전을 찾아 골프를 쳤다. 지역 언론사 대표들과 저녁식사도 함께했다. 그는 대전에 내려온 뒤 “오늘은 내가 술 한잔 사겠다”며 지역 언론인들을 소집했다. 그가 대전을 방문한 것은 작년 4월 17대 총선에서 떨어진 후로 처음이다.
이 자리에서 JP는 11월24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진 국민중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국민중심당에 대해 “무언의 성원을 보낸다” “지역을 직접 대변해 주고 발전을 추구해 주는 정치적 수단이니까 활동하는 기반을 잡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부탁한다”는 등의 말을 했다.
JP는 “열린우리당은 호남, 한나라당은 영남 지역당이 아니냐”는 말도 했다. 그는 자민련이 지지를 상실한 것이 ‘김대중+김종필’ 즉 DJP연합 때문이었다는 발언도 했다. JP는 “처음에는 영·호남이 갈라져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에 참여했지만 충청권 지역민들은 자민련이 정체성을 상실했다며 외면을 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끈 대목은, 이날 저녁자리에 심대평 충남지사가 합석해 “늘 총재님을 모시는 데는 변함이 없다”며 JP에게 머리를 숙였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고개 드는 후견정치’라는 논평을 냈다.
민노당 대전시당은 이 논평에서 “심대평 지사와 김학원 자민련 대표의 ‘포스트 JP’ 후계구도를 둘러싼 ‘형제의 난’을 아버지 격인 김 전 총재가 나서서 진화했다”고 비꼬았다. 동석했던 한 국회의원은 “충청도에선 역시 JP”라고 했다. 대전과 충청지역에서는 “국민중심당이 JP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들이 나돈다.
#과거=대통령병 걸렸다?
<나와 제3, 4공화국>의 저자이자 1960∼70년대 청와대 대변인, 총무처 차관, 수협 회장을 지낸 박상길씨의 회고 장면.
“1966년 1월7일 밤은 JP가 만 40세가 되는 날이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내무부 엄민영 장관, 그리고 내가 서울 청구동 JP집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안방에는 이미 5~6명의 JP계 핵심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대통령 재선(67년 5월)을 1년 앞두고 박 대통령은 공무원의 요정 출입 단속에 나서고 있었다. JP 계보 핵심들은 박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힐책했다. 술이 거나해진 박 대통령이 화가 났다. JP가 나에게 박 대통령을 청와대로 모시라고 눈짓을 했다. 그래 박 대통령을 부축했더니 더욱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집 안방엔가 어디에 닛뽄도(日本刀)가 있을 텐데 그걸 좀 가져와야겠다.’ 내가 황급하게 박 대통령을 부추기며 나가자 박 대통령이 다시 부르짖었다. ‘내가 닛뽄도로 저 쓸개 빠진 자들의 목을 댕강댕강 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어.’
청와대에 돌아온 박 대통령을 침대에 눕히고 밖으로 나서려는 순간 박 대통령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달려나오면서 권총을 찾았다. ‘내가 권총으로 그 쓸개 빠진 대통령병 환자 놈들을 확 쓸어버리기 전에는 잠을 못 잔다.’ 박 대통령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JP가 자신의 권위를 번번이 넘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JP의 당시 심정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그를 ‘대통령병 환자’라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정상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겠는가.”
권력에의 야심으로 가득했던 JP의 과거를 회고한 대목이다.
#미래=JP가 꾸는 꿈은?
그렇다면 JP의 미래는 무엇인가. 최근 JP와 자주 만난 국민중심당의 한 핵심 인사는 “아무래도 JP에게 다른 꿈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이미 ‘대통령병’을 앓았던 그가 지금 꾸고 있는 꿈은 ‘10선 고지’라고 한다.
이 인사는 “JP는 ‘3김시대’라는 표현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대중, 김영삼, 그리고 자신을 의미하는 3김 가운데 이미 두 사람은 대통령을 했는데 최고 권력을 거머쥐지 못한 자신과 동렬 취급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3김시대의 퇴장도 자신에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한 측근은 최근 JP의 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두 김씨가 대통령을 했는데 나도 역사에 뭔가를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 그 해결책이 국회의원 10선 달성인 셈이다. 한국 국회의원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남은 문제는 10선 고지의 달성 방법이다. 다시 JP 최측근 인사의 말. “JP는 김학원 자민련 대표를 충남지사에 출마시키려는 것 같다.” 김학원 대표는 JP 자신의 지역구(충남 부여)를 물려준 인물이다. 그를 충남지사로 보낸다는 것은 자신의 옛 지역구를 되찾겠다는 것이고, 이것이 10선 고지 달성을 현실화해줄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심대평 충남지사는 어차피 국민중심당 창당의 중심인물이자 단체장 3선 제한에 걸려 더 이상 지사에 출마할 수가 없다.
이쯤 되면 JP의 바람이 꿈만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황당’과 ‘재미’ 사이를 오가는 한국정치의 한 단면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