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한 기아 감독 | ||
김 감독은 특히 치밀한 계산이 담긴 행동으로 선수단이나 게임을 장악하는 방법을 적절히 활용해 영락없이 스승을 빼닮았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성한 감독은 선수 코치 시절을 포함해 줄곧 김응용 감독의 그늘 아래 있었고, 햇수로도 강산이 두 차례나 변할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제자는 스승을 모시면서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들다는 한국시리즈를 9차례나 우승하는 노하우를 눈으로 보고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가 요새 즐겨쓰는 방법으로는 심판, 선수들 군기잡기 등 필요하고 결정적인 상황이 왔을 때 스승이 보여준 ‘특기’들이다. 특히 김응용 감독이 거스를 수 없는 세월 탓에 덕아웃의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있는 사이라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장면#1 - 심판 흔들기
지난 9일 기아-SK전이 열린 인천 문학구장. 기아가 1-3으로 뒤지던 3회초가 막 시작할 무렵 김 감독이 어슬렁거리며 홈플레이트 곁에 있는 강광회 심판에게 다가갔다. 2회말 있었던 볼판정에 대해 뒤늦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기아 선발투수 마크 키퍼가 2회 선두타자 이호준과 후속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적시타가 이어지는 바람에 3점이나 내줘 역전된 상황이었다. 잇따른 볼넷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했는지 10여 분 심판과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의도는 다른데 있었다. 볼 판정은 심판 고유의 권한이라 어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게임의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한 김 감독의 노림수가 숨어있었다. 심판을 압박함과 아울러 선수들에게도 우회적인 충격을 줌으로써 파이팅과 내부결속을 다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렸다.
그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기아가 3, 4회 거푸 대량 득점에 성공, 결국 7-6 으로 이길 수 있었다. 이 수법은 김응용 감독이 해태 시절 흔히 쓰던 수법이었다. 분위기가 흐트러질 만하면 군기잡기를 시도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는 시작부터 이 군기잡기로 기선을 제압하기도 했다.
▲ 김응용 삼성 감독 | ||
지난해 9월 초 기아-삼성전이 열린 대구구장. 기아가 4강 진출을 위해 하루하루 힘겹게 경기하던 상황이라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중반쯤 중요한 승부처에서 한 선수가 결정적인 주루플레이를 범해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김 감독은 곁에 있던 의자를 덕아웃 뒤편으로 힘껏 내던져 박살내고 말았다. 순식간에 조성된 공포 분위기에 선수들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김 감독은 이외에도 가끔씩 경기가 맘대로 풀리지 않으면 경기중이라도 덕아웃 뒤에서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그러나 이 역시 이중효과를 노린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다.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촉구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느슨한 분위기에서 감독의 과격한 행동은 선수들이 다시 한 번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김응용 감독은 과거 해태 시절 숱하게 이 방법을 즐겨쓰곤 했다. 김 감독은 나아가 맘에 들지 않은 선수가 있으면 고하를 가리지 않고 발을 쓰는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공포 분위기 뒤에는 영락없이 긴장의 끈이 바짝 조여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장면#3 - ‘뚝심형’ 용병술
지금은 기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한번 ‘필’이 꽂히면 끝까지 믿고 기용하는 외골수 기질도 닮았다. 김성한 감독은 올시즌이 시작된 직후 두 선수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4, 5번을 치는 워렌 뉴선과 홍세완이 장본인이었다. 뉴선은 결정적인 기회에서 번번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홍세완은 유격수 수비에서 8개 구단 통틀어 가장 많은 실책과 빈타로 제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다.
팬들은 “김 감독이 주위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똥고집을 부리면서까지 무모하게 ‘아들’로 불리는 두 사람을 기용하고 있다”며 연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질타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선수기용에 관한 한 전권도 자신에게 있고,책임도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뚜렷한 소신 때문이다.
김응용 감독은 더했다. 왜냐하면 구단 내에서 김 감독의 위치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었기 때문. 그 위에는 오로지 구단을 경영하는 사장만 있었고, 사장은 김응용 감독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그의 말은 법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제 김성한 감독은 스승처럼 사령탑으로서 롱런하는 비결만 보여주면 ‘리틀 코끼리’로서의 화룡점정이 될 것인가.
국경선 스포츠서울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