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은 제이슨 지암비(뉴욕Y), 개럿 앤더슨(애너하임) | ||
대부분 스포츠계에서 금지 약물로 되어 있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는 쉽게 설명하면 인조 남성 호르몬이다. 이 약물을 복용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근육이 강화되며, 그런 이유로 지난 1950년대 이래, 불법이든 적법이든 운동 선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 왔다.
그러나 스테로이드는 단순히 근육 강화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부작용들이 뒤따른다. NIDA(미국 약품남용기구)에 따르면 스테로이드는 과다 복용할 경우 성격이 살인 충동을 느낄 정도로 제어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키거나, 정신착란 내지는 환각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심장마비, 뇌졸중, 콜레스트롤 증가, 간기능 장애와 함께 청소년들이 사용할 경우 성장이 정지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약물을 야구 선수들은 무엇 때문에 복용하는가?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거액의 돈이 걸려있고, 검사 무풍지대이기 때문이다. 근육이 강화되면 당연히 파워가 훨씬 강해진다. 홈런 20개를 치던 선수가 40개를 치게 된다면, 그의 연봉은 1백만달러에서 5백만달러로 치솟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메이저 스포츠 중에서 MLB만이 스테로이드의 테스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선수들이 어렵지 않게 유혹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잦은 부상 중에도 홈런 타자의 명성이 식지 않았던 호세 칸세코는 올해 초 본인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음을 시인하면서, 85%에 가까운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한다는 발언으로 충격을 몰고 왔다. MVP를 수상한 바 있는 켄 캐미니티 역시 최근 스테로이드 복용을 시인하며, 적어도 절반 이상의 선수들이 근육 강화제를 복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은 너무 과장됐다는 평가다. 물론 금지약물인 관계로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선수들을 상대로 실시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75%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선수는 전체의 절반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전혀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선수는 3%에 불과해, 선수들 스스로가 스테로이드 사용이 만연되고 있음을 시인한 셈이 됐다.
지난 91년에 비해 선수들이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비율이 32%나 급증했다는 것 역시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의료계의 시각이고 보면, 확증만 없을 뿐 선수들의 근육 강화제 남용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 배리 본즈(SF) | ||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프랭크 토마스도 “사실 무근의 의혹을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으며, 타자들에게만 의혹이 쏟아지는 것도 불만”이라며 “확고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 주장의 선수들도 많다.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외야수 개럿 앤더슨은 ‘사생활 침해와 구단주들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검사에 반대했다. 그러나 앤더슨은 지난 95년 루키 시절 16개에 불과했던 홈런이 최근에는 30개도 훨씬 넘기고 있어 의혹을 받는 선수 중 하나다. 시애틀의 2루수 브렛 분은 지난 2001년 시즌을 앞두고 무려 12kg의 근육이 늘어난 모습으로 나타났고, 37홈런에 1백41타점이라는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양키스의 제이슨 지암비는 스테로이드 이야기만 꺼내면 신경질부터 낸다. 시카고 컵스의 새미 소사와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는 언제든 검사를 받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소사는 이 문제로 기자와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설전을 벌였고, 본즈는 스테로이드는 아니지만 다른 근육 강화제를 사용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렇다면 과연 MLB에도 스테로이드 검사가 정착할 수 있을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가능성은 현재 높지는 않다. 우선은 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입장의 구단주들과 반대하는 선수노조 사이의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지난 1971년 이래 무려 8차례나 파업이 발생했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진 구단주와 선수측은 요즘 또 다시 단체교섭 협상이 난항에 부딪히고 있다. 79%나 되는 선수들이 테스트에 응하겠다고 답하면서도, 구단주들이 실시하지 않는 독립적인 테스트일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구단주들이 테스트 결과를 어떤 식으로 부당하게 사용할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구단주들 역시 대외적으로는 테스트를 부르짖고 있지만, 유명 스타들을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로 잃게될지도 모르는 모험을 강행하려 들 리가 없다는 말도 나온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