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 위반자는 강력히 징계해 일벌백계의 교훈으로 삼아야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이 같은 편법 계약이 선수들의 연봉 상한선을 제한한 KBL의 규정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만큼 이참에 KBL의 독소조항을 일제 정리해야한다는 혁신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악법도 법’이라는 주장과 ‘현실적인 정상참작론’이 맞서고 있는 셈.
선수들 사이에서는 현행 규정이 공정거래법을 명백히 위반하고 선수들의 권리 침해가 워낙에 큰 만큼 야구처럼 선수노조를 만들어 권리를 쟁취하자는 논의까지 일고 있다. 무더운 7월의 날씨처럼 후끈 달아오른 프로농구의 ‘불법논쟁 파문’을 정리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KBL 규정위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뒷돈’과 ‘사전접촉’이다. 또 뒷돈은 비상식적 광고출연료, 선급금, 언더테이블 머니 등 세 가지로 세분된다.
농구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샐러리캡(팀 연봉상한제 2002∼2003시즌 11억5천만원)을 실시하고 있는 종목. 그 탓에 구단이 선수들에게 많은 연봉을 주고 싶어도 맘껏 줄 수가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거물급 스타선수를 영입하려면 다른 명목을 써서 목돈을 쥐어주는 공공연한 관행이 생긴 것. 광고출연은 가장 흔하게 쓰이는 선수들의 연봉 보조 수단이다.
하지만 KBL은 97년 출범에 앞서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선수의 광고출연 소득은 구단과 50 대 50으로 나눠야 한다는 규정을 정해놨다. 광고출연은 농구를 떠나 해당기업과 제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탓에 농구스타의 CF출연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국보급 센터로 불리는 서장훈은 코트에서의 절대적인 위력에 반해 강성 이미지를 싫어하는 팬도 많아 광고출연은 신중을 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마도 서장훈처럼 SK 시절 그룹광고에 다수 출연한 경우는 합법적 형식은 갖춘 셈이다. 하지만 아예 광고에 출연하지도 않고 계약서만 작성하거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유인물 형태의 광고사진 몇 개 찍고 수억원을 챙기는 엉터리 CF가 지적되기도 한다. 신문 사이에 끼워지는 전단지 광고에 얼굴 한 번 내밀거나 길거리 네온사인에 사진 한 장 올리고 수천만~수억원씩의 광고료를 받은 선수들이 있다.
▲ ‘악법논쟁’이 프로농구 ‘에어컨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사진은 지난 01~02시즌 경기 모 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관련 없음. | ||
세번째 언더테이블 머니는 가장 위반 정도가 큰 것으로 말 그대로 비밀리에 돈을 전해주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불법이며, 확인될 경우 가장 큰 징계를 받게 된다. 몇몇 스타플레이어는 물론이며 일부 감독 코치 등 지도자와 용병들사이에서도 가장 많이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부모 등 가족을 통한 간접지원도 최근 많이 활용되고 편법으로 소문나 있다.
사전접촉은 FA제도와 관련있다. FA자격을 획득하는 선수는 당해년도 5월31일까지 소속 구단과 우선 협상을 해야한다. 이 기간 중 다른 구단은 FA선수와 접촉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지난 5월 사상 최대의 FA선수가 쏟아져나오면서 사전접촉 금지 조항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결국 전주 KCC와 재계약한 이상민의 경우 재계약과정에서 서울 삼성, 인천 SK 등 3개 구단이 특급대우를 미끼로 사전접촉을 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다. 또 KCC에서 안양 SBS로 이적한 양희승도 5월31일 전에 SBS와 입단에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서장훈 주희정 등 대부분의 선수가 타구단의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막 대학을 졸업한 한 특급선수가 있다. 10년에 한 명 나오기 힘들다는 대어다. 하지만 현 한국농구연맹규정상 연봉 8천만원과 계약기간(5년) 총 연봉의 50%인 2억원을 선급금으로 받는 것 외에는 추가로 단 한푼도 더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구단은 입단 전 효과가 의심스러운 광고 출연을 계약하고, 아버지를 모기업 임원으로 취업시켜 월급만 주고, 집도 사주는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10억원에 가까운 스카우트비를 지급했다.
즉 ‘합법적인 규정위반’이 고도로 발달된 것이다. 그만큼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거의 모든 구단이 스스로 지키자고 정한 규정은 공공연히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7월 KBL 자체조사 결과 10개 구단 중 7개 구단이 규정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합법적인 위반’인 경우 KBL의 징계는 피할 수 있지만 사실상의 규정위반으로 비난까지 면하기는 힘들다.
KBL은 물론 10개 구단의 많은 관계자들이 현행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즉 현 KBL 규정에 ‘악법성’이 있다는 데 큰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일단 샐러리캡은 2002∼2003시즌까지 7시즌 동안 그 인상폭이 2억원에 불과하다. IMF 경제위기 탓도 있었지만 물가인상률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인색한 규정으로 인해 각구단은 선수들의 요구액을 맞추기 위해 규정위반을 밥먹듯 저지르게 된 것이다.
샐러리캡 인상은 10개 구단 단장들의 모임인 KBL이사회에서 결정하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운 구단, 혹은 스타플레이어가 많지 않은 몇몇 구단이 인상률을 터무니없게 낮추자는 강한 입장을 견지하는 게 보통이다. 어쨌든 이로 인해 스스로 규정을 정하고 위반하는 ‘웃기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셈이다.
FA제도도 개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예컨대 FA선수를 영입한 구단이 보호선수 3명을 정하는데, 여기에 해당 FA선수를 포함한다는 ‘웃기지도 않은’ 규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SK에서 서장훈을 영입한 삼성은 SK의 보상선수 지명을 피하기 위한 보상선수 3명을 정하는 데 서장훈을 포함시켰다. 만약 서장훈이 보호선수 3명에서 빠지고 SK가 서장훈을 지명하면 다시 전 소속 구단으로 돌아가는 해괴망칙한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불법파문’이 프로농구의 에어컨 리그를 후끈 달구자 규정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제도를 대폭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또 선수들은 선수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선수들이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스스로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KBL의 독선적인 제도 운영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프로야구처럼 노조를 결성할 필요가 있다는 자생적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프로 6년차의 한 스타플레이어는 “계기가 없어서 그렇지 일단 자리가 마련되면 순식간에 선수노조가 생기고 KBL의 독소조항에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빠르면 오는 9월 부산아시안게임 대표 소집을 통해 스타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선수노조의 태동움직임이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