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최대 이변은 아무래도 기아의 대약진으로 설명되는 ‘순위반란’으로 꼽을 수 있다. 사실 시즌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기아는 중위권 전력 정도로 분류돼 주목받는 팀이 결코 아니었다. 4월 한 달 동안 돌풍을 일으킬 때만 해도 한 순간에 불다가 그칠 일회성 바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반기 종료를 코앞에 둔 현재 기아는 삼성 두산 현대 등 3강으로 분류됐던 팀들을 제치고 당당히 단독선두를 달리며 1위 굳히기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이제는 기아의 돌풍이 결코 일회성 바람이 아니었음을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기아가 이처럼 돌풍을 고정화시킬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김성한 감독(44)을 위시한 코칭스태프의 ‘요술’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팀을 맡은 뒤부터 젊은 감각으로 팀을 개편해 2년을 맞은 올해 완벽하게 새로운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기아는 개별적으로 떼어놨을 때 눈에 띄는 전력은 없어도 전체로 봤을 때는 조직력이 탄탄한 강팀으로 거듭 태어났다.
▲ 2002프로야구 개막전과 기아 이종범 선수. | ||
전반기 동안 공격, 수비 각 부문 타이틀 경쟁에서 ‘다크호스’들이 대거 출현한 것도 돋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삼성 마해영(32)과 한화 이영우(29), 두산 게리 레스(29) 등 3명.
이영우는 타율과 최다안타에서 선두를 달리며 올 시즌 리딩히터를 자임하고 있고, 마해영은 홈런더비에 참가해 팀 동료 이승엽(26), 한화 송지만(29)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양보 없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또 지난해 기아에서 한 해 동안 활동했던 레스는 한국무대 2년째를 맞아 빠르지는 않지만 다양한 구질의 변화구를 내세워 10승을 훌쩍 넘어섰다. 한동안 경쟁했던 한화 송진우(36)를 제치고 다승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들 3명은 나란히 타이틀 경쟁에 도전장을 내밀며 각 부문별로 다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외에도 일본에서 활동하다 돌아온 이종범(32) 정민철(29) 이상훈(31) 등 3명의 성적표도 관심을 끌었다. 올해 들어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듯 방망이 스피드가 현저하게 떨어진 기아 이종범은 중반으로 들어서자 노련한 테크닉으로 단점을 커버하며 공수주를 갖춘 만능 톱타자로서 제몫을 하고 있고, 전반기 중반 국내무대에 합류한 이상훈은 시속 1백50km에 육박하는 빠른 볼로 LG의 뒷문을 철통같이 지키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한화 정민철은 아직까지 전성기 시절의 감을 찾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 정민철은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내리 3∼4경기에서 초반부터 큰 점수를 내주며 두들겨 맞다가 강판당하더니 급기야 2군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1군에 올라왔지만 아직까지도 코칭스태프에게 믿음을 주지 못해 언제 다시 2군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있다.
그런가하면 전반기 후반 롯데는 충격의 16연패로 사령탑을 백인천 감독으로 바꾸는 극약처방을 단행해 눈길을 끌었다. 전반기 내내 3할대를 밑도는 승률로 연고지 팬들에게 따돌림당한 롯데는 구심점 없는 선수단이 승부욕마저 잃어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지난달 25일 백 감독이 취임하면서 일단 연패의 슬럼프는 탈출했지만 앞으로 7위 한화와의 게임차를 얼마나 줄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편 전반기 동안 우려했던 관중 격감이 월드컵 개최 여파로 현실화됐다. 월드컵이 열렸던 지난 5월30일부터 6월30일까지 한 달간 열린 80게임에 16만7천3백67명이 입장해 게임당 2천92명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동기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백 게임에 입장한 관중은 45만8천3백41명으로 게임당 4천5백83명을 기록했다. 당초 관중감소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태극전사의 놀라운 선전에 힘입어 발길을 돌린 팬들의 숫자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동안 팔짱만 끼고 느긋하게 있었던 관계자들도 이 때문에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서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