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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월드컵 이후 축구 선수들의 주가가 치솟으면서 실력과 인기를 갖춘 선수들은 정신 없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각종 CF 제의에다 매스컴의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 잇따른 사인회 등 감당하기 벅찰 정도의 ‘신분 상승’을 이룬 것이다.
이러다보니 상품성 있는 선수를 해외로 내보내거나 가외 수입으로 이익을 창출하려는 에이전트사와 매니지먼트사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연예인 매니지먼트와는 달리 대개 계약금 없이 계약을 맺는 게 이들 세계의 관행.
선수와 에이전트나 매니저가 끈끈한 ‘형제애’로 똘똘 뭉치기도 하지만 믿음이 깨질 경우 예기치 않은 오해와 파문을 부르기도 한다. 유명 선수들과 에이전트에 얽힌 내밀한 사연을 들춰봤다.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리그에 첫발을 내딛은 송종국은 2001년 부산 아이콘스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을 때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장래 문제를 도와줄 에이전트가 절실히 필요했던 송종국은 우연히 프라임스포츠의 장영철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형 종환씨와 함께 장 대표를 찾아간 송종국은 계약을 요구했으나 장 대표는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관심은 있었지만 송종국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 3개월 정도 시간을 끌면서 여러 차례 송종국을 테스트했고 계약의 중요성과 룰을 교육시키며 조금씩 송종국에 대한 의심을 풀어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페예노르트행 비행기에 오르던 날, 송종국은 기내에서 장 대표에게 당시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형, 내가 그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세요? 계약해달라고 졸라도 계약 안하고 시간만 끌어서 자존심이 엄청 상했다고요.”
해외진출의 첫 단추를 끼우며 ‘이적료 4백만달러에 연봉 40만달러’라는 엄청난 몸값을 받아낸 데에는 장 대표의 협상 수완과 함께 별 볼일 없던 신참내기의 자기 발전이 한몫했다. 장 대표가 송종국과 계약 맺으면서 지불한 돈은 단 한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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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는 장영철 대표(왼쪽), 송대한 팀장, 아래는 이영중 사장(왼쪽), 최호규 사장 | ||
사실 스카이콤의 송대한 팀장은 이천수측의 계약 요구를 두 번이나 거절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천수의 당돌하고 튀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웠기 때문.
이천수로선 몸이 달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에이전트사로부터도 제의를 받긴 했지만 스카이콤이란 회사가 자신의 해외진출에 촉매 역할을 해주리란 확신이 들었던 것. 결국 이천수측의 거듭되는 부탁을 받았고 세 번째 만인 지난해 5월14일 부산 호텔방에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됐는데 송 팀장이 이천수에게 주문한 것은 딱 한 가지, ‘거짓말하지 말자’였다.
선수와 소속사가 신뢰로 맺어진 케이스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간혹 이런저런 오해와 실수로 인해 관계가 깨지는 경우도 있다. 페예노르트 입단을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간 김남일은 월드컵 전부터 인연을 맺은 AI스포츠와 매니지먼트 관계에 있었지만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다. 그러나 AI스포츠의 곽희대 실장은 김남일의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네덜란드와 터키, 일본 등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월드컵 직후 촬영했던 CF 출연료와 계약금 문제로 이견이 벌어졌고 김남일은 지금의 이반스포츠로 적을 옮기게 됐다. 김남일의 측근에 의하면 소속사를 바꾼 가장 큰 이유가 에이전트의 대부 격인 이영중 사장이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황선홍의 에이전트도 이반스포츠 이영중 사장이다. 그러나 지난해 딱 한 번 황선홍은 ‘배신을 때린’ 적이 있었다. 바로 J리그에서 방출당한 뒤 선수 생활 연장책을 모색하다가 하나스포츠의 최호규 사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것. 내용은 이을용이 뛰고 있는 터키 트라브존스포르 입단이었다.
갑작스런 제의에 당황한 황선홍. 입단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이 사장 대신 일면식도 없는 최 사장과 손을 잡는다는 사실이 맘에 걸렸다. 황선홍은 고민 끝에 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 사장의 배려 아래 최 사장의 주선으로 터키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가 보니 전화로 듣던 입단 조건과는 천양지차였고 에이전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터키를 빠져나왔다. 황선홍으로선 ‘구관이 명관’이란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사건’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선수 K에 얽힌 비사는 에이전트 세계에 교훈으로 남아 있다. K는 뜨기 전까지만 해도 계약을 맺기로 했던 S사가 있었다. S사에선 언론사에 보도자료까지 돌리며 K와의 계약을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K는 스타 대열에 올라서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S사의 사무실 출입이 줄어들면서 그 즈음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K가 S사를 등지고 다른 소속사와 계약 단계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S사의 사장은 곧 사실 확인에 들어갔고 K는 바로 기자들한테 다른 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허탈감과 배신감에 빠진 S사 사장 L씨. 그동안 K를 위해 쏟아부었던 술값과 옷값, 기자들 접대비까지 고스란히 물 먹은 L씨는 그후로 매니지먼트 일에 회의를 느끼고 현재 조금씩 손을 떼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