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특별취재단 | ||
경제적으로도 얻은 것이 많다. 월드컵 경제효과는 약 26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월드컵의 역사적인 현장에서 되짚어본 가장 멋진 장면과 추한 장면을 통해 긴 축제 끝의 아쉬운 감정을 추슬러본다.
[BEST 3]
1. 세계가 놀란 거리응원
폴란드전 52만 명, 미국전 77만 명, 포르투갈전 2백80만 명, 16강 이탈리아전 4백20만 명, 8강 스페인전 5백만 명, 4강 독일전 7백만 명, 3·4위 터키전 2백14만 명….
월드컵 기간 동안 길거리에서 응원을 펼친 ‘붉은악마’들은 연인원 2천4백만 명이었다. 유사 이래 이런 인파의 물결은 처음이다. 지난 87년 6월 민주항쟁 기간 동안 국민의 참여가 가장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 6월26일 국민평화대행진 때도 전국 33개 도시에 모인 학생과 시민은 ‘고작’ 1백40만 명이었다고 한다.
길거리 응원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닫힌 이웃의 문을 열게 했다. 개인주의가 퍼져있던 젊은이들 사이에 공동체 문화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데모의 나라’라고 여기던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성숙한 관전문화와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응집력을 앞으로 어떻게 결집시켜 나갈 것인지는 우리들의 숙제로 남을 것이다.
▲ 히딩크의 어퍼컷 | ||
“골~인, 골~인!” 아나운서의 목청이 찢어진다. 이어 클로즈업 되는 히딩크의 멋진 모습. 그는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고 있다. 끝까지 그를 믿고 따라준 선수들이나 국민들은 그 주먹질에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한 시민은 “히딩크의 멋진 동작을 따라할 때마다 한국축구의 선전이 떠올라 통쾌하고 신난다”고 말했다.
이제 히딩크라는 이름 석자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문화코드로 자리잡았다. ‘연줄·파벌·외풍을 단호히 떨쳐버린’ 히딩크 리더십은 정치ㆍ경제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이번 월드컵의 최대 히트상품은 히딩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전 국민의 인기와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오죽하면 ‘히’씨 성을 만들어 히딩크를 시조로 삼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은 독일전 기자회견이 끝난 뒤 흘린 사나이의 뜨거운 눈물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3. 태극기 장롱 탈출
지난 96년까지 우리는 거리를 가다가도 국기게양식이 열리면 태극기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했다. 또한 국기에 대한 사랑과 보존의 방법도 엄숙하기만 했다. 평소에는 장롱 속에 고이 모시는 ‘신줏단지’였고 비가 오면 빨리 걷어야 하는 ‘보물’이었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태극기는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존재였다.
하지만 2002년 6월은 우리에게 태극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광화문과 시청 앞은 태극기 물결이었다. 업계는 약 2천3백만 장의 태극기가 팔려 국민들 손에 쥐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 해방 이후 이렇게 많은 태극기를 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젊은 남녀들은 태극기 원피스, 태극기 미니스커트, 태극기 망토 등을 걸치고 거리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관공서 옥상 꼭대기에 외롭게 걸려있던 태극기가 대한민국 남녀노소의 품에 비로소 사랑스럽게 안기는 순간이었다.
[WORST 3]
1. 짐싼 유럽 ‘비열한 입’
“개최국 한국에게 유리한 판정을 하는 ‘음모론’이 있다.” ‘약체’ 대한민국이 포르투갈 이탈리아에 이어 스페인마저 연파하자 탈락한 나라들은 이성을 잃고 이같이 주장했었다. 이들 나라들은 한국의 잇단 승리를 ‘심판 매수설’, ‘FIFA의 한국 보호설’, ‘선수들의 약물 투여설’ 등 온갖 악소문을 퍼뜨리는 ‘반칙’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 일부 유럽국가들은 그들의 뿌리깊은 자존심 때문에 제3세계 축구를 인정할 수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이러한 음모론자들은 영국의 축구대기자 랍 휴즈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팀은 온 국민의 열성적인 응원을 아드레날린 삼아 뛰고, 뛰고, 또 뛰는 팀이다. 음모론자들은 왜 개최국 한국팀에 대해 이 점은 언급하지 않는가. 음모론을 제기하는 팀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데 대해 희생양을 찾아 헤매고 있다.”
▲ 이탈리아의 반칙축구 | ||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은 그야말로 혈투였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경기 초반 한국 선수들에게 교묘하게 거친 파울을 일삼았다. 파울도 경기의 일부이긴 하다. 하지만 심판 몰래 반칙을 한다든지 심판을 속여 반칙을 얻어내는 것 등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상업축구의 영향인지 스타들이라고 할지라도 지능적으로 파울을 유도하는 건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드러난 떳떳하지 못한 축구 강국들의 반칙은 축구에 대한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한 언론인은 “남미의 유명한 감독들마저 심판 속이기는 문화적 현상이며 칭찬받아야 할 행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축구 선진국인 유럽과 남미의 축구는 이제 돈과 승리의 노예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한국팀은 넘어지고 깨져도 ‘정직하게’ 경기를 펼쳐 세계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3. 소설 같은 황당 오보
‘소설 같은’ 오보와 황당한 방송 해프닝이 벌어져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일도 벌어졌다. ‘한국이 연장전 끝에 이탈리아에 2 대 1로 패했다.’ ‘한국의 8강 진출이 좌절돼 응원단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스포츠신문 A사와 B사는 대전을 비롯해 호남과 영남 지역 등에 배달된 지난달 19일자 신문에 사상 최악의 오보를 냈다. 이들 신문은 “한국팀이 지방판 제작 마감시간 직전까지 패색이 짙었던 데다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기사를 미처 수정하지 못했다”며 해당 지역 20일자 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속보가 들어왔는데 독일팀이 약물검사에 걸려 우리나라가 결승에 진출한대요. 요코하마 간대요. 정말이에요? 확인해주세요.” 탤런트 겸 DJ 최화정이 지난달 27일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 타임> 방송 도중 ‘흥분하면서’ 던진 이 말이 대한민국을 잠시 들었다 놓아버렸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뜨기 시작했고 월드컵조직위와 언론사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 발언은 최화정의 코디네이터가 문자메시지로 보낸 ‘오보’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