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선수들은 숙소에서건 훈련장으로 이동중이건 언 제나 노래를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삼바’로 대변되는 그들 축구의 저력이 선수들의 평소 태 도에도 반영된 듯하다. | ||
특히 선수 개개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숙소에서 이들이 남긴 에피소드는 적지 않다. 각국 대표팀이 머물렀던 호텔에서 벌어졌던 장외 월드컵 뒷얘기를 모아봤다.
제주도 서귀포 파라다이스호텔 직원들이 이번 월드컵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르다. 대회 기간 동안 이 호텔을 거쳐간 국가의 성적이 탁월했기 때문. 일단 이번 대회 우승팀 브라질과 준우승팀 독일대표팀이 월드컵 기간 동안 차례로 이 호텔을 거쳐갔다.
조별예선을 우리나라에서 치른 브라질대표팀은 애초에 울산 현대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이곳에 머무는 동안 시간만 나면 노래방이나 오락실, 당구장 등을 즐겨 찾을 정도로 여유 있고 낙천적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경기인 중국전을 위해 서귀포 파라다이스호텔을 찾은 뒤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호텔 직원들에 따르면 이 호텔에 2박3일간 머물고 간 브라질팀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자유분방’했다는 것.
오죽하면 브라질팀의 버스 운전을 맡은 기사가 “훈련할 때에도 30분씩 늦는 게 예사였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 그럼에도 이로 인해 불협화음이나 문제가 생긴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을 보면 ‘브라질 타임’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브라질 선수들은 느릿느릿 훈련장으로 향하면서도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 조별예선을 치르고 제주 파라다이스호텔에서 브라질대표팀과 바통터치한 독일대표팀은 매사에 절제된 가운데서도 단단한 팀워크를 다진 팀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회 기간 동안 필요한 PC, 맥주, 운동기구도 자국에서 직접 공수해올 만큼 치밀했다고 한다. 휴식시간에 여가를 즐기는 것도 1층 로비에 설치된 PC를 이용하거나 마사지룸을 이용하는 정도.
호텔 여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선수는 단연 ‘꽃미남’ 스트라이커 클로제가 꼽힌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마저 부드럽고 온화한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골키퍼 올리버 칸도 날카롭고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직원들의 사인요청에 흔쾌히 응하는 등 다정다감해 ‘보기와는 딴판’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 호텔직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는 터키선수들. | ||
이를테면 16강전에서 파라과이와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파라과이 국기 옆에 부착해 놓은 독일 국기를 맨 위 결승전 위치로 옮겨놓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하얏트호텔 로비에서는 항상 직원들과 독일 사람들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서울 타워호텔을 숙소로 정한 터키대표팀은 개최국인 우리나라를 형제의 국가로 여길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던 팀. 조별리그 첫 경기인 지난달 3일 브라질전에서 한국인 주심으로부터 선수 두 명이 퇴장당하고 경기마저 패했을 땐 우리나라에 서운한 감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몇일 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주축이 된 ‘터키 서포터스’ 회원들의 위로방문과 호텔측의 각별한 배려 덕분에 금세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터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어느 팀보다 활발한 플레이를 자랑했지만 일단 호텔에 들어오면 ‘조용한 가족’이었다고. 외출은 물론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미국대표팀이 한달 가까이 투숙한 서울 메리어트호텔 관계자들에게 월드컵 기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이들이 월드컵 이후 내놓은 첫마디는 “죽는 줄 알았다”는 것. 미국대표팀의 유별난 보안의식은 이미 언론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미국팀의 경우 월드컵 기간 내내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보안관계자들이 같은 호텔에 상주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호텔 내부에서도 기관총을 목에 걸고 삼엄한 경계를 펴던 특공대원들을 보며 호텔측으로선 당연히 마음을 졸일 수밖에.
미국대표팀 선수들이 사용한 객실은 이 호텔 24∼25층. 선수 가족들은 11층과 12층 객실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에서는 26층의 스위트룸 5개에 상주하다시피하면서 경호를 맡았고, 8층에는 경찰이, 선수들이 묵었던 25층에는 특공대가 상주하면서 특급 경호작전을 펼쳤다. 이들이 대회 기간 동안 사용한 객실만 해도 모두 18개.
▲ 한국경찰이 미국팀 숙소 출입차량을 검색하고 있다. | ||
이처럼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미국대표팀이 머문 기간 동안 유럽과 중동 손님들의 불평은 대단했다고 한다. 하지만 철통같은 경호 덕분에 호텔 분위기가 살풍경 했던 것과는 달리 미국 선수들은 대체로 순수하고 착했다는 것이 호텔측의 설명.
대회 첫 경기에서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을 꺾으며 파란을 일으킨 미국도 16강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지난 5월27일 입국한 미국대표팀이 애초 예약해 놓은 기간은 6월20일까지. 16강전에서 G조 1위를 차지한 멕시코를 만나 ‘의외의’ 승리를 거두고 난 뒤에는 부랴부랴 3일을 연장하기도 했다. 이 호텔 프론트오피스에 근무하는 김정은씨는 미국팀의 인상에 대해 “아침에 선수들보다 먼저 일어나 조깅을 나서는 등 선수들보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던 코치진의 모습이 이채로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국대표팀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야말로 ‘만만디’라고 할 수 있다. 서귀포 하얏트호텔에 여장을 푼 중국대표팀은 지난달 8일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0-4로 대패하고서도 그다지 침통해 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진출 자체를 뿌듯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심지어 밀루티노비치 감독은 경기 다음날 여행을 떠났을 정도. 선수들 또한 이날 호텔 외부의 연못에 끼리끼리 모여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잉어 먹이를 주며 소일하는 등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과시했다.
빼어난 스타플레이어가 없었던 탓인지 중국대표팀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았던 사람은 선수가 아닌 밀루티노비치 감독. 김영식 지배인은 “같은 동양 문화권 국가여서 그런지 선수들이 우리나라 음식인 갈비와 김치, 삼계탕 등을 즐기는 모습이었다”면서 “선수들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해주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던 밀루티노비치 감독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