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자를 그려보인 두재영 부역장. | ||
종각역 부역장 두재영씨(62)는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은 6월18일 자신의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 한국팀의 선전은 월드컵 기간에 지하에서 일에 매달려야 했던 지하철 역무원들에게 ‘엔돌핀 주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시청 앞에 모인 붉은악마의 수가 늘어날수록 종각역 역무원들은 모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시청역 무정차 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응원인파가 종각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
“미국전 때였어요. 사람들이 파도처럼 몰려드는데 정말 아찔하더군요. 우리도 무정차를 할까 고민했지만 우리마저 그러면 사람들이 종로3가역까지 비를 맞고 걸어갈 것을 생각하니 그럴 수가 없더군요.”
하지만 승리의 기쁨에 취한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드니 말 그대로 천태만상이었다. 한 번은 마주선 채 열차를 기다리던 선로 양편의 사람들이 응원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구호가 몇 번 오가더니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한 사람이 태극기를 들고 플랫홈에 들어서는 열차 옆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환호는 높아졌지만 두씨는 ‘머리칼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고.
비가 내린 미국전 때는 밀려든 인파로 종각역이 거의 올스톱되기 직전이었다. 물 묻은 지하철 패스 때문에 개찰기가 고장났다. 자동발매기 역시 이상이 생겼다. 매표소 창구는 손님들이 낸 지폐가 서로 붙어 거스름돈 주기가 어려웠다. 고장난 기계는 아예 뚜껑을 열어놓고, 직원 몇몇이 매표소 바닥에 앉아 젖은 지폐를 다리미로 말려가며 표를 팔았다.
이렇다 보니 역무원들은 편안한 경기 관람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역 밖에서 함성이 들릴 때면 역무실에 있는 직원들이 워키토키로 순찰중인 동료들에게 중계를 했다.
두씨가 속한 근무조는 이번 한국 경기 내내 일을 했다. 한국이 승승장구를 하자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푸념도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 경기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연장근무에 시달리다보니 세계 축구사를 다시 쓰는 선수들의 노고를 잠시 잊은 것 같다. ‘우리는 어차피 13번째 선수잖아.’ 허 주임의 말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두씨는 이날 일기 제목을 ‘13번째의 선수들’이라고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