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 내부에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흘리며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려 하지만 딱히 이름을 거론할 만한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히딩크 감독의 그늘을 훌훌 털고 자신의 노선을 주장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데서 축구협회의 고민이 시작되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오는 9월 열리는 부산아시안게임의 사령탑 인선. 월드컵 이후 가장 큰 국제대회인 데다 4강 진출국으로서의 체면도 세워야 한다. 때문에 누가 선뜻 나설 것인지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도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몇몇 후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축구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허정무씨의 재등극이 꽤 신빙성있게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유는 히딩크 감독과 허정무씨의 친분.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맡은 직후 “난 융무 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허정무 사단에서 활동했던 정해성 김현태 최진한 코치를 모두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받아들였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차기 지도자에 대해 언급한다면 허씨를 지목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축구계의 A씨는 “허정무씨와 차범근씨 중 한 명을 꼽는다면 허씨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차범근씨는 어떤 형태로든 그라운드로 돌아오겠지만 히딩크 신드롬이 가라앉은 다음에 맡으려 할 것이다. 허씨가 만약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맡는다면 상처가 컸던 시드니올림픽 때문에 다음 올림픽 때까지 장기계약 조건으로 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계의 B씨는 아시안게임만큼은 국내 감독 인선이 현실적이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이 이뤄놓은 성과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히딩크 감독의 장점은 모든 선수를 똑같이 품어 안는 포옹력이었다. 또 선수들을 인격적으로 대했고 각기 다른 개성의 선수들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끌고 나갔다. 과연 국내 지도자들 중 그런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 히딩크 감독 후임으로 거론되는 허정무씨. | ||
한편 새로운 인물론도 대두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박창선 경희대 감독. 박 감독은 98년 청소년대표팀(19세이상)을 맡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부각됐다. 이에 대해 정작 박 감독은 전혀 뜻밖이라는 반응이다. 차기 감독은 상당한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누가 맡더라도 지금의 자리는 굉장히 어려운 위치라고 말했다.
“올림픽대표팀 정도는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갑자기 그런 제안을 받는다면 상당한 고민이 뒤따를 것이다. 누가 되든 히딩크 감독이 지도한 바탕 위에 선수들의 특징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에게 베푼 만큼 차기 감독에 대한 지원과 신뢰도 변함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제2의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는 목소리도 꽤 설득력이 있다.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에메 자케 전 프랑스 대표팀 감독과 세네갈의 메추, 일본의 트루시에, 중국의 밀루티노비치 감독 등. 그중 가장 근접한 후보가 에메 자케 감독이다.
에메 자케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오기 전 영입후보 영순위였으나 프랑스 유소년 축구에 전념하겠다고 고사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문제는 그가 60을 넘긴 고령이라는 점과 체력이 좋지 않다는 것. 그러나 자케 감독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 때마다 한국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월드컵 개막 전 한국의 16강 진출을 예언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 이미지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하면서 “향후 10년은 외국인 감독에게 맡기고 지금의 30대 후반 선수들이 그들 밑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아 향후 대표팀 지도자로 활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 재영입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프로팀 감독은 “언제까지 남한테 속박만 받고 살 수 있느냐. 국내 지도자들한테도 기회가 돌아가야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소리 높였다.
이런 가운데 시간이 촉박한 아시안게임은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수업을 확실히 받은 박항서 정해성 김현태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기자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코치 3인방은 이 부분에 대해 똑같이 ‘노코멘트’로 일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