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아들’의 나라 ‘팀플레이’엔 질색
헝다 축구학교 정면엔 디즈니랜드 성을 연상케하는 유럽풍 본관 건물이 위용을 드러낸다.
이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풀뿌리 축구의 부재’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유망주들이 부족한 데다 또 유망주들을 키워내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몇몇 축구광 갑부들이 급기야 돈 보따리를 풀면서 축구 꿈나무들을 키워내는 작업에 돌입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광저우 헝다’의 구단주인 쉬자인 헝다 그룹 회장(57)이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광저우 헝다 축구 학교’를 방문해서 중국의 축구 꿈나무 육성 실태에 대해 보도했다.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 ‘광저우 헝다 축구 학교’는 ‘꿈의 공장’이라고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전역에서 축구 선수의 꿈을 품고 찾아온 2400여 명의 어린 선수들이 미래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담금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중국 최고의 부자 가운데 한 명인 쉬자인 헝다우 그룹 회장이 설립한 이 학교는 규모 면에서부터 남다르다. 총 면적 67만 6000㎡를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에 거대한 주경기장 한 개를 비롯해 축구 연습장 50개, 첨단 시설을 갖춘 체육관,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레크리에이션 센터, 도서관, 컴퓨터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마련되어 있다.
이 학교의 축구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입구에서부터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구에는 거대한 크기의 월드컵 트로피 모형이 세워져 있으며, 조금 더 들어가면 정면에 디즈니랜드 성을 연상케 하는 유럽풍의 본관 건물이 위용을 드러낸다. 그 앞의 ‘영웅 광장’에는 잉글랜드 주장이었던 전설적인 축구 영웅 바비 무어와 브라질의 전설 펠레 등의 동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청년팀 코치를 맡고 있는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출신의 후안 베라코는 “중국 축구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면서 “이렇게 거대한 캠퍼스와 이렇게 많은 학생들은 스페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헝다 축구학교 학생들은 스페인리그에서 초빙된 22명의 실력파 코치 등으로부터 직접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2400명의 축구 꿈나무들을 지도하고 있는 코치진은 150명가량이다. 이 가운데 스물두 명은 스페인 리그에서 초빙된 실력파들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스페인 축구팀의 기술을 전수받고 있으며, 특히 레알 마드리드와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레알 마드리드식 훈련을 받고 있다. 또한 스페인에 ‘헝다 축구 학교’ 지부를 설립한 덕분에 학생들은 프로 리그에 데뷔하기 전 마지막으로 스페인에서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축구에 재능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비싼 학비다. 이 학교의 학비는 연간 5만 위안(약 903만 원). 중국의 일반 학교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부유한 가정 출신인 경우가 많다. 재능이 뛰어난 경우 간혹 스카우트를 통해 장학생으로 선발되긴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전체 학생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우수 학생’으로 선별돼 학비를 전액 면제받게 된다.
그럼 학생들의 일과는 어떻게 이뤄질까. <포쿠스>에 따르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의 일과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시작된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학교 수업을 들은 후 오전 9시 30분이 되면 축구 경기장에 집결해 전술 훈련을 받는다. 먼저 20분 동안 다양한 전술에 대한 이론 수업을 들은 후 경기장에서는 연습 경기를 통해 실전 감각을 쌓는다.
점심시간은 30분이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여섯 명이 함께 사용하는 기숙사방 청소를 마치고 다시 오후 1시부터는 학교 수업을 듣는다. 오후 5시가 되면 모든 학교 수업이 끝나지만 가오카오(중국의 대입 시험)를 앞둔 상급생들은 야간 수업까지 마쳐야 한다. 주말이라고 해서 쉬는 법은 없다. 보통 다른 학교와의 연습 경기를 통해 실력을 다지도록 하고 있다.
이 학교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는 유망주 가운데 한 명인 왕시지에(11)는 “나중에 커서 리베리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또 중국 국가대표로 뽑혀서 중국의 자랑이 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학생들에 대한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 가능한 것은 축구광인 쉬자인 회장 덕분이다. 쉬자인 회장의 축구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이미 유명하다. 지난 2010년 중국 최초의 프로 축구팀인 ‘광저우 의약’을 인수해 ‘광저우 헝다’로 팀 이름을 바꿨던 쉬자인 회장은 그 후 막대한 자금력으로 해외 스타 선수들과 명장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구단을 키워 나갔다. 그해 우리나라의 이장수 감독을 영입해 중국의 2부 리그격인 갑리그에서 우승했으며, 이듬해 슈퍼리그로 승격하면서 대대적인 팀 빌딩을 예고했다.
쉬자인 회장의 막대한 투자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런 투자는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브라질의 다리오 콩카와 우리나라의 조원희를 영입해 슈퍼리그 승격 첫해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2012년에는 연봉 1500만 달러(약 175억 원)에 이탈리아의 명장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선임하는 파격적인 행보로 전 세계 축구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리피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헝다는 2013년 중국 최초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디아만티를 영입했는가 하면, 같은 해 알리바바가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인수 금액은 12억 위안(약 1970억 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2014년 지휘봉을 잡았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의 부진으로 한 시즌을 미처 채우지도 못하고 경질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었다. 후임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을 영입했던 구단은 이어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비뉴와 파울리뉴를 나란히 데려오면서 세계 축구 이적 시장에서 ‘큰손’으로 부상했다. 이밖에 현재 광저우 헝다에서 뛰고 있는 외국 출신의 선수들로는 우리나라의 김영권을 비롯해 히카르두 굴라드, 알란, 이우케종 등이 있다. 현재 광저우 헝다는 2011년부터 5년 연속 중국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강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국립대 입학시험에서 축구를 선택 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헝다 축구학교 학생들의 훈련 모습.
이를 나타내듯 올해 초 중국 정부는 야심찬 ‘축구 개혁안’을 발표했다. 여자축구의 부활(1999년 여자월드컵 준우승), 남자축구의 세계 정상권 진입, 월드컵 유치 등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이었다. 그런가하면 지난달에는 축구를 초중학교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으며, 2017년까지 2만 개의 학교에 축구 경기장과 훈련 시설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안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축구 선수 10만 명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2016년부터는 국립대 입학 시험에서 축구를 선택 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열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 축구는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걸까. 현재 중국의 FIFA 랭킹은 84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것은 2002년 단 한번이었다. 국가 차원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축구팀 치고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성적표다.
더욱이 “축구 강국은 직접적으로 축구 선수의 숫자와 연관이 있다”는 로완 시몬스 차이나클럽풋볼 회장의 말처럼 13억 인구 대국인 중국에서 이렇다 할 축구 선수가 배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제기되고 있다. 먼저 축구 선수가 되길 희망하는 유소년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 뛰어난 기량의 선수는 20만 명 가운데 한 명씩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축구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되어 있는 유소년은 10만 명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 강국인 독일의 경우 중국 인구의 17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축구 꿈나무들은 220만 명에 달하고 있다. 광저우 헝다 축구 학교장인 리우장난은 “스카우트들이 뛰어난 선수를 골라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라고 말했다. 코치인 모레이라스는 “스페인이나 남미에서는 길거리에서 축구공을 차는 어린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이처럼 중국에서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적은 이유는 인프라 부족, 축구보다 공부를 중시하는 부모들의 성향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전문가들은 탁구, 체조, 다이빙, 사격 등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는 강국인 중국이 유독 축구에서만 맥을 못 추는 이유가 축구가 단체 경기라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51개를 획득해 전체 우승을 차지했던 중국은 대부분 개인전에서 메달을 싹쓸이했었다. 이는 팀워크보다는 개인 기량에 집중하는 공산국가 훈련 스타일에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선수 양성은 팀원이 하나가 되어 경기를 치르는 축구와 같은 종목에는 알맞지 않다. 특히 공을 다루는 창의적인 감각이나 패스는 언제 할지, 슛은 언제 할지와 같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으로, 어린 시절부터 축구공을 차면서 자연히 키워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모레이라스 코치는 “축구는 팀 스포츠다. 때문에 어린 선수들의 기본 생각부터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함께 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포쿠스>는 이런 변화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점쳤다. 이유인즉슨 중국의 어린 선수들의 경우 대다수가 외동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외아들로 자란 탓에 기본적으로 협동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과연 중국은 이런 핸디캡들을 극복하고 아시아의 맹주로 부상할 수 있을까. 아니, 더 나아가 세계 축구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중국은 이적시장 ‘블랙홀’ 축구 변방국인 중국의 위세가 무섭다. 몇 년 전부터 이적 시장에서 막대한 자금을 뿌리고 있는 중국이 ‘큰손’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축구 스타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란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금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국은 영국, 브라질, 이탈리아 등 수준급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특히 지난여름 이적 시장에서는 그야말로 ‘광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독일의 축구전문매체인 <트랜스퍼 마켓>이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슈퍼리그가 2014-15년 이적 시장에서 선수들과 코치들을 영입하는 데 쏟아부은 돈은 무려 1억 800만 유로(약 1330억 원)였다. 이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뒤를 이은 2위 수준이었다. 20년밖에 안 된 프로축구 리그가 이렇게 많은 돈을 뿌리다니 분명 놀랄 일. 당시 이적 시장에서는 첼시의 뎀바 바(프랑스)와 모하메드 시소코(프랑스)가 상하이 선화로 둥지를 옮겼으며, 이밖에 토트넘 홋스퍼의 파울리뉴(브라질)와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인 호비뉴(브라질)가 광저우 헝다로, 볼튼 원더러스의 아이두르 구드욘센(아이슬란드)이 스자좡 융창으로, 가나 국가대표인 아사모아 기안(가나)이 상하이 상강으로, 그리고 국가대표 세야드 살리호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구이저우 런허로 이적했다. 이 가운데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는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상하이 상강으로 이적한 아사모아 기안이었다. 상하이 상강이 아랍에미레이트공화국 알 아인 FC에서 아사모아 기안을 데려오는 데 투자한 돈은 2000만 달러(약 232억 원)였다. 이는 아시아 이적 시장에서는 신기록이었다. 상하이 선화로 이적한 전 첼시 공격수인 뎀바 바의 이적료는 1600만 달러(약 186억 원)였다. 이번 이적 시장이 예전과 달랐던 점은 과거에는 주로 30대 중반을 넘긴 황혼기에 접어든 선수들이 중국행을 택했다면 올해는 한창 전성기인 선수들이 중국으로 진출했다는 점이었다. 에릭손 감독이 웨인 루니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14년 11월부터 상하이 상강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에릭손 감독은 올해 슈퍼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후 현재 우승을 목표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아직 맨유와의 계약 기간이 3년 남아있는 루니가 당장 중국으로 이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릭손 감독은 “중국 축구는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라면서 “슈퍼리그는 루니가 은퇴하기에 적합한 리그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렇게 스타 선수들을 영입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국 구단들은 무엇보다도 흥행 성적이 오른 데 대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 축구장을 찾은 팬들은 2009년 평균 1만 6000명에서 올해는 평균 2만 3000명으로 증가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