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는 유럽인들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사실. 한국이 이탈리아를 누른 후 독일의 일간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에는 ‘아시아 월드컵’을 맹렬히 비난하는 칼럼마저 등장해 유럽의 독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칼럼을 쓴 기자는 ‘월드컵은 유럽에서 열려야만 ‘제대로 된’ 월드컵이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다음은 6월20일자 신문에 실린 칼럼을 간추린 내용이다.
▲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 우승후보가 떨어 져 나가고 한국, 미국 등이 4강에 올랐다. 왜 이번 월드컵 은 지금까지 열렸던 다른 대회와 다른가. -홀거 크라이틀링 | ||
대신 한국, 미국, 터키, 세네갈이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다. 들어본 적도 없고 또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을 가진 선수들이 골문을 흔들고 있다. 한국의 안정환이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무너뜨린 것은 얼마전 갑자기 네팔의 영화 한 편(역;축구영화 <컵>)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처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리게 되는 ‘요코하마 경기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거대한 플래카드가 하나 걸려있다. 바로 프랑스의 대스타 지네딘 지단을 모델로 한 일본의 컵라면 광고다. 플래카드에는 지단이 젓가락으로 누런 면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지단의 얼굴은 웃고는 있지만 왠지 고통스러워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젓가락질을 한다는 것이 유럽인들에겐 쉽지 않을 뿐더러 또한 축구선수가 고작 라면을 먹고 뛴다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번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일 지단이 정말로 허벅지 부상을 당했던 게 아니라 컵라면을 먹어서 배탈이 났던 것이라면? 일본의 식품업체가 일부러 ‘음모’를 꾸민 것이라면? 아르헨티나 역시 예상 밖의 졸전을 펼쳤다. 도대체 그들은 이들에게 무슨 마법을 걸었던 걸까?
지난 18일 밤 한국과의 16강전에서 이런 마법은 상대국인 이탈리아에게 집중되었다. 토티가 받은 ‘레드카드’도 심판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짜고 축구강국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음모를 꾸민 것일 수도 있다. 아시아는 축구를 하기에 까다로운 곳임에 틀림없다.
왜 이번 2002월드컵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지난 20세기 월드컵과 다른 것일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를 들어보겠다.
1. 환경의 영향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논리가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자그마한 동양인들은 하루종일 하이테크 업종에서 나날이 진보하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축구강국들인 유럽인들은 그저 거만만 떨고 있다가 점차 뒤처지고 있다. 그라운드에서도 이점은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하늘에 온통 뒤덮여 있는 휴대폰이나 컴퓨터의 전자파가 하늘에서 내려주는 신의 은총을 막은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차도 선수들의 컨디션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했다. 아르헨티나가 그라운드 위에 앉아 눈물을 삼키고 있던 바로 그때 그들의 고향은 새벽 4시경이었다. 그 시간에 좋은 컨디션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다음 2006년 월드컵은 어디서 열리는가? 다행히도 다시 ‘제대로 된’ 유럽(독일)에서 열리지 않는가.
한편 고맙게도 이번 아시아 본선 진출국 중 평소처럼 플레이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었다. 아마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아직 21세기가 도래하지 않은 모양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형편없는 성적으로 일찌감치 탈락하지 않았는가.
2. 관전 태도의 영향
단조로운 플레이나 반칙을 한 경우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야유나 함성은 경기 중에 선수들이 더욱 힘을 내서 뛸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시아 관중들은 상대에 대한 예의를 차리느라 지나치리만큼 너무 조용하고 얌전하다. 단지 어쩌다 전광판에 유명선수들의 모습이 비춰질 때에만 간간이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3. 극성맞은 아시아 여성팬들의 영향
아시아의 여성 축구팬들은 이상하게도 경기장에서와는 반대로 밖에서는 고함을 잘 지른다. 이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때는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거나 잘생긴 이탈리아 선수가 살짝 윙크를 해줄 때뿐이다. 인기 많던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몇 골을 넣었던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토티는 그놈의 인기 때문에 팀원들과 어울리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멕시코전과 한국전에선 내리 옐로카드를 받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에선 잘생긴 외모가 경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지 못했다.
4. 세계화의 영향
작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보다 큰 사람들을 동경한다. 이런 맥락으로 점차 세계화가 이루어진 결과 오늘날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건을 살 수 있다. 청소년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는 모습도 전세계가 똑같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가령 프랑스를 꺾고 돌풍을 일으킨 세네갈대표팀은 그저 순수한 ‘세네갈대표팀’이 아니다. ‘제2의 프랑스’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선수들이 프랑스 클럽에서 뛰고 있고, 또 프랑스식 축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번 월드컵의 이변을 용케 잘 피해 8강에 무사히 안착한 우승 후보국은 독일과 브라질뿐이다. 브라질은 이미 이런 혼란에 익숙한 나라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은 하지 않고 있는 듯.
단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탈리아전에서 본 것처럼 그라운드를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면서 상대 선수의 혼을 빼놓는 자그마한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다. 이번 월드컵이 끝나면 이런 한국선수들의 플레이를 가리켜 ‘안정환식 홀리기 축구’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듯싶다.
그럼 독일은 어떤가. 경기 시간 이외에는 선수들의 모습을 철저하게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는 독일팀은 앞으로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가급적 외부와의 접촉을 피할 생각이라고 한다. 특히 일본 여성들의 눈에 띄지않게 몰래 숨어 지내는 것이 관건이다.
아니면 8강전인 미국전을 앞두고 이런 방법을 써보는건 어떨까. 경기가 시작되기 전 미국팀 선수들에게 일본 컵라면을 먹어보라고 살며시 권해 보는 방법 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