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만여 명의 ‘붉은 응원단’들이 모인 대구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D조 조별리그 2차전 한국 대 미국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나 “한골 더”를 목놓아 부르짖던 관중들의 뜨거운 열망을 끝내 채워주지 못했다.
한국은 이날 황선홍을 중앙에, 설기현을 왼쪽에, 그리고 박지성을 오른쪽에 포진시켜 스리톱을 가동, 미국의 골문을 수차례 가격했다. 김남일과 유상철은 미국 공격의 핵으로 불리는 클라우디오 레이나를 철저히 마크하면서 공격 자체를 원천 봉쇄했고,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은 패기와 젊음을 앞세운 미국의 양쪽 날개와 몸싸움과 포스트 플레이에 능한 맥브라이드의 공간 침투를 막느라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 사진=특별취재단 | ||
미국은 전반 23분경 황선홍이 미국의 수비수 헤이덕과 공중볼을 다투다 오른쪽 이마가 찢어지는 혼란스런 틈을 타 역습에 나섰고 결국 클라이언 매시스가 한국의 문전에서 가볍게 골을 성공시켰다. 1골을 챙긴 미국은 후반전에서 전원 수비로 나서며 골문을 걸어 잠갔고 수비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역습하는 작전을 펼쳤다.
후반전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은 이을용의 페널티킥 실축이다. 처음엔 이천수나 홍명보가 찰 것으로 예상됐지만 벤치의 사인을 받고 이을용이 키커로 나섰는데 골키퍼 프리델에게 슛 동작을 읽힘으로써 무위로 끝났다.
경기 종료 3분을 남겨두고 실패한 최용수의 슈팅도 관중들의 안타까운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최용수로서도 그동안 벤치 신세에 머물렀던 과거사를 한순간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살려내지를 못했다.
패널티킥을 놓친 이을용은 정말 분발했다. 그는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죽기살기로 뛰었다. 안정환의 헤딩슛을 ‘어시스트’했고 경기 종료 직전에 최용수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준 것도 그였다.
경기 후 믹스트 존에 나타난 선수들은 경기 결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이운재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기자들 앞을 지나쳤다. 마치 패배를 당한 선수인 양 모두 고개를 숙이고 믹스트 존을 빠져나가는 모습에 국내 기자들은 물론 외국 기자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이기지 못한 데 대한 선수들의 자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걸린(?) 골키퍼 이운재는 이에 대해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인터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선수들 분위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이운재는 골이 늦게야 터진 것을 아쉬움을 전하며 2경기 연속 선발로 출장시킨 히딩크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경기 직후 가진 양팀 감독 인터뷰에서 미국팀의 아레나 감독은 “3득점한 포르투갈과의 경기보다 힘든 경기였다”고 총평한 뒤 “후반전 한국팀의 압박 공격으로 한때 고전했고 6만여 명의 관중들이 모두 한국팀을 응원하는 틈에서 그래도 무승부를 지킨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중들의 응원이 인상적이었는지 계속해서 응원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루 빨리 짐싸서 이 도시(대구)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은 “대여섯 번의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게 아쉽다. 미국 골키퍼가 선전했던 이유도 있지만 우리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고 평하면서 “그동안 한국팀은 세계 축구계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 축구의 가능성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난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로 다음 경기에 대한 희망적인 의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