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에서 PK 출신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데자뷔였다. 호남은 그에게 김·노 대통령 당선 때처럼 90%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문 후보는 PK 지역에서도 김·노 대통령이 각각 얻은 12%, 30%보다 월등히 높은 40%대의 득표로 선전했으나, 여타지역에서 패해 100만여 표차로 박근혜 후보에게 졌다.
18대 대선의 민주당 경선에서 PK 출신 안철수 후보가 나온 배경도 호남 민심이었다. 그는 처가가 호남인 것을 은근히 내세웠다. 안철수 의원 탈당의 변은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세력 형성’이다. 내년의 총선과 2017년의 19대 대선 승리가 목표인 셈이다.
두 사람의 PK 출신이 호남 민심을 업고 대권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포함하면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 3인이 PK 출신이다. 호남을 모태로 한 새정치연합에 호남 출신의 대통령 후보가 보이지 않고, PK 출신들만 득실대는 형국이다.
호남은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4수를 끝까지 밀어 당선시켰다. 호남 민심의 한(恨)이 그 안에 있었다. 문재인 대표가 차기 대권에 도전한다면 재수다. 호남 민심이 18대 대선 때의 열정으로 그를 다시 밀어줄 것인가가 관심사다.
호남과 김대중의 관계는 굴곡진 현대사가 만들어 낸 특수 관계였다. 호남 출신 중에서조차 그런 관계를 재현할 수 있는 정치인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호남 출신의 대선 후보가 호남 민심으로부터 대를 이은 지지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 점에서 호남 민심이 내편이라는 착시현상이 문·안 간 새정치연합 내분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새정치연합의 내분은 ‘친노’ ‘비노’의 갈등이라고 한다. 그 갈등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남 민심의 엇갈리는 평가에서 비롯됐다. 호남 민심을 자극하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 싹이 터서, 문 대표의 18대 대선 낙선 뒤처리 및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싸움 끝에 문·안이 갈라섰으니 호남 민심은 둘 모두에게 짜증을 느낄 것 같다.
그 점에서 호남 민심의 바탕에는 비애가 있다. 15대 대선 때의 김대중 후보처럼 호남이 주도적으로 타 지역과 연대해 정권을 쟁취하는 호남 민심의 진정한 바람은 당분간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일부 호남 출신 정치인들의 신당창당 움직임도 그런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 상황에서 호남의 타 지역 후보에 대한 전략적 선택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다행히 PK 외에도 수도권, 충청권, 심지어 대구·경북(TK) 지역에서까지 후보군이 자라고 있다. 호남 민심에 선택지가 많아지고 있다. 그 선택을 잘하면 새정치연합에도 희망은 있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