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 첫날엔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가 다음날엔 명단에서 제외되는 해프닝이 있었거든요. 부상과 체력 저하라는 이유로 인해 히딩크 감독이 쿠엘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히 부탁하셨다고 하더군요. 축구협회와 쿠엘류 감독의 배려에 먼저 감사를 전합니다.
사실 대표팀에 선발되는 건 ‘가문의 영광’이요,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죠. 하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거든요. 팀 닥터가 ‘휘발유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라고 표현할 만큼 체력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나라고 한국 가서 보고 싶었던 선후배들도 만나고 월드컵 대표팀에 감격적인 승리를 안겨준 부산월드컵 경기장을 밟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송)종국이 형이 있는 페예노르트로 건너가 종국이 형의 개인 재활 치료사로부터 물리치료를 받을 예정이에요. 우리 팀이 일주일간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틈을 이용한 거죠.
사실 요즘 같아선 에인트호벤 경기가 한국에 중계되는 게 부담스러워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기 때문이죠. 가끔 일본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요. 대학을 다니다 일본에 진출할 때만 해도 난 거의 무명이었어요. 매스컴에선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더욱이 가자마자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지는 바람에 더 더욱 기자들 입장에선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죠.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어요. 한국 신문 특파원들도 있고 나를 비롯해 네덜란드에서 활약중인 다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데다 경기까지 중계되잖아요. 잘나가는 상황이라면 휘파람을 불 일이죠. 하지만 지금은 좀 힘들어요. 영표 형이 잘 뛰고 있으니 망정이지 만약 영표 형까지 부상으로 주저앉았다면 이곳 서포터스의 성화가 대단했을 거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나라에서 온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 관심? 비슷한 것들이요.
그나마 요즘 날 ‘행복’하게 하는 일은 어머니 덕분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인데 어머니가 오늘 한 달 예정으로 한국으로 들어 가시거든요. 앞으로 ‘행복 유지’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가끔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외로울 땐 벗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한국에서 가져온 게임기는 하도 해서 질렸어요. 최근엔 독서가 취미 생활이 됐다니까요. 읽은 책 중에서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기억에 나요. 표지도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서술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에요. 어려운 상황들을 겪고 있지만 욕심을 내기보단 만족하면서 이 다음을 준비해야겠죠?
3월24일 에인트호벤에서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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