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정부 창구 일원화 안 돼 우왕좌왕…차츰 유족 대표단 꾸려 과도한 취재 제한…6일 차 동체 꼬리 시신 수습 중
#1일 차 : 발 동동 구르며 공항으로…
2024년 12월 29일 9시 2분경 제주항공 7C2216편 한쪽 엔진에 불이 붙었다. 여객기는 관제탑에 구조 요청 신호인 ‘메이데이’를 보냈다. 이후 원래 착륙 방향과 반대쪽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했다. 랜딩기어는 내려오지 않았다. 여객기는 동체 착륙했다. 그러나 활주로 끝 둔덕에 충돌한 뒤 반파돼 화재가 발생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용한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인명 구조에 총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소방 당국은 오전 9시 3분경 사고를 접수했다. 13분 뒤 대응 1단계를 발령했고, 14분 뒤 인력이 현장에 도착했다. 사고 16분 뒤에는 대응 3단계를 발령했다. 3단계는 전국 소방력을 동원해야 수습할 수 있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발령된다. 소방, 경찰, 해경, 시군청, 의용소방대, 군 등 1562명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1시경 전남소방본부는 탑승자 가족 브리핑에서 “탑승자 181명 중 구조된 승무원 2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기체가 둔덕에 충돌한 뒤 승객들이 밖으로 쏟아졌다고 했다. 사망자들도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 오후 4시 18분 기준 수습된 사망자 수는 127명이고, 신원 확인된 사망자는 2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고 현장에는 희생자들의 시신과 소지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탑승객 가족들은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구르며 공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대부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가 나오자 오열했다.
관계 당국은 탑승자 가족 지원에 미숙하게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당국은 처음엔 가족들을 별관 3층에 모이도록 했다. 3층엔 가족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당시 취재진과 가족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다 공간 확보를 위해 신원이 확인된 22명의 유가족만 남으라고 했다. 유족들은 울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난방이 안 되는 1층에서 가족들은 추위에 떨었다.
추위에 떨던 가족들에게 정확한 정보 전달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별관 3층엔 수기로 작성된 상황판이 있었다. 그러나 오후 3시 5분 이후 최신화되지 않았다. 유족들에게 사망자 이름을 A3용지로 알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방송장비는 오후 8시경에야 설치됐다. 이러한 모습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 유족들이 관계 당국에 강하게 항의했다. 유족들은 언론 보도에 의존해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 10시경 국토교통부는 구조된 2명을 제외한 179명(태국인 2명 포함)이 모두 사망했다고 밝혔다. 저녁 11시경 무안공항 본관 1층과 2층에 유족들이 임시로 거주할 텐트가 마련됐다. 인근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급히 달려와 유족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
#2일 차 : 속 타는 유족들
무안공항 인근 회전교차로부터 교통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했다. 회전교차로를 지나면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여객기 근처 잔해는 가려져 있었다. 그러나 철책 인근에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소지품과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무안공항 1층과 2층은 유족들이 임시로 거주하는 텐트로 가득했다. 텐트 곳곳에선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2층 국제선 출발 창구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거나 오열하는 유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유족을 돕기 위해 왔다는 진보당 관계자는 “정보전달 체계가 그나마 나아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정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정보전달 체계가 완전히 정돈된 것은 아니었다. 현장에 취재진 브리핑 담당자는 없었다. 세종 정부종합청사, 공항 별관, 공항 본관 2층 등 세 곳에서 브리핑이 진행됐다. 브리핑 시간은 따로 통보되지 않았다. 취재진 통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취재진과 유가족들이 뒤섞였다. 무리한 유족 취재도 곳곳에서 이뤄졌다. 다수의 유튜버도 현장에 들어와 유족들이 오열하는 모습, 텐트 속 상황 등을 여과 없이 촬영했다. 일부는 유족들을 위한 텐트를 점거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유가족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충돌했다. 유족 대표를 맡은 박한신 씨는 정부 측이 이날 오후 2시면 냉동컨테이너가 설치된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오후 4시면 모든 시신이 냉동고에서 보존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박 씨는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었다. 제가 갔을 때는 냉동컨테이너가 이제 도착해서 조립하고 있었다”고 했다.
소통 창구도 일원화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국토부, 해양항만청, 보건복지부, 무안군, 전라남도 등 상대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우리를 지원해 주기로 하는 부처가 어딘지도 기자들이 밝혀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냉동컨테이너 부품은 제때 현장에 도착했지만, 조립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설치가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유족 요청이 국토부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나 지자체에 하는 부분도 있어 소통 창구의 완전한 일원화는 쉽지 않다고 했다. 컨트롤 타워는 통합지원센터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연히 유족 입장에선 불만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정기적인 브리핑을 요구했다. 바뀐 것이 없다면 바뀐 것이 없다는 발표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는 지켜지지 않았다. 곳곳에서 신원 확인 여부나 시신 수습 정도를 알려달라는 유족과 정부 관계자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한 여성은 자기 가족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신원 확인 소식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울었다. 옆에 있던 다른 유족이 조금 전 신원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정보 전파가 원활하지 않으면서 유족들은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한 유족이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근처에 있던 유족들이 몰려갔다. 최신 정보를 얻고 싶어서다. 브리핑이 있을 낌새가 보이면 2층 국제선 출구 앞 의자에 앉았다. 기자들에게 브리핑이 있는지 묻는 유족도 있었다. 방송은 유족들에게 가닿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 유족은 방송이 나오자 “스피커가 안 돼. 화딱지 난다”며 “속이 타, 내 속이 타”라고 토로했다.
오후 11시 30분에는 유족들이 브리핑 안 하냐고 따져 물었다. 국토부 직원은 브리핑 담당에게 문의하라고 했다. 옆에 있던 김원이 민주당 의원도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은 제한된다고 했다. 유족들이 브리핑 담당이 누구냐고 했다. 현장에 브리핑 담당은 없었다. 한 유족은 일요신문에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번 이랬다. 단 한 번도 정확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차 : 신원확인 완료
사고 3일 차에도 희생자 가족들은 아침부터 애타게 신원 확인 소식을 기다렸다. 12시 30분 박한신 씨는 “기자들에게 저희도 모르는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 저희 입에서 나오지 않는 정보는 허구”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오후부터는 모든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잡혀갈 것 같다. 업무 혼선이 있었고, 여러 부처가 담당하다 보니 업무 조율이 안 돼 많은 변동사항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시신들은 새벽에 냉동컨테이너에 안치 완료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179명 중 4명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했다고 전했다. 나머지 175명은 냉동컨테이너에 안치했고, 이 중 5명이 신원확인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알렸다.
유족들과 정부 관계자들의 문답 과정에서 안타까운 사연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 유족은 엄마와 아빠는 신원이 확인됐는데 두 사람의 아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유족은 할머니, 아빠, 아이 세 사람이 여행을 갔다가 아이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가족 셋을 잃은 가장도 있었다.
한 유족은 시신을 봤는데, 얼굴만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팔다리를 같이 보고 싶었는데, 못 보게 막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DNA가 필요하다면 1분 1초라도 빨리 채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경찰은 시신 606편을 확보했고, DNA 검사로 시신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대다수 시신이 크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한신 씨는 “남자분들만 (시신 확인하러) 가세요. 저도 트라우마에 시달려요”라고 했다. 박 씨는 유족들이 시신을 반출할 때 서류절차가 늦어지지 않게 조치해 달라고 했다.
이날 오후 7시에는 공항 1층에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희생자 179명의 위패와 영정사진이 놓였다. 일부는 짝을 지어 붙어있었다. 가족 희생자들이었다. 유족들이 먼저 조문했다. 유족 한 사람이 울음을 터뜨리면 옆에 있던 사람들 눈시울도 붉어졌다.
#4일 차 : 뜬눈으로 맞이한 새해
참사 첫날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유족들을 돕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봉사자들은 식사를 만들고, 간식을 나누고, 쓰레기를 치웠다. 노란 조끼를 입은 소년들이 귤과 두유를 유족들에게 권했다. 먹고 마시는 유족은 보이지 않았다. 한 봉사자는 “우리가 할 일은 유족들이 밥이 목에 넘어가질 않으니 식사하도록 돕는 것이다. 못 걸어가면 부축해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유족 대표단의 요청으로 3500명이 먹을 수 있는 떡국을 준비했다. 안유성 명장과 인기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 지역 자영업자들도 전복죽 1000인분을 마련해 공항을 찾았다. 안 명장은 12월 30일에도 김밥 200줄을 싸 들고 공항을 찾아왔다. 박한신 씨는 “봉사하시는 분들께 그래도 우리가 1월 1일은 떡국을 좀 먹어야 하지 않겠냐. 그래서 신경 써주실 수 있느냐 했더니 흔쾌히 해준다 했다”며 “요식행위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무리 바쁜 경황이라도 새해 첫날은 제대로 지내고 싶었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날 정부 당국은 유족 대표단 요청으로 사고 현장 일부를 개방했다. 유족들은 오전 11시 30분 차례로 현장으로 이동했다. 제주항공 직원들이 유족당 1명씩 전담했다. 유족들은 차를 타고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박 씨에 따르면 유족들은 현장에서 떡국을 놓고 제사를 지냈다. 국화 한 송이를 놓았다. 20~30분 현장을 둘러봤다. 박 씨는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렸어요”라며 “이 정도 해주면 내 동생이 좀 편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했다. 박 씨는 울음을 삼켰다.
유족 대표단은 직접 취재진에 대한 관리도 시작했다. 대표단은 취재진의 사고 현장 방문에 대한 취재를 금지했다. 원거리 촬영도 불허한다고 공지했다. 장례식장 취재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먼저 나온 장례식장 기사에 대해서는 삭제 조처를 했다.
정치권에서도 현장 방문에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연일 현장을 찾고 있다. 민주당, 진보당, 조국혁신당 등 야권 의원들도 연일 현장을 찾아 유족들의 민원을 청취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등 국민의힘 대표단도 연일 현장을 찾았다. 권 대표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유족들의 손을 잡았다. 일부 유족은 권 대표의 손을 잡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김은혜 의원은 뒤편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 의원은 12월 30일 냉동컨테이너 설치 현장을 감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179명의 신원이 모두 확인됐다. 보건복지부에선 1층에 의료시설을 설치했다. 트라우마지원센터도 꾸려졌다. 다만 참사 현장에 배치된 인원들의 과부하 문제는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5일 차 : 희생자에게 전하는 말
무안공항 1층에 분향소가 설치된 다음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광주 광산구에서 온 배한별 씨(52)는 조문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배 씨는 “가족들과 함께 왔다. 희생자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많으셔서 생각보다 춥지 않게 기다렸다”고 전했다.
아직 조문하지 못한 유족들도 있었다. A 씨는 하나밖에 없는 언니를 잃었다고 했다. 평소 살갑게 지냈던 언니는 태국 여행 전 주고받은 연락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A 씨는 언니가 남편과 딸 둘을 두고 떠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문객들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말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시민들은 편지를 쓰며 부모, 자녀, 형제자매, 친구, 직장동료 등을 그리워했다. 계단은 노란색, 다홍색, 초록색 등의 포스트잇으로 가득 채워졌다. 한 유가족은 포스트잇에 “언니야. 다정히 부를 이름이 아프다. 어디에 있어. 언니가 있는 그곳이 평안했으면”이라고 적었다.
사고 현장을 찾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곳에는 술, 과일, 음료수, 마른안주, 과자, 즉석밥, 빵 등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어린 조문객이 어린이용 과자나 음료를 놓는 모습도 보였다. 철책을 따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이나 리본을 묶은 이들도 있었다.
무안스포츠파크에 설치된 분향소에도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위패 앞에는 국화꽃과 장난감들이 놓여 있었다. 대구에서 왔다는 김태운 씨(50)는 이날 새벽 푸드트럭을 끌고 분향소를 찾았다고 했다. 김 씨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보기 그랬다. 따뜻한 차라도 한잔 대접하지 싶어 오게 됐다”고 했다.
이러한 추모 물결을 거스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기사 댓글에 유족들을 모욕하거나 음해하는 글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박한신 씨가 ‘가짜 유가족’이라는 유언비어도 유포됐다. 유족 대표단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러한 악의적인 글을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6일차 : 시신 수습 막바지
1월 3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월 2일까지 무안공항 1층과 무안스포츠파크 등 전국 105곳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20만 9135명의 시민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도 현장을 찾았다. 이들은 1층 분향소에서 조문한 다음 2층으로 가 유족들을 만났다.
국가 애도 기간은 4일까지다. 유족대표단은 이날 브리핑에서 애도 기간 연장에 대해 “(자영업자의 어려움 등) 시국이 시국인 만큼 전국적 애도 기간을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염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항 분향소만 49일 동안 유지하기로 했다. 위령제를 위해 사고 현장을 한 번 더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고 현장 수습은 막바지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동체 꼬리 부분의 시신 편을 수습하고 있다. 꼬리부분까지 확인되면 시신 수습 절차는 거의 완료된다. 시신 인계와 반출은 빠르면 1월 10일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고 원인 분석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당국은 음성기록장치와 비행기록장치를 확보했다. 음성기록장치를 들을 수 있도록 음성 파일 변환이 완료됐다. 그러나 비행기록장치는 주요 부품이 분실돼 미국으로 보내 분석할 예정이다. 비행기록장치는 비행경로, 각 장치의 작동 상태 등의 세부 데이터가 기록돼 있다. 장치 분석에 최소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무안=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