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적인 스피드로 측면돌파를 곧잘 해내는 최 태욱이 K리그에선 이상하리만치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 ||
특히 지난해 월드컵 당시 격렬한 라이벌 경쟁에서 고배를 마신 선수들의 슬럼프가 예상외로 길다. 자연히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름 값에 걸맞지 않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새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하는 상태라 선수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 5일 코스타리카와의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의 4-1 대승에 기폭제 역할을 한 최태욱(안양). 그런 그가 월드컵 이후 대표팀과 소속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허둥대고 있다.
이상하게도 K리그에만 오면 대표팀에서의 빼어난 활약이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 부평고 동기이자 라이벌 이천수(울산)가 연이어 상종가를 치는 것과는 자못 대조적이다. 올 시즌 K리그 4경기에서 후반 교체 멤버로 투입됐으나 별반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뚜렷한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구단 관계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는 상황.
경기의 리듬감을 상실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조광래 안양 감독은 “대표팀만 들어갔다 오면 경기 감각이 완전히 깨져버린다”며 “무리를 해서라도 리그 경기 후반에 출전시키고는 있으나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박병주 고문도 “특히 성인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뛰었으면 기량이 크게 발전했을 것”이라며 “(최태욱처럼) 스피드 위주의 파워 플레이를 즐겨하는 스타일은 출전 횟수가 줄어들면 급격히 리듬이 깨지고 만다”고 아쉬워했다.
▲ 김병지(왼쪽), 윤정환 | ||
이운재(수원)에게 대표팀 수문장 넘버 원 자리를 넘겨준 ‘꽁지머리’ 김병지(포항)도 아직까지 월드컵에 대한 앙금을 완전히 씻어버리지 못해 구단 관계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주 쿠엘류 감독 1기 명단에도 이름이 누락돼 또 다시 심기가 뒤틀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태산 같다.
올 시즌 3경기에 8실점. 게임당 2.67골을 허용한 셈이다. 비록 최종 수비가 무너진 완벽한 실점 위기였다고는 하나 개인 역량으로 봤을 때 2∼3골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엇보다 집중력 부족에서 비롯된 판단 미스가 속출하고 있는 점이 코칭스태프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포항 박철우 GK코치는 “워낙 노련한 선수라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최근 병지답지 않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가 나오고 있어 걱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잘 해보겠다는 의지가 과욕으로 부풀려져 제 살을 깎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장으로서 든든하게 후방을 사수해야 함에도 무리한 동작으로 팀 상승세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어렵게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제리’ 윤정환(성남)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잠잠하다. J리그(세레소 오사카)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유턴, ‘한국판 레알 마드리드’의 키 노릇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꾀돌이’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전매특허인 침투패스의 정확도와 예리함이 과거보다 무뎌졌다는 평이다. 빨라진 경기 템포에 적응하지 못한 까닭이다. 각 팀 미드필더들의 거센 압박으로 경기 리듬과 완급을 조절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가 신태용과 이루는 호흡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 신문선 SBS해설위원은 “신태용과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돼야 할 것”이라며 “이와 동시에 자신의 틀을 깨려는 의지를 필드에서 보여줘야 진정한 중원의 지휘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정환 자신이 ‘반쪽 선수’, ‘국내용 선수’라는 비아냥을 뒤집기 위한 전기 마련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술과 함께 전술과 체력적인 부분이 강조되면서 파워와 수비력을 갖춘 대형 미드필더의 선호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도 그를 난감하게 하는 부분이다. 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