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정씨(왼쪽)와 이영미 기자가 함께 다정한 포즈를 취 했다. 임준선 기자 | ||
김미정 교수(33). 사실 ‘교수’라는 타이틀이 왠지 낯설게만 느껴지지만 그는 엄연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유도학과 교수다. ‘취중토크’를 요청하자 자신보다 학교의 이미지를 고려해 처음엔 난색을 표명했지만 막상 인터뷰 장소에 나와선 사뭇 달랐다. 그가 ‘교수’ 이미지를 벗고 예상을 벗어난 달변에다 유머 가득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토해내는 바람에 술이 취하지 않을 만큼 웃음꽃이 만개했다.
사진기자가 “실물이 훨씬 미인”이라고 말하자 김미정씨는 익숙한 멘트였는지 “그런 얘기 자주 듣는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다가 잠시 부연 설명을 곁들인다. “우락부락하게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유도선수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그게 이뻐 보이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미인의 잣대로 평가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말 그대로 유도선수답지 않은 그의 곱상한 외모는 선수 시절부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아직은 젊은 나이에 전임교수를 지나 조교수, 그리고 내년엔 부교수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있는 그에게 ‘고속’ 승진의 비결을 물었다. 그랬더니 ‘여자이기 때문에’라는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지난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금메달을 확정짓고 기뻐 하는 김미정씨.93보도사진연감 | ||
그는 유도계의 ‘주류’로 불리는 용인대 출신이라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됐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견제보다는 관심과 용기를 북돋워주며 학교 안으로 들어오게끔 도와줬던 선배들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체격과 주량은 정비례한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운동선수한테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다. 그러나 그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보기보단 은근히 보수적인 편이에요. 남자 선후배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끔 행동거지를 조심하다보니 술자리에 참석하는 걸 꺼리는 편이었어요. 어쩌다 술을 마셔도 결코 취하거나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철칙과도 같았죠.
그래서 특별히 취한 기억이 없어요. 특히 남편을 사귀면서 더 더욱 조심하게 됐죠. 행여 좋지 않은 소문이 남편 귀에 들어가면 기분 좋을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인지 김씨는 받아 놓은 술잔을 ‘건배용’으로만 활용했다. 직접 차를 몰고(‘취중토크’하면서 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은 처음이다) 온 탓에 소주잔에 입술을 적시는 정도였다.
김씨 부부는 유도계의 소문난 ‘잉꼬 커플’. 남편 김병주씨와 태릉선수촌에서 사랑을 싹틔운 케이스로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본격적인 교제를 하다 94년 12월25일 성탄절에 웨딩마치를 올렸다. 김병주씨는 89년 북경아시안게임 유도에서 금메달을, 그리고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선 동메달을 딴 유명 선수였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날 꼬신 게 아니라 내가 남편을 유혹(?)했어요. 그이는 워낙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고 내 주변에서도 그이를 좋아하는 선수들이 있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서 불안하더라고요. 가만히 있다가는 빼앗길 것도 같고. 그래서 먼저 내 마음을 고백했죠. 사귀고 싶고 좋은 만남을 가졌으면 한다고.”
김씨는 선수촌에서 연습할 때 주로 남자 선수들과 ‘맞장’을 떴다고 한다. 집중력과 근력, 끈기를 키우는 데 남자선수들과의 대련만큼 좋은 경험도 없다는 것. 대부분의 남자들이 김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유일하게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인 김병주씨다. 물론 체급 차이(김병주씨는 당시 78kg급)가 있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남편을 잡고 있으면 특유의 기술이 먹히질 않았다. 바로 ‘흑심’ 때문이었다.
김씨는 최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단한 도전’이란 코너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100kg이 넘는 제자들을 상대로 MC들과 엎어치기 대결을 벌였는데 김씨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선수들을 간단히 ‘해치우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말은 안했지만 그때 숨 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명색이 대학 교수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 MC한테 질 수는 없잖아요. 유도복 입어본 지가 꽤 오래 된 탓에 방송 전에는 무척 긴장했었는데 그래도 막상 시작하니까 되더라고요.”
김씨는 7세, 5세 된 딸과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25kg의 육중한 체격을 자랑하는 아들한테 벌써부터 유도계 관계자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금메달 부부’의 2세이니 얼마나 자질이 뛰어나겠냐는 판단에서다. 그중에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며 접근을 해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식들이 운동선수로 생활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힘든 고통과 인내가 뒤따르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 최종 결정은 당사자가 하겠지만 권하지는 않겠다는 기본 방침을 세워뒀는데 그게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유도선수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취중토크’에도 나올 수 없었겠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한 유도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내 손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