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호동(왼쪽), 강병규 | ||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스포츠 스타의 ‘연예인화’는 강호동에 이어 강병규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방송가에서 자리 잡기’는 그리 쉽지 않다는 게 연예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기존 방송인들의 보이지 않는 텃세와 적응하기까지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도에서 꿈을 접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
최근 김동성의 연예계 진출은 한마디로 쇼킹한 뉴스였다. 대표팀 입촌을 거부하고 자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던 선수가 어느날 갑자기 가수 데뷔를 위해 안무 연습에 몰두하고 오락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웃음을 선사한다는 내용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
김동성의 변신은 다른 선수들한테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김동성의 ‘데뷔 선언’이전부터 연기자를 목표로 학원에 다니는 등 비밀리에 연기 수업을 받아왔던 유명선수 출신 M은 이미 연예가 입성 채비를 마친 상태고 ‘테크노댄스’로 유명한 씨름계의 튀는 신인 최홍만(LG)은 은퇴 후 강호동을 능가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 김동성(왼쪽), 박광덕 | ||
‘람바다’ 춤을 추는 것으로 유명했던 씨름 선수 출신의 박광덕도 ‘제2의 강호동’을 꿈꾸고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다가 그가 원했던 오락 프로그램 MC나 고정 패널 등의 자리를 끝내 잡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전설의 무쇠팔’ 최동원도 한동안 TV 코미디 프로그램과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방송인이 되기를 꿈꾸었으나 다시 야구계로 돌아간 케이스. 4전5기의 신화를 창조한 복싱의 홍수환, 씨름 선수 출신 이봉걸 등도 한때 방송과 인연을 맺고 일하다 지금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중이다.
지난해까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주축으로 한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을 벌였던 이원형씨(사이더스 스포츠사업본부장)는 이에 대해 “운동을 통해 이룬 명성만을 가지고 연예인이 되겠다는 발상 자체로는 ‘한철 장사’로 끝나게 마련”이라면서 “전문적인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들이 체계적인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대부분 연예 관계자들과 계약을 맺다보니 스포츠 선수들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시키기보다는 상업적으로만 이용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왼쪽부터 최동원, 홍수환, 이봉걸 | ||
방송국에 도착해서 구체적인 진행 내용을 알게 된 이씨는 담당 PD와 설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건 선수들을 노리개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선수도 아닌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그런 식으로 비쳐지는 건 용납되지 않아 PD와 엄청 싸웠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최근 홍보 대행사를 차리고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 강병규는 스포츠 스타들의 연예계 진출 러시에 대해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을 나타냈다.
“운동할 때의 노력만 있으면 성공의 가능성이 높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끼’와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야 이 바닥(연예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동안 숱한 운동 선수 출신들이 방송국 문을 두드렸으나 강호동 선배와 나 정도가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고 하니 방송국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호동은 한 인터뷰에서 “씨름은 실력 있는 사람이 1등을 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연기자는 잘 웃긴다고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방송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기를 먹고 사는 건 스포츠계나 연예계 모두 마찬가지. 하지만 브라운관을 스쳐지나간 수많은 ‘왕년의 스타선수’들을 보면 두 세계의 ‘성공의 법칙’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