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 운영에 안팎에서 갑질 논란
코트라의 글로벌 무역전문가 육성 프로그램 ‘G-Bep’ 진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불만이 계속 터져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고성준 인턴기자
코트라는 외국어 능통 청년 인력을 선발해 2주 동안 집체교육을 제공한다. 교육을 마치면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업으로 파견돼 근무하고 해외 출장길에 올라 실제 전시회에도 참여해 본다. 기업 파견 기간 동안 참가자는 기업이 월 30만 원, 정부가 50만 원을 지원해 총 월 80만 원을 받는다.
또한 코트라는 참가자가 파견 기간 중 해외 전시회 및 국내 전시회 출장비용에 대해 해당 기업에 최대 3회까지 지원해준다. 해외 전시회의 경우 항공비는 실비의 90~95%, 숙박비와 식비는 정액으로, 국내 전시회는 한도 내 숙박비를 실비로 제공한다.
2기부터는 지원 금액이 더 늘어 코트라가 월급 80만 원을 전액 지원하게 됐다.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에게는 나름 파격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현재 4기까지 모집해 교육을 마친 상황에서 사업 내용을 두고 참가자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2주간의 집체교육을 마치고 파견나간 중소기업에서부터 본격적인 문제가 시작됐다. 한 중소기업에 파견나간 여성 참가자 A 씨는 폭언과 성희롱까지 겪으며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근무하는 중에도 폭언을 일삼던 사장의 친인척이 해외 전시회에 가서는 정도가 지나쳤다고 한다. 그는 사소한 실수에 A 씨에게 소리를 지르며 팔을 억지로 잡더니 얘기 좀 하자며 끌고 나가려 했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자 “얼굴 값 하라”는 성희롱성 발언까지 했다.
계속되는 폭언에도 A 씨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교육 당시 주최측으로부터 ‘개인사정으로 인한 취소 시 항공, 숙박 비용 전액 청구될 예정이오니 신중하게 신청 부탁드립니다’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A 씨는 해당 전시회가 끝나고 귀국해서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코트라 측은 “그런 일(성희롱)이 있었는지 몰랐다”며 “또한 정부기관인 코트라가 취업준비생인 교육생에게 수백만 원을 돌려달라고 하는 불리한 정관 등을 포함시킬 리 없다. 해당 학생이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에 파견나간 B 씨는 황당한 요구를 받아야했다. 해당 기업이 코트라에서 B 씨에게 제공되는 항공비와 식대, 숙박비 등의 출장 지원금을 자신들에게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B 씨는 인턴생활을 끝까지 마쳐야한다는 마음에 회사가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었다.
코트라 교육을 마치고 중소기업에 2개월간 파견을 나간 C 씨는 “취업하기 전 교육 차원인 파견 기간이 마치 회사와의 갑을관계를 체습하는 장이 된 것 같다. 파견 기업은 야근, 특근, 주말출근 등에 대한 요구를 당연시했고 코트라에 그에 따른 보상 등의 권리요구를 하면 돌아오는 답은 ‘당연한 것 갖고 왜 그러느냐’, ‘해당 회사에 항의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C 씨는 취업시 코트라 G-Bep 이력 한 줄을 위해 ‘을’의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같이 교육받은 동기 중에 파견 나가봤더니 비정상적인 회사였던 경우가 많았다. 코트라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기업 선정이나 검증이 제대로 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코트라 측은 “참여 기업을 선정하는데 회사 구성원들까지 검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는 입장을 내놨다.
어렵사리 파견 기업에서 근무를 끝낸 참가자들의 불만은 계속됐다. 코트라는 올해 4기를 배출한 사업이 끝나자 근무를 끝낸 교육생을 대상으로 12월 초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전시회를 보내준다며 다시 참가자를 모집했다. 당초 파리 전시회를 가기로 했던 코트라는 파리 테러 여파로 뉴욕과 베를린으로 나눠 보내기로 하고 약 150명을 모집하기로 했다.
여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던 기회라 참가자들을 들뜨게 했다. 특히 전시회 참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전시회 참가는 하루뿐, 나머지는 관광 일정으로 채워져 교육생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인 셈이었다. 그런데 항공비, 체류비 등 환산하면 수백만 원에 달할 행사에 코트라가 제시한 선발기준은 너무나 단순했다. ‘선착순’이었다.
그런데 자정부터 신청할 수 있게 한 선착순 프로그램이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신청이 가능했다. 수백 명의 참가자가 자정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시작시간도 전에 이미 선착순은 끝나 있었다. 교육생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코트라는 기존 선착순 모집을 무효화하고 다시 선착순 모집을 받았다. 기존 선착순에 들었던 참가자들은 불만을 드러냈고, 새롭게 선착순에 해당된 참가자들의 기분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트라 관계자는 “교육생을 대상으로 줄을 세울 방법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또한 참여한 교육생들이 토익, 자격증 등 일정 기준 이상을 충족해서 합류한 우수한 인재였기 때문에 그 중 골라내는 것이 힘들었다. 선착순으로 지원자의 열정과 성의를 보려고 했던 것 같다”며 “선착순으로 기준을 정했다는 점에서 교육생들의 불만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육생을 대상으로 또 다시 새로운 공모전이 기획된 것이다. 이 공모전에는 뉴욕과 베를린을 다녀온 학생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특혜를 받은 만큼 협조하라는 방침으로 풀이된다. 논란은 공모전의 수상자가 정해지고 지난 12월 21일 시상식의 내용이 공지되면서부터 불거졌다.
주최측에서 “지난 금요일 마감한 G-Bep 프로그램 공모전의 채점이 완료되었습니다. 대상과 최우수상 선정자에게 금일 14~15시 사이 유선 통보를 해드릴 예정이며 그 외 수상자는 발표식 당일 통보 및 시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라며 “△수상 여부에 관해서 별도의 전화 문의는 받지 않겠습니다 △수상자 불참 시 차순위자로 수상권이 넘어갑니다”라고 메일을 발송하면서부터다. 대상과 최우수상은 수상식 당일 공모전 내용을 발표해야하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해 미리 통보하지만 그 외 수상은 참가하지 않으면 상도 주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는 지난 10월 불거진 대종상 시상식을 연상시킨다. 대종상 시상식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는 배우에게는 상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가 대다수 배우가 참석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설립하고 사단법인 대종상영화제가 주관하는 영화상에서 불거졌던 일이 2개월 만에 또 다른 공공기관에서 반복된 것이다. 교육생들은 즉각 항의했다.
E 씨는 “코트라가 행사 참석자 머리 채우기를 위해 공모전 참가자의 목줄을 죄고 있는 것 아니냐”며 “하루하루가 취업전선에서 전투 중이거나 혹은 취업을 하여 사회라는 전쟁터를 살아가고 있는데 수상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참석해야 누가 받는지 알려 주고 불참하면 수상자격 박탈입니다’라는 식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지방에서 기껏 몇 시간씩 걸려 올라간 친구가 수상도 못 하고 내려가거나,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친구는 수상 여부도 모른 채 반차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참가자도 “참석해야 상을 준다, 아니면 차순위자에게 상이 돌아간다는 내용을 불과 1주일 전쯤에야 메일로 돌렸다. 교육생의 스케줄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참석하라고 하면서 오지 않으면 상을 안준다고 갑질 선언을 한 셈이다”라고 말했다.
항의 때문인지 결국 코트라 측도 시상식 사흘 전쯤 입장을 바꿔 “G-Bep 프로그램 참가자 대상 공모전에 대한 교육생 분들의 소중한 참여 감사드린다. 수상작 선정 여부에 대한 문의가 많아, 추가적인 조치로 우수상 장려상 수상에 대한 확인 메일을 금일 내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코트라가 끝내 수상작 명단을 전체 공지하지 않고 개별 연락을 고집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감추지 않았다.
코트라 측은 “실무를 맡은 대학이 진행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일일이 챙기지 못했던 점이 있는 것 같다”며 “시상식 참여 유도의 일환으로 (불참시 차순위자에게 수상) 이런 방법을 썼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G-Bep 교육을 받은 F 씨는 “코트라에 문의 전화를 걸거나, 비용 처리 등이 지연돼 전화를 걸면 전화를 받은 사람은 무턱대고 담당자 휴가라 자리에 없다고 일단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금 동기가 담당자와 통화했다고 황당해 하면 그제야 바꿔줄 정도였다”며 “교육 받는 입장에 있다고 해서 다 큰 성인이 문의하는데 대놓고 귀찮다는 태도와 하대, 무시를 받아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평소 교육생을 무시하는 태도가 시상식 논란까지 빚었다는 얘기다.
물론 교육생 모두가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다. K 씨는 “G-Bep 프로그램에서 얻은 것도 많고 참으로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몇 명이서 수백 명을 대처하는데 있어 불만이 나오는 건 불가피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무료로 좋은 프로그램 다 받고 나서는 이렇게 불만을 표하는 분들이 이해가 안 간다”라고 밝혔다.
코트라 측은 “중소기업에 파견 나가 벌어진 일들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은 아니지만 코트라가 주관한 사업인 만큼 책임을 느낀다. 지금이라도 설문조사 등을 통해 교육생들에게 심하게 했던 기업들을 조사해 다음 기수부터는 업체 선정에서 배제할 계획도 있다”며 “수백 명이 참여하는 사업인 만큼 어느 정도 잡음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사업을 통해 만족해 하는 업체도, 교육생도 있다. 정부에서 청년들의 취업률 제고를 위해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인 만큼 시행착오라 생각하고 좋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