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대표 경선 놓고 첫 세대결 ‘맞장’
▲ 최근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장의 주도권 다툼으로 뜨겁다. 왼쪽은 이 시장(왼쪽)과 이재오 의원, 오른쪽은 박 대표와 김무성 의원.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대리전’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 ||
사립학교법 무효화 장외투쟁을 놓고 시각 차이를 드러냈던 양 진영이 해가 바뀐 후엔 대권 관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해석과 원내대표 경선(1월12일)을 놓고 정면으로 맞서면서다. 특히 그동안 당내 기반 면에서 박 대표에 비해 ‘열세’란 평가를 받아온 MB측이 당 복귀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세(勢) 불리기’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전운(戰雲)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양측간 ‘알력’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사학법 파동과 관련,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장외투쟁이 박 대표의 주도하에 ‘이념 공방’으로 비화된 채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다. 박 대표가 “국가보안법이 이 나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라면 사학법은 이 나라 아이들을 지키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법이다”, “사악한 사학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 땅은 동토의 나라로 변할 것”이라며 전선을 형성해 나가는 데 대해 MB가 ‘딴죽’을 거는 듯한 행태를 보이면서다.
실제 MB는 지난 12월20일 당내 ‘새정치수요모임’이 주최한 대학생 아카데미에서 사학법 투쟁을 이념대결 구도로 몰아가려는 박 대표의 입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국가정체성이 어떻다, 나라가 어떻다’라고 하는데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지도자는 그 시대에 희망을 줘야 하고 희망을 주려면 확실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남북과 동서로 갈라지고 빈부격차와 낡은 이념의 갈등까지 대두되지만 (지도자는) 이런 것들을 통합해야 한다”며 박 대표를 겨냥했다.
박 대표측은 MB의 예상치 못한 ‘일격’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대표는 MB의 발언이 있은 바로 다음날(12월21일) “내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며 이번 사학법 투쟁도 나라를 위한 결단이었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한 측근 당직자는 “당이 전력을 다해 사학법 무효화 투쟁에 나선 마당에 MB가 힘을 보태주지는 못할망정 박 대표의 뒤통수를 때리는 모습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연말연초 쏟아져 나온 언론사들의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결과를 둘러싼 신경전도 가열되고 있다. 조사결과 MB가 고건 전 총리와 1위 자리를 놓고 접전을 보이고 있는 반면 박 대표는 3위권에서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지난해 10월1일 청계천 개통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구가하고 있는 MB측이 내친 김에 ‘대망론’을 설파하고 나서자 박 대표측이 직·간접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고 나선 것이다.
MB는 지난 4일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른바 ‘민심(民心) 대권후보론’을 제기하는 것으로 향후 대선 레이스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명했다. MB는 “(한나라당의 대권) 후보는 국민, 민심이 선택하는 것이고 민심이 결국 당심(黨心)이 될 것이다. 지난 4년간 서울시장직에 전념한 탓에 당내 기반이 약한 것은 당연하다. 민심은 이쪽을 지지하는데 당내 기반이 약해서 다른 사람이 된다면 우리 당이 불리해질 수 있으며 당이 그런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MB의 이 같은 언급은 당내 세력기반 면에선 박 대표에 비해 열세이긴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국민적 지지와 본선 경쟁력에서는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대표측은 MB의 발언내용에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며 마뜩찮아 하는 분위기다. 한 측근 의원은 “여론이라는 게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것인데 MB측이 지금의 상승세를 너무 고정불변하게 보는 것 같다. 박 대표도 연말 CBS 여론조사에서 대권주자 중 1위를 차지했지만 저쪽(MB측)처럼 난리법석을 떨지는 않았다”고 일침을 놨다. 이 측근은 “대선 후보 경선까지는 1년4개월이 넘게 남았고 2002년 대선에서 ‘노풍’(盧風)의 생성-소멸-부활 과정에서 보듯 벌써부터 섣불리 특정인의 ‘대망론’을 유포하는 것은 근거가 박약할 수밖에 없다”며 “MB는 ‘당심’과 ‘민심’이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결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경선구도는 초반 유승민 전여옥 의원과 함께 박 대표의 ‘측근 3인방’으로 불리는 김무성 의원(3선·전 사무총장)이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면서 친박(親朴) 그룹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박 대표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온 김 의원이 사실상 주류측의 대표성을 확보한 데다 같은 민주계 출신으로 차기 당 대표를 노리는 김덕룡 의원이 지원을 약속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MB진영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측이 뒤늦게 김 의원의 ‘대항마’를 찾아나서면서 양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기 시작했다. 당장 친(親)MB계열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국가발전연구회(발전연)가 연초부터 몇 차례 회동을 가진 끝에 이재오 의원을 비주류 단일후보로 내세우기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
발전연 소속 한 의원은 “원내대표를 김 의원이 차지할 경우 박 대표의 독주가 더욱 심해질 것이란 게 멤버들의 중론이었다”며 “일부에선 김 의원이 사무총장 시절 당 혁신안을 박 대표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바꾸려 했던 점 등을 거론하며 ‘김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면 당이 망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밝혔다.
당초 내년 5·31 서울시장 선거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이 의원은 범(汎) MB계가 거듭 출마를 권유하자 6일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 의원은 재야 출신의 3선 의원으로 MB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을 정도로 측근 중의 측근.
당내에서는 이 의원이 서울시장에서 원내대표로 돌연 ‘U턴’한 것을 두고 당사자의 진로 수정 차원을 넘어 향후 한나라당 대권레이스의 향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재오 홍준표 박계동 김문수 의원 등 측근들이 너나없이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 도전을 선언하면서 결속력에 문제를 보였던 MB진영이 이번 일을 계기로 본격적인 당내 세력 정비에 나섰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MB의 한 측근은 “이 의원이 대의를 위해 어려운 결단을 내려주면서 향후 당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등 역할분담도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원내대표 경선을 계기로 MB가 서울시장 임기 만료 후 당에 복귀할 때까지 기본적인 당 내외 틀을 만드는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MB계 내에서는 이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 출마로 방향을 틀면서 홍준표 박계동 의원 간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논의가 대두되기 시작했고, 비슷한 양상이 경기도지사 후보 경쟁에서도 일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MB계의 예상치 못한 결집 움직임에 박 대표측은 당황해 하는 기색이다. 손쉽게 원내대표직을 ‘접수’하리라던 기대와 달리 박 대표-MB의 대리전 구도로 경선이 치러질 경우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 대표측으로선 특히 당내 기반에선 MB측보다 우위에 서 있다고 자신해온 터에 김 의원이 이 의원에 패배할 경우엔 당내 세력지형이 급격히 MB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박 대표측의 한 의원은 “비주류측 후보가 단일화되면서 경선 ‘셈법’이 다소 복잡해진 것은 사실이며 MB측에서 경선을 박 대표와의 대리전으로 구도를 몰고갈 경우 승패를 떠나 선거전이 과열될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수도권 대(對) 영남권’, ‘보수 대 개혁’으로 대립각이 형성되면 경선 후 박 대표의 당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주류측 후보로 나서는 김 의원이 이미 당내 많은 의원들을 접촉해 온 데다 당내 최대 기반인 영남권에서 강세를 보여 승산은 높다고 본다”며 “지금으로선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주류측이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