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국 서포터스 간의 월드컵 응원전이 시작됐다. 사진은 ‘붉은악마’ | ||
하지만 이런 경기장의 열기를 선수들의 플레이로만 설명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바로 그라운드 밖의 장외 대결, 서포터스와 관중들이 함께 펼치는 응원전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수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얼굴에 조국의 국기를 그려 넣고선 ‘12번째 선수’로 맹활약하는 이들의 모습은 경기장에서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기다림 끝에 터져 나오는 ‘골’의 짜릿함만큼이나 피를 거꾸로 쏟게 하는 서포터스들의 뜨거운 함성 속으로 초대한다.
▲ 맨 위부터 덴마크, 중국, 잉글랜드 응원단 | ||
이제는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페이스 페인팅은 유럽에서 덴마크가 가장 먼저 응원수단으로 활용했다. 주로 이마와 볼에 국기와 문구를 그려 넣는 페이스 페인팅은 그 앙증맞은 모습에 상대 응원단마저 감동할(?) 정도로 크기에 비해 전달되는 메시지의 강도가 크다. 덴마크 서포터스들은 바이킹의 후예답게 뿔 달린 모자와 고둥 모양 나팔 등 도구를 이용, 다이내믹한 응원을 곧잘 연출한다.
‘훌리건’이 경기장에서 난동을 일으키는 이들을 가리킨다면 ‘롤리건’은 조용하다는 뜻의 덴마크어 ‘Rolig’에서 따온 신조어로 결과에 승복하며 경기 자체를 즐기는 덴마크 서포터스를 일컫는다.
그렇다고 덴마크 서포터스는 얌전하게 관전만 하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덴마크 국기 색깔인 흰색-붉은색 유니폼과 페이스 페인팅으로 그 어느 팀 못지 않은 열띤 응원을 펼친다. 축구 자체를 즐기는 응원문화만큼은 페어 플레이상 후보로 손색이 없다고.
[중 국 - 조용한 응원은 가라 ‘치우미’]
‘짜요우(加油)’와 ‘오성홍기’로 대표되는 중국 서포터스 치우미는 중국이 이번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으면서 탄생했다고 해도 틀린 표현이 아니다.
치우미는 ‘볼에 미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이제 중국 축구 서포터스를 일컫는 의미로 굳어졌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 곳곳에 회원수만 1억 명이 넘는다 하니 성장속도가 무서울 정도다. 주로 시끄럽다고 할 정도의 함성이 주요 응원 수단이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얘기. 우리나라는 중국 원정 축구 예선전을 앞두고 자체 평가전을 열면서 텅 빈 잠실종합운동장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러운 사운드(고함소리)를 틀어놓고 경기를 진행했다. 중국 서포터스들의 함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주눅들지 않기 위해 미리 적응훈련을 한 것. 치우미들의 함성이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잉글랜드 - 종주국의 자존심 가끔 사고도 쳐요]
리버풀, 아스날 등 명문 클럽들이 있는 잉글랜드 서포터스는 세계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하지만 이런 명성과는 대조적으로 훌리건의 발생지라는 오명 역시 부담스러워하는 게 사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약 1천 명의 상습 훌리건 명단이 한국과 일본의 관계당국에 미리 통보돼 이들의 입국이 원천봉쇄됐다. 잉글랜드 서포터스들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큰 박수를 보내며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로 함성을 지르는 기본적인 응원에 충실하지만 가끔 도에 지나칠 정도로 격렬한 모습이 곧잘 사고로 연결되기도 한다.
▲ 위부터 한국, 브라질, 일본 응원단의 모습 | ||
97년 국가대표팀이 가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이들이 바로 붉은악마였다.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이들의 함성과 몸짓은 16강 이상을 기대하는 한국 축구에서 분명히 한몫을 해내고 있다. 아침 6시 정규방송을 알리는 애국가 4절 마지막 장면은 붉은악마가 대형 태극기를 관중석에 덮는 장면이다.
‘나라사랑’과 함께 ‘축구사랑’이라는 화두를 갖고 관중들과 함께 호흡하는 응원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관중석의 한 부분에서 전체로 퍼져나가는 그 파괴력이 서양 서포터스와 차별화된다.
[브라질 - 삼바의 정열을 그대 품안에]
축구로 해가 뜨고 축구로 해가 진다는 브라질의 응원모습은 마치 정열의 삼바춤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하다. 브라질 국기의 색깔이면서 대표팀을 상징하는 ‘카나리오’라는 노란색 의상이 화려한 응원을 뒷받침해 준다. 준비된 조직적 응원보다 즉흥적인 분위기에 몸을 맡긴 채 박수와 율동으로 스스로의 흥을 즐기는 응원이 특징이다.
[일 본 - 영원한 라이벌 ‘울트라니폰’]
우리나라 붉은악마의 붉은색과 대조되는 파란색이 고유색이다. 붉은 악마와 비슷한 응원 유형을 보이지만 우리처럼 체계적인 모습보다는 우발적(?)으로 구성된 모임의 성격이 강하다.
‘니폰∼ 니폰∼’으로 반복되는 구호에 리듬을 달아 흥을 곧잘 돋운다. 서양 서포터스에 비해 요란하거나 광적인 응원은 아니지만 선수들 플레이 하나하나에 탄성과 아쉬움을 내뱉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의만큼은 뜨겁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