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 프레임’ 더해지며 보수 지지층 비판 확산…독자세력 구축 통해 당내 주류로 올라서야
더욱이 한 대표가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핵심 실세였다는 점에서 ‘황태자 프레임’까지 덧씌워지고 있다. 정권 초반 단물을 빼먹다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자 쓴물은 마다하는 이기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목소리다. 한 대표가 이러한 프레임들을 극복하기 위해선 당내 독자세력 구축을 통해 주류로 올라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수 진영, 배신자 호명 확산
한 대표는 취임 후 100일 동안 변화와 쇄신을 간판으로 내걸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후배’라며 자신을 최측근으로 여겨왔던 윤 대통령에 대해 과감하게 벽을 쌓았다. 지난 4월 총선 패장으로서 책임을 지고 비상대책위원장에서 물러난 지 약 100일 만에 당 대표에 오른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한 대표는 용산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서 맹공을 폈다. 야권의 주장에 견줘봤을 때 오히려 강도가 더 높다는 반응도 많다. 한 대표는 10월 21일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 여사 라인의 인적 쇄신,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및 의혹 해소 노력과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 등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즉각적인 수용 의사를 내놓지 않자 국회에서의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밀어붙이고 있다.
여권 안팎에서 속도 조절 요구가 나왔지만 한 대표의 차별화 시도는 더 거세지는 형국이다. 10월 16일 재보궐 선거에서 ‘텃밭’인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를 지켜내면서 동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야권 후보 단일화로 인해 패배가 점쳐지기도 했던 최대 승부처 부산 금정에서 22.07%포인트(p) 차의 여당 압승을 올려낸 것에 대해 한 대표는 무척 고무된 모습이다.
여세를 몰아 한 대표는 10월 30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건희 여사 이슈’의 정면 돌파 의지를 거듭 다졌다. 한 대표는 이날 김 여사 문제 해법 중 하나로 자신이 제시한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반드시, 그리고 신속하게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기자간담회 바로 다음날인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야당의) 공세 방어에 힘을 쏟지 않고 민생에 집중하기 위해 미래의 비위를 예방할 특별감찰관을 지금 임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 대표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보수 지지층의 반발 역시 커지는 양상이다. 여기엔 ‘박근혜 트라우마’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의 탄핵 추진에 여당이 동참하면서 대통령은 고립무원에 처했다. 이는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갈등에 보수 지지층들의 동요가 커지는 배경이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한 대표를 배신자로 지목하는 격한 움직임까지 불거지고 있다.
10월 25일 한동훈 대표가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오자 그를 비난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그동안 한 대표가 대구를 찾을 때마다 열광적으로 맞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한 대표 방문이 예정된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 앞에서는 자신을 보수정당 지지자로 자처한 한 남성이 ‘배신자 한동훈, 대구는 한동훈을 거부한다’ ‘대구시민은 한동훈과 독대를 요청한다’라는 문구가 든 피켓 시위에 나섰다가 한 대표 지지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대구 북구에서 있었던 포럼 ‘분권과 통합’의 한 대표 강연 현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운집해 있는 한 대표 지지자들 틈새에서 한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다는 카드 보드를 손에 든 여성이 눈에 띄었고, 한 남성은 한동훈 대표가 연단에 섰을 때 그를 질타하는 내용의 고함을 질렀다가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자신을 ‘칠성동에 사는 국민의힘 권리당원’으로 소개한 이 60대 남성은 거친 목소리로 한 대표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그는 “야당에 공격할 거리가 많은데 당 대표가 야당은 그냥 두고,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며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1인시위에 나선 한 40대 여성도 “한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를 놓고 벌인 언론플레이나 대화 방식은 크게 잘못됐다”며 “정치적으로 한참 멀었고 대통령 지지율도 (한 대표) 자신이 깎아먹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여러 소동을 지켜봤다는 대구의 한 기초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 대표에 대한 기대감이 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표를 가지고 투표율도 높은 대구·경북 당원들이 한 대표를 압도적으로 밀면서 한 대표가 대표로 당선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한 대표가 아무리 대통령 부부에게 흠결이 있어도 물밑에서 차근차근 설득해나가면 될 텐데 싸움닭처럼 너무 거칠게 나오고 있어 한 대표를 찍었던 대구 사람들이 ‘한 대표가 보수를 배신했다’는 정서로 급격하게 돌아섰다.”
#6공 시절 박철언 사례까지 거론돼
‘한동훈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은 10월 28일 페이스북 글에서 배신자 프레임을 가동했다. 그는 “배신자 프레임에 한 번 갇히면 영원히 헤어날 길이 없다”고 때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졌다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대구경북에서의 입지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면서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를 이어가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을 간접적으로 소환하면서 한 대표를 공격한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풀이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10월 29일 한동훈 대표를 6공 시절 황태자로 불리다 정계에서 은퇴한 박철언 특보에 비유하면서 ‘황태자 프레임’까지 씌웠다. 홍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박철언 특보는 월계수회를 이끌고 득세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노태우 (전)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고 월계수회도 사라지고 결국 정계에서 퇴출됐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또 “노 (전)대통령의 아우라로 큰 사람이 그걸 본인의 것으로 착각한 것”이라면서 “자력으로 큰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그 뒤 승승장구했지만 권력의 뒷받침으로 큰 박철언 특보의 권력은 모래성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 옆에 모여든 불나방 같은 월계수회 사람들도 한순간에 흩어졌다”고 덧붙였다.
배신자에다 황태자 프레임에까지 갇히면서 실패한 사례는 보수 진영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고, 개성공단 개발을 진두지휘하면서 ‘노무현의 황태자’로 불렸던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자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섰고, 대선 후보까지 됐지만 이명박 후보에게 대선 사상 역대 최다 표차로 참패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정동영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2007년 17대 대선에서 맞붙었을 당시 일부 여당 의원들은 대놓고 정 후보를 외면한 것으로 보였던 기억들이 떠오른다”며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정권에서 단물을 빼먹은 황태자급 인사들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 곧 종말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고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선 후보 등 보수진영 사례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김건희 여사 문제 처리가 관건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선 한 대표가 당대표로서 살아남는 길은 독자세력화뿐이다. 당의 주류인 친윤 세력 견제를 넘어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친한계가 당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한 대표가 의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고, 세 결집에 총력전을 기울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친윤계에선 한 대표로의 세력 전이에 대해 회의적 전망을 내놓는다. 한 대표의 성격이 정치와 맞지 않다고 꼬집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대표가 상가에 자주 가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고, 심지어 폭탄주를 말더라는 얘기도 들리긴 하지만 ‘어색하다’는 반응이 그 뒤를 잇는다.
안철수 의원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의원들도 꽤 있다. 안 의원은 2011년 정치권에 입문 후 여러 차례 큰 선거를 나왔지만 그를 따르는 ‘친안’ 세력은 그리 많지 않다는 평이다. 이를 안 의원 특유의 성격과 연관 짓는 해석이 많은데, 한 대표 역시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번지수를 엉뚱하게 찾아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당내 세력화를 위해서는 당의 주류 중의 주류인 영남권 의원, 그리고 중진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한 대표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한 대표가 내놓고 있는 주장이 번번이 당내에서 막히는 것도 이런 배경과 맞닿아 있다.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10월 31일 모였는데 이 자리에서도 친한 측이 내놓은 의원총회 표결을 통한 특별감찰관 추진과 관련,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추경호 원내대표가 전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추 원내대표 주재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의총으로 인해서 당이 더 분열 및 갈등 양상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표결 양상으로 가는 건 정말 숙고해야 한다” “표결은 가급적 지양했으면 좋겠다”는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대표는 여당 핵심 지지층이 몰려있는 영남 출신이 아닌 데다 윤 대통령과 겹치는 검사 이력 등은 향후 대선 고지까지 확장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들기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래야 용산과의 차별화에도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친한계에선 당 권력추가 빠른 속도로 한 대표에게 쏠리고 있다고 자신했다. 당의 운명이 ‘김건희 여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면, 결국 한 대표에게 세가 결집할 것이란 논리다.
한 친한 의원은 “배가 침몰한다고 가정해보자. 누군가 한 명은 살아서 또 고기를 잡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보수 지지층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민심 이반이 예상 밖으로 큰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안위보단, 여권에서 이재명과 누가 싸울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은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한 대표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전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